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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아무도 안 찾던 땅인디 투기라고?" 손혜원 기소에 뿔난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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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전남 목포 '손혜원 거리' 가보니

檢 "공무상 비밀 정보 이용한 부동산 투기"

주민 상당수 "집 한 채 수십억 서울과 같나"

'정치적 희생양' '500억 사업 차질' 우려도

市 "주민뜻 모으는 재생사업…보안개념 아냐"

중앙일보

18일 전남 목포시 유달동 일명 '손혜원 거리'. 지난 1월 손혜원(무소속) 의원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진 곳이다. 일제 때 지어진 적산가옥 등이 많아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됐다. 게스트하우스 '창성장'은 손 의원의 남자 조카가 건물 공동명의자 중 1명으로 이름을 올린 곳이다. 목포=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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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집값은 한 채가 수십억인디(데). 그런 거 사는 게 투기지 여그(여기)는 엄청 낙후 지역인디."

18일 오후 전남 목포시 유달동 일명 '손혜원 거리'. 지난 1월 손혜원 당시 더불어민주당(현 무소속) 의원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진 곳이다. 일제 때 지어진 적산가옥 등이 많아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됐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 정모(80)씨는 "투기를 하려면 서울에서 하지 어떤 골(머리) 빈 놈이 다 죽어가는 거리에서 하나. 이 근방 사는 사람들은 투기로 안 본다"며 이렇게 말했다. 검찰이 이날 "손혜원 의원은 공무상 비밀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한 게 맞다"고 발표하자 손 의원이 부동산을 산 '손혜원 거리' 주민들은 술렁였다.

서울남부지검은 손 의원을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부패방지법) 위반,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등기에 관한 법률(부동산명의등기법) 위반으로 불구속기소 했다. 손 의원은 목포시청에서 받은 보안 자료를 이용해 2017년 6월부터 지난 1월까지 목포시 도시재생 사업 구역에 포함된 약 14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지인과 재단 명의로 매입한 혐의다.

손 의원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검찰 수사 결과 사실로 드러나면서 주민 여론은 엇갈렸다. 이날 만난 주민 대부분은 검찰에 비판적이었다. '손 의원은 구세주다' '명예시민증이라도 줘야 한다' 등 손 의원을 두둔하는 주민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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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원 의원 조카가 운영하는 카페. 목포=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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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넘게 오토바이 수리점을 하다 장사가 안돼 지난해 치워버렸다(폐업했다)"는 정씨는 '손혜원 예찬론자'였다. 정씨 가게는 게스트하우스 '창성장' 근처에 있었다. 창성장은 손 의원의 남자 조카가 건물 공동명의자 중 1명으로 이름을 올린 곳이다. 그는 창성장을 가리키며 "사람들이 엄청 온다. 벌써 석 달 예약이 찼다고 합디다"라고 했다. 손 의원 조카가 운영하는 '손소영 갤러리카페'도 평일 낮인데도 손님들로 북적였다.

손 의원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옷집을 운영하는 이모(66)씨는 "야당에서 정치적으로 '게이트(권력형 비리)'를 만들려고 이런 사달이 난 것이지 손 의원은 예술가 눈으로 적산가옥이 잘 보존된 이 거리를 살리기 위해 사비를 투자했다"며 "자기가 여기서 국회의원을 할 것도 아닌데 구태여 목포까지 올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는 "법원에 가면 무죄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한 택시기사는 "손 의원 아니었으면 포항과 대구에서 목포까지 '패키지 관광'을 오겠느냐"며 "관광객들이 손 의원 때문에 궁금해서라도 이곳을 많이 찾아 주변 식당·카페·여관·잡화점 등이 다 혜택을 본다"고 했다. 60대 점포 주인은 옆집을 예로 들며 "저 집도 분식집을 하려고 공사 중"이라며 "손 의원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누가 쓰레기가 수북하고 지붕이 주저앉은 집들에 투자했겠느냐"고 했다.

'손 의원 사건이 근대역사문화공간 조성 사업에 걸림돌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익명을 원한 한 남성(84)은 "검찰이 '부동산 투기가 맞다'고 결론 내리면서 그나마 어렵게 일었던 개발 붐이 다시 가라앉을까 걱정된다"며 "내 생전에 이 낡은 거리가 바뀌는 모습은 못 보고 죽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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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목포시 유달동 일명 '손혜원 거리'에 설치된 안내판. 목포=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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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는 "(검찰이 말하는) 보안 자료 자체가 존재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목포시 관계자는 "도시 재생 사업은 위에서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확보해 그대로 추진하는 톱다운 방식이 아니다"며 "사전에 공청회 등을 통해 주민들과 함께 토론하고 의견을 모아 추진하기 때문에 보안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주민 모르게 극비리에 추진된 사업이 아닌데 '보안 자료'니 '유출'이니 말하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이다.

목포시는 "애초 계획대로 차질 없이 근대역사문화공간 조성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업은 문화재청 공모 사업이다. 일제강점기 적산가옥 등이 밀집한 목포 유달동과 만호동 일대 11만4038㎡를 등록문화재 중심으로 보수·정비하는 게 골자다. 올해부터 오는 2024년까지 5년간 국비 등 50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된다.

시 관계자는 "검찰 발표를 봐도 (목포) 역사공간과 관련해선 언급이 없었다"며 "애초 외부인의 힘을 빌려 공모 사업에 선정된 게 아니라 공무원들이 전문가들과 지혜를 모아 선정됐기 때문에 (손 의원 투기 의혹이 불거진) 그 당시에도 크게 걱정을 안 했다"고 했다.

그는 "등록문화재 전체를 매입하겠다는 게 아니라 5채 정도 (소유자가) 지난해 감정 평가를 받아보겠다고 해서 그분들을 상대로 협상하고 있다"며 "어떤 도시 계획 사업이든 처음부터 개시된 보상가대로 팔려는 소유자는 없다. 이분들도 지금 보상받고 나가는 게 나을지, 아니면 민간인한테 파는 게 나을지 저울질하고 있다고 본다"고 했다. '등록문화재 매입이 더딘 게 손 의원 사건과 상관없다'는 취지다.

목포=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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