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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G20 코앞인데, 한국 외교 실종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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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당국자 "한일 정상회담·장관회담 아무것도 결정된것 없다"

이달 남북정상회담·시진핑 방한 무산… '미·일 vs 북·중·러' 대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에 대해 청와대와 외교부는 18일 "비핵화 대화에 도움이 될 것" "좋은 징조"라며 환영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시 주석의 전격 방북(20~21일)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29일쯤)에 앞서 '원 포인트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추진하던 정부의 계획이 사실상 물거품 됐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미·중 간 무역·기술 갈등으로 운신의 폭이 좁아진 상황에서 전통적 우방들과의 관계까지 삐걱대고 있다는 것이다. 외교가에선 "한국 외교 실종 사태"란 말이 나온다.

우리 정부는 시 주석의 방북을 발표 직전에야 통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일 오슬로에서 한·미 정상회담 전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을) 언제든 만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시 주석의 방북 계획을 알았다면 이런 말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지적이다. 시 주석의 방북과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사이에 남북 정상회담을 열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시 주석 방북으로 '트럼프 방한 전 남북 정상회담' 개최 명분도 사라졌다는 평가다. 외교 소식통은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한 건 한·미 회담에 앞서 김정은의 생각을 직접 듣고 미국에 생생히 전달하기 위해서였다"며 "그런데 우리가 하려던 역할을 중국이 낚아챘다"고 했다. 남북 정상회담은 물론 정부가 공들여 추진한 시 주석의 G20 전후 방한(訪韓)도 모두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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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남북 관계를 최우선시하는 정부 기조 속에 대미·대일 외교에 비상등이 켜졌다는 점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G20 정상회의 때 한·일 간 정상회담과 장관회담 개최 여부에 대해 "아무것도 결정된 바가 없다. 아직 열흘의 시간이 있다"고 했다. G20 회의를 코앞에 두고 주최국(일본)과의 회담 일정도 잡지 못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중국과 연일 충돌 중인 미국은 '반(反)화웨이 전선' 동참 요구 등에 머뭇대는 한국에 대한 불만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달 말 방한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반화웨이' 외에도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작전 지지, 주한미군 사드 정식 배치,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 등을 강력 요구할 것으로 관측된다. 설상가상으로 정부는 최근 "(중국) 화웨이 장비는 군사 안보에 영향이 없다" 등의 발언으로 미국의 반발을 사고 있다.

한·미·일 3각 공조가 고장 난 상황에서 북·중·러는 밀착하고 있다. '한·미·일 대(對) 북·중·러'라는 전통적 대립 구도에서 한국만 빠진 '미·일 대(對) 북·중·러' 구도가 선명해진 것이다. 한국을 두고 '샌드위치론' '외교 실종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미·중 정상 모두 "우리 편에 서라"고 요구하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여전히 '중재자'를 자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란 지적이다. 위성락 전 주(駐)러시아 대사는 "미·중 갈등 속 시 주석의 방북은 우리의 중재자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당장 19일 서울에선 한·중 경제공동위가 열린다. 외교부 당국자는 "(화웨이 등) 5G 문제는 의제에 안 들어 있다"고 했지만 외교가에선 "중국이 이 문제를 짚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정부의 '유일한 희망'인 남북 관계도 뜻대로 굴러가지 않고 있다. '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 대화를 걸어 잠근 북한은 우리 정부의 식량 지원 제안,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 제안에 모두 침묵하고 있다. 북한이 이번에 시 주석의 방북에 신속히 합의한 데에는 미국 입장을 대폭 반영한 최근 문 대통령의 발언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주 오슬로에서 북한을 향해 "실질적 비핵화 의지를 보이라"며 '선(先)실무 협상, 후(後)정상회담' 원칙을 강조했다. 북한에 다가가면 미국이 눈치 주고, 미국과 보조를 맞추면 북한이 반발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이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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