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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서 적 후방 교란한 20명의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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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암산 입구에 전적 가리는 새 안내판 세워져

6·25전쟁때 북한군 후방을 교란하며 활약하다 전사한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를 기리는 새 안내판이 세워진다.

육군사관학교와 남양주시는 19일 불암산 입구에 호랑이 유격대를 알리는 새 안내판을 세우고 제막식을 연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1950년 육군사관학교 생도 행진 모습. /연합뉴스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는 6·25전쟁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쟁 초기 북한군 후방을 교란하며 큰 전공을 세웠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엄청난 기세로 남하하자 이튿날인 26일 밤 국군 7사단 제9연대는 포천에서 퇴각해 육군사관학교에 집결했다. 다음날 육군사관학교장 작전 통제로 사관생도 1~2기와 9연대는 불암산 주변에 배치돼 태릉 쪽으로 들어노는 북한군에 대비했다.

당시 육군사관학교 사관생도 1기생은 임관을 2주일 앞둔 상태였고, 2기생들은 입교한 지 25일밖에 되지 않았다.

이후 의정부와 창동 방어선에서 철수한 부대가 한강 남쪽으로 이동했고, 북한군은 28일 미아리고개를 넘어 서울시내에 진입했다. 사관학교장은 퇴로가 차단되기 전에 철수명령을 내렸고, 상당수의 사관생도가 이 명령을 받지 못해 가까스로 한강을 넘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부는 끝내 한강을 넘지 못했다. 태릉에 있던 사관생도 1기 10명과 2기 3명, 9연대 7명 등 20명이 철수하지 못했다. 이들은 불암산 일대에서 암호명 '호랑이'로 유격 활동을 펼치기로 했다.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가 활동한 건 6월 29일부터 3개월 정도다. 이들은 불암산 동굴을 근거지로 삼아 북한군 후방을 교란하는 활동을 펼쳤다. 7월 11일에는 북한군을 기습 공격해 30여명을 사살하고 유류 50드럼을 비롯한 보급 물자를 폭파했다. 31일에는 북한군 차량을 파괴했고, 8월 15일에는 북한군 훈련소를 기습 공격했다.

특히 9월 21일에는 북쪽으로 끌려가는 주민 100여명을 구출했다. 일주일 뒤인 9월 28일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에 나서 드디어 서울을 탈환했지만, 이때는 이미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가 전사한 뒤였다.

유격대로 활동한 생도 1기생은 강원기, 김동원, 김봉교, 박금천, 박인기, 이장관, 전희택, 조영달, 한효준, 홍명집 등 10명이다. 생도 2기생은 이름이 확인되지 않았고, 9연대 장병 역시 김만석 중사를 제외한 6명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육군사관학교는 이들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96년 불암산에 철판으로 된 안내문을 설치했다. 안내문을 설치한 지 23년이 지나 낡고 녹슬자 이번에 새 안내판으로 교체하게 된 것이다.

조광한 남양주시장은 "계급과 군번도 없는 사관생도들이 4차례에 걸친 전투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주민 100여명도 구출했다"며 "사관생도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꼭 알아야 하는 역사"라고 말했다.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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