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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전시 성폭행 피해자들 소원은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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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전쟁의 성폭력 증언으로 김복동상 수상 바스피예 크라스니치-굿맨

경향신문

18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끝나지 않는 고통- 전시성폭력 범죄의 재발 방지를 위하여’ 국제심포지엄에서 코소보 피해 생존자 바스피예 크라스니치-굿맨이 제2회 김복동평화상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정의기억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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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김복동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바스피예 크라스니치-굿맨(36)은 1998~1999년 벌어진 코소보전쟁의 전시 성폭력을 처음으로 공개 증언한 피해 생존자다. 집으로 들이닥친 세르비아 경찰들에게 끌려가 성폭력 피해를 당한 1999년 4월, 그는 16세였다.

“범죄 가해자는 밝혀졌지만, 20년이 넘도록 정의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코소보전쟁 기간 중 성폭행 피해를 당한 2만명의 여성과 남성들이 원하는 건 정의입니다. 제가 원하는 것도 정의입니다.”

끔찍한 순간 죽여달라 했으나

더 고통스럽게 살라며 살려줘

대법원은 가해자에 무죄판결


18일 정의기억연대 주최로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심포지엄 ‘끝나지 않는 고통, 전시 성폭력 범죄의 재발 방지를 위하여’에 연사로 참석한 그는 끔찍했던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너무 놀라 진이 빠진 상태로 의식을 잃었습니다. 의식이 돌아오면 하염없이 울며 그냥 죽여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는 ‘아니, 넌 살아있는 게 더 고통스러울 거야’라고 답했습니다. 솔직히 그의 말대로 고통스러웠습니다.”

크라스니치-굿맨은 경찰관의 저주대로 살지 않았다. ‘고통의 삶’에서 벗어나 투쟁의 길로 나섰다. 그는 1999년부터 유엔 코소보 임시행정부(UNMIK)와 유럽연합 법치임무단(EULEX)에서 성폭력 피해를 증언했다. 코소보전쟁 당시 벌어진 전시 성폭력을 고발하는 첫 공개 증언이었다. 이후 강간 혐의로 기소된 세르비아 경찰관 두 명은 재판에서 각각 징역 10년, 12년형을 선고받았지만, 2014년 코소보 대법원은 이를 뒤집고 무죄 판결을 내렸다. 크라스니치-굿맨은 “저를 성폭행한 가해자는 자신의 범죄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고 여전히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과 함께 “정의를 위해 싸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비 마이 보이스(Be My Voice)’ 캠페인을 진행하고, 코소보 방송이나 미국 의회 등에서 공개 증언을 이어갔다. 현재는 코소보고문피해자재활센터(KRCT)에서 전시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행사를 맞아 한국을 방문해 김복동·길원옥 할머니와 만나기도 했다.

피해자 재활 등 사회활동 전개

지난해 김복동 할머니 뵙기도

“제게 용기를 심어주신 분”


크라스니치-굿맨은 올해 ‘김복동평화상’(제2회) 수상자다. 고 김복동 할머니가 무력분쟁지역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해 제정한 상이다. 그는 “이 상은 지금까지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생존자들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용기를 심어주고, 사회적 낙인과 차별에 대항할 수 있도록 한다”며 “그래서 저에겐 더욱더 큰 의미가 있는 상”이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세계 전시 성폭력 추방의날(6월19일)’을 맞아 열린 이날 심포지엄에는 우간다와 콩고민주공화국의 전시 성폭력 생존자 지원단체 활동가들도 참석했다. 지난해 제1회 김복동평화상을 수상한 아찬 실비아는 북부 우간다 굴루 지역의 성폭력 피해를 이날 발표했다. 그는 발표 전 우간다 성폭력 피해자들과 인연을 맺은 김복동 할머니를 추모했다. 그는 자신의 짧은 머리를 가리키며 “우간다에선 돌아가신 분을 추모할 때 머리를 자른다. 김복동 할머니는 우리의 영웅이고, 우리의 할머니였다”고 했다. 정의기억연대는 내년 우간다에 성폭력 피해 생존자를 위한 쉼터 ‘김복동 센터’를 건립한다.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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