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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北어선 삼척항 들어와 南주민과 대화까지… 해상판 ‘노크 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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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뚫린 軍 해상경계]아무 제지 안받고 부두 방파제까지

민간인이 발견 “어디서 왔느냐” 묻자 “北에서 왔다”… 육지에도 올라와

“휴대전화 빌려달라” 요구하기도… 주민 신고 받고 軍-경찰 긴급출동

2명 귀순 2명 北송환… 어선은 폐기, 일부는 北특수부대 군복 입어

동아일보

15일 강원 강릉 삼척항 인근에서 발견된 북한 어선 주민 4명이 목선 위에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배 갑판 위쪽에는 어구를 고정하는 데 쓰이는 것으로 추정되는 장대와 옷가지, 도구들이 있다. 북한 주민들은 배를 정박한 후 우리 주민에게 “북에서 내려왔다”며 대화까지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KBS 화면 캡처


군 당국이 15일 강원 강릉 삼척항 인근에서 발견했다고 발표했던 북한 어선이 당시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항구로 들어와 부두에 정박한 상태에서 우리 주민에 의해 최초 발견된 것으로 18일 드러났다. 또 북한 주민들과 대화를 나눈 우리 주민의 신고로 신병 확보가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군이 허술한 해상·해안 경계실태로 초래된 ‘해상판 노크 귀순’을 감추고,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사실을 은폐하려고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 부두 정박 후 우리 주민과 대화까지


당초 군은 북한 주민 4명이 탄 어선이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와 15일 오전 6시 50분경 삼척항 인근에서 발견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목격한 현지 주민들의 증언과 촬영사진 등이 속속 공개되면서 군의 발표가 사실과 전혀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북한 주민들이 탄 어선(소형 목선)은 항구로 유유히 진입한 뒤 부두 방파제에 정박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지 주민이 촬영한 것으로 알려진 사진에서도 방파제에 접안한 북한 목선에 탄 북한 주민 4명이 서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지만 군이나 경찰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당시 군과 해경이 북한 어선의 항구 진입 및 정박 때까지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결정적 정황으로 해석된다.

북한 목선을 처음 발견한 것도 해안경계 근무를 하는 군이나 해경이 아니라 민간인이었다. 우리 측 어민이 북한 어선을 수상히 여겨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자 북한 주민은 “북에서 왔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주민 중 일부는 “휴대전화를 빌려 달라”고 우리 주민에게 요구하거나 육지로 올라와 서성거린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주민의 신고를 받고 나서야 경찰차와 군 병력이 출동해 부랴부랴 현장 통제에 나섰다는 것이다.

○ 치밀하게 남하 준비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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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이 타고 온 목선은 높이 1.3m, 폭 2.5m, 길이 10m 안팎으로 알려졌다. 낡은 소형 어선으로 배의 좌우현에 별다른 장비 없이 한글과 숫자로 이뤄진 식별용 붉은색 글씨가 적혀 있다. 갑판 위쪽에 어구를 고정하는 장대와 옷가지 꾸러미 등을 제외하면 어구는 실려 있지 않았다. 또 발견 당시 일부 주민이 두꺼운 방한복을 입은 상태인 점에 비춰 애당초 귀순 목적으로 NLL을 넘어온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선임분석관은 “사진 속 북한 어선의 선체 아래에 달린 여러 개의 비닐봉지는 식량 등 탈북 물품을 넣어 젖지 않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이 북한군 특수부대에서 지급되는 위장무늬 군복 하의를 입고 있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현역 북한군이거나 최근에 전역한 민간인일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소형 목선을 타고 130km 이상을 남하해 남측 항구에 정박한 것으로 미뤄볼 때 이들이 조류 상황 등을 잘 알고 사전에 치밀하게 귀순 준비를 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 당국은 이날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주민 2명을 제외한 나머지 2명을 판문점을 통해 북측에 송환한 뒤 선장 동의하에 어선을 폐기했다고 밝혔다.

군 안팎에선 비무장 북한 주민들이 탄 소형 목선에 뻥 뚫린 해상·해안경계 실태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보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 당국자는 “‘이런 대비 태세로 고도로 훈련된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기습 침투하면 어떻게 할 거냐’는 비판을 받아도 군이 할 말이 없게 됐다”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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