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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암에 효과? 독 들어있는 살구씨 먹고 몸 망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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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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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 매실에는 독이 있다. 과육에도 독이 있지만, 씨에 집중적으로 그 함량이 높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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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 철이 돌아왔다. 웬만한 가정은 매실청 혹은 매실장아찌를 담그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됐다. 독이 있다고 찜찜해 하면서도. 그러나 그동안 먹어와 별 탈 없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탓일까, 별로 신경 쓰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풋 매실에는 당연히 독이 있다. 과육에도 있지만 씨에 집중적으로 그 함량이 높다.

그 독은 아미그달린(amygdalin)이라는 것으로 매실·살구·복숭아 등의 씨앗에 청산(시안)배당체의 형태로 존재한다. 아미그달린 자체로는 그렇게 해롭지 않으나 효소작용 때문에 청산(HCN)으로 되면 인체에 치명적이 된다. 유리된 청산에 다량 노출되면 메스꺼움·구토·간 손상·혼수상태에 이를 수 있으며, 심하면 사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며칠 전 아미그달린이 함유된 살구씨가 식품원료로 유통되고 있다는 신문기사가 났다. 항암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주사제로도 판매된다는 쇼킹한 기사였다. 병원에서 놔주지 않으니 직구하여 스스로 놓기도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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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씨에서 추출한 아미그달린 성분이 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잘못 알려지면서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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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씨는 행인(杏仁)이라 하고 한약으로 조심스럽게 쓰이나 식품 원료로는 사용이 법으로 금지돼 있다. 그러나 보도에 의하면 "12개 품목 39개 제품이 살구씨 제품으로 판매되고 있었으며 39개 제품은 섭취가 간편한 ‘통씨’가 15개, ‘캡슐’ 5개, ‘두부’ 4개 및 오일·젤리·통조림·즙 등 다양한 형태의 제품이 불법으로 유통되고 있다"고 했다. 이 중 1개를 제외한 38개 제품은 해당 쇼핑몰에서 해외직구 형태로 판매 중이었다.

살구씨에서 추출한 아미그달린 성분이 "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잘못 알려지면서 온라인 등에서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다. 위험천만한 일이다. 이 또한 과거 허접한 논문이 발단이다. 이미 미국 FAD가 1977년 임상실험결과 효과 없음을 발표하고 사용과 유통을 금지시킨 물질인데도 말이다.

우리 소비자원이 관련 업체에 자발적 회수·폐기 및 판매중지를 권고했고, 해당 업체는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는 보도다. 그런데 주무부처인 식약처는 왜 나서지 않는가? 또 굼뜬 행동으로 뒷북치다가 외양간 고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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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되냐 약이 되냐는 양이 결정한다. 양이 적으면 인체에 영향이 없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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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친김에 살구 못지않게 아미그달린 함량이 높은 매실은 괜찮은지 따져보자. 담그는 방법은 간단하다. 풋 매실에 설탕을 1:1로 섞어 재워둔다. 시간이 지나면 수분이 스며나와 설탕이 녹고 매실은 쪼글쪼글하게 당절임이 된다.

이때 매실 성분이 조금 우러난 걸쭉한 설탕물은 주스로 혹은 속이 안 좋을 때나 요리할 때 자주 쓴다. 산미와 미미한 매실 향 때문에 설탕 잼(범벅)에 버금가는 것을, 고농도의 설탕에 의해 매실 성분이 일부 추출된 부패방지용 당장(糖藏-당절임)용액에 불과한 것을, 발효액 혹은 효소액이라 둘러대며 건강에 좋다는 터무니없는 낭설을 철석같이 믿고서는 말이다.

몸에 좋다는(?) 구연산(citric acid)이 많다면서 무슨 명약인 것처럼도 칭송한다. 하지만 약리효과는 별로(전혀) 기대할 게 못 된다. 구연산이 생체 내 에너지대사(TCA 회로)의 중심물질이라 그런 주장이 나왔나 본데 이 물질은 우리 몸에서 쉽게 만들어지는 성분이다. 특별할 게 없고 먹어줄 필요도 없는 물질이다.

실제 청매실 씨에는 독이 상당량 있다. 청을 담그면 많은 양은 아니지만, 아미그달린이 천천히 녹아 나온다. 용출된 아미그달린은 오래 두면 서서히 분해되어 줄어든다. 담은 뒤 100일 전후에는 235mg/kg 정도 이었다가 300일이 지나면 30mg/kg로 감소하고 1년 뒤에는 완전히 없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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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 철이 돌아왔다. 많은 가정에서 매실로 맛 좋은 청과 장아찌를 담근다. 보통 소화가 안 될 때 매실청을 풀어 차로 마시는데, 효과가 있는지는 생각해볼 부분이다.[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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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담근 지 100일 정도에 매실 알맹이를 건져내고 액만을 저장해 먹기 때문에 씨로부터 추출돼 나오는 독성물질은 그렇게 많지 않다. 저장 중에도 서서히 그 양은 감소한다.

일설에는 성인이 청매실 300알 정도를 씨 채로 씹어 한꺼번에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매실도 아닌 과일씨 중에 아미그달린 함량이 가장 높은 살구씨만을 골라내 그럴듯한 약효를 들먹이며 대중에게 먹이다니! 죽을 각오를 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걸 먹나.

물론 독이 되냐 약이 되냐는 양이 결정한다. 독이라도 양이 적으면 인체에 영향이 없다. 매실청에 들어있는 아미그달린의 양으로는 그렇게 해롭지 않다는 뜻이다. 청매실에 아미그달린의 함양이 최대치일 때 씨 건조중량 1k당 47g 정도 들어있다. 청산으로 치면 0.29g에 해당한다.

청산은 중추신경의 마비를 일으키고 또 혈액 중의 산소공급을 방해하여 순식간에 생명을 잃게 하는 무서운 독이다. 치사량은 청산으로 약 0.05g 정도다. 청매실의 씨 약 200g에 들어있는 양이다. 그러나 매실 씨를 먹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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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유로 동전과 비교한 청산가리 치사량. 중독시 10분 이내에 사망에 이른다. [출처 위키백과]




매실이 익으면 아미그달린의 양은 대폭 줄어든다. 과일은 보통 익은 숙과로 먹는데 왜 매실만은 풋것을 먹는지 모르겠다. 풋것을 먹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한 것 같다. 보통 우려낸 액을 먹고 과일 부분은 버리거나 가끔은 장아찌로 먹는다. 좋다는 성분은 대개 과일 부분에 남아 있는데도 그렇다.

우리가 매실을 먹게 된 것은 아마도 최근인 듯하다. 오래전부터 먹어오던 살구와는 대단히 닮았다. 익은 것은 서로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다. 매실나무는 梅蘭松竹하면서 사군자에 나오는 친근한 유실수이지만 그 열매는 숙성 중에 잘 떨어지고 맛도 시원찮아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귀중하게 여기지 않은 듯하다.

그러면 왜 이렇게 붐이 일어났을까? 어떤 이의 주장은 200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허준’이라는 연속극 때문이란다. 청매실을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취급한 덕분으로 매실이 약으로 자리를 잡아버렸다는 것이다. 거기에 쇼닥터, 한의, 요리사, 농부 가리지 않고 매실의 효능을 찬양하는 일에 전력을 다한 결과란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매실은 과일이고 매실청은 식품에 지나지 않는다. 약품인 식품은 없다. 특별히 건강에 좋거나 치료 효과가 있는 건 아닌데도 여느 건강식품처럼 과대포장 한 결과가 이런 분위기를 초래 한 것이 아닌가도 싶다.

이번 사건으로 잘못 알려진 정보가 혹여 사람 잡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구씨를 식품원료로 일부 인정하고 있는 남미 등에서 해외 직구로 들여온 경우가 많았다 한다. 이도 여느 건강식품처럼 무책임한 쇼닥터들의 장삿속이거나 아니면 어설픈 대체의학의 부추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도 싶다.

다시 말하지만, 살구씨에 항암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는 일부 허접한 논문에서 비롯됐다. 미 국립암연구소에서도 아미그달린에 항암효과가 없다는 것을 이미 발표했다. 인터넷 혹은 카더라 통신에서 오가는 암 환자들의 위험한 대화가 염려된다.

이태호 부산대 명예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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