본문으로 바로가기
53164265 0012019061753164265 06 0602001 6.0.8-hotfix 1 경향신문 0

YG 무너뜨린 ‘YG’

글자크기

양현석 경영 방식으로 본 ‘YG 사태’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7층으로 부르면 두꺼운 옷을 입고 가. 나는 한여름에도 겨울옷을 입고 갔어. 7층에 간다면 들어가자마자 회장님이 뭘 신고 있는지 보거든. 말랑말랑한 슬리퍼라면 다행이야.”

양현석 전 대표, 연습생 발굴부터 콘텐츠 제작까지 만기친람 ‘제왕적 1인기획’…

군대식 서열문화 낳아


2018년 SBS 예능 <미운오리새끼>에 출연한 빅뱅 전 멤버 승리는 후배 그룹 블랙핑크와 만난 자리에서 YG엔터테인먼트 사옥 7층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문제가 된 스캔들이 터진 때의 상황을 우스갯소리로 표현한 농담이었지만, YG엔터테인먼트의 사내 분위기를 함축한 말이기도 했다.

최근 ‘YG사옥 7층’은 다른 의미로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2016년 8월22일 아이돌 연습생 출신 ㄱ씨는 이곳에서 양현석 YG 전 대표 프로듀서(50)를 만났고, 이 자리에서 양 전 대표가 아이콘 전 멤버 비아이(23·본명 김한빈)의 마약 투약 시도와 관련한 경찰 진술을 바꿀 것을 회유했다고 주장했다.

YG사옥 꼭대기층이자 양 전 대표의 집무실이 있는 이 7층은 ‘YG 왕국’의 상징이었다. 양 전 대표는 연습생 발굴부터 관리, 음반과 뮤직비디오 등 모든 콘텐츠 제작까지 직접 관장했고, 업계에서는 “YG는 사실상 양현석이 모든 사안을 결정하는 거대 1인 체제 기획사”라는 말이 돌았다. 마약 스캔들과 ‘버닝썬 사건’ 등 YG를 둘러싼 사건 사고의 배경에 양 전 대표의 제왕적 군림과 이로 인한 서열 문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YG 소속 연예인들은 기자간담회 등 공적인 자리에서도 양 전 대표를 “회장님”이라고 불렀고, 그에 대한 존경과 공포감을 함께 드러냈다. “작년까지만 해도 엄하고 무서운 아버지였다고 비유하자면, 올해 들어서는 한없이 따뜻한 아버지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점점 편해지고 있고 회장님의 개그도 좋아한다.”(아이콘 멤버 구준회) “회장님은 어떤 가수에게는 굉장히 따뜻하게 대하는데 누구에게는 차갑게 대하신다. 나는 따끔조에 들지 않았나 싶다. …지적도 엄청 하신다. 의상도 머리도 무대도 다 문제라고 한다. 그래서 눈치가 보이고 뵙자마자 죄송하다는 생각부터 든다.”(이하이)

모든 결정권이 양 전 대표에게 집중된 만큼 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곡 하나를 내기도 힘든 구조였다. 비아이는 2018년 JTBC <아이돌룸>에 출연해 “YG는 가수들이 직접 움직이지 않으면 컴백하기가 힘들다”며 “회장님의 기분이 좋은 날에 결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YG가 좀처럼 가수들의 새 앨범을 내놓지 않아 팬들 사이에서 ‘쟁여두고 보여주지 않는다’는 의미로 ‘YG 보석함’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일부 팬들은 양 전 대표를 ‘7층 아버지’라 부르며 비위를 맞췄다.

양 전 대표 결정에 앨범 발매 등 ‘운명’ 달린 소속 가수들은 인정받으려 무리수

“승리가 함축적인 인물”


양 전 대표의 신임 여부로 내부 서열이 정해지고 이에 소속사의 지원 정도도 달라졌다. 사업의 연이은 성공으로 ‘승츠비’란 별명을 얻은 뒤 발매한 앨범 <더 그레이트 승리> 기자간담회에서 승리는 “최근 (소속사 내에서) 내 서열이 많이 올라왔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모습에 회장님이 나에 대한 신뢰가 생긴 것 같다”며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는 것에 결과물로 보답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양 전 대표의 신임을 얻는 방식이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또 YG 내의 서열화와 이에 따른 차별이 얼마나 심한가를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 승리였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전 대표 프로듀서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직접 게시한 소속 가수들과의 대화 캡처. 팬들은 “제왕적인 YG 사내문화를 보여주는 대화”라고 지적했다. 양현석 인스타그램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제왕적 경영은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 전반에서 나타나는 경향이다. 그러나 문제는 양 전 대표 1인이 기업 내 결정권을 독점하는 과정에서 YG의 사내 문화 전반이 군대식 서열 문화로 점철됐다는 데 있다.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은 “사실 K팝 기획사 대부분이 대표의 취향과 철학이 고스란히 경영에 반영되는 운영 방식을 띠고 있다”면서도 “YG의 경우 가부장적인 우두머리가 조직 내 구성원을 엄격한 서열로 통제하고 이를 과시하는 문화로까지 나아갔다는 점이 문제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옳고 그름의 가치와 상관없이 어떻게든 ‘회장님’의 인정만 받으면 된다는 분위기, 회장님이 용인한다면 무슨 일이든 상관없다 식의 분위기가 YG에 독소가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대중의 비판을 수용할 줄 모르는 태도도 지적됐다. YG의 제왕적 경영에 대한 지적은 이전부터 소속 가수의 팬덤에서 제기돼왔다. 팬덤이 만든 ‘YG 보석함’이라는 말은 YG가 엄연한 상장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양 전 대표 개인의 소유물처럼 운영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비판을 함축한다. 그러나 YG는 이 ‘보석함’을 직접 제작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타이틀로 삼으며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지난해 10월5일 공개된 YG·넷플릭스 합작 시트콤 <YG전자>에서는 소속 연예인들이 ‘약물 검사’를 받는 장면이 우스꽝스럽게 재연됐다. 최지은 칼럼니스트는 “YG는 비판이 나왔을 때 이를 수용하고 개선하는 대신 희화화하는 태도를 일관해왔다”면서 “겉으로는 제기된 비판을 농담으로 쿨하게 소화할 수 있는 집단이라고 과시하는 한편, 내부에서는 문제를 덮는 양면적인 태도가 이어져온 셈”이라고 말했다.

이유진·김지혜 기자 yjleee@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 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