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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총독부박물관 ‘비천상’ 모티브는 고구려 벽화… 작가-작품탄생 배경 의문 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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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일제가 건립한 조선총독부 박물관에서 천장 벽화로 제작한 비천(飛天·왼쪽 사진). 최근 일본 근대 화가 안도 도이치로의 유족이 소장하던 비천의 습작(오른쪽 사진)이 공개되면서 작가에 대한 정보를 새롭게 확인했다. 안도의 스케치북에는 ‘조선 경성 다이쇼 4년(1915년) 5월부터 7월’이라는 자필 메모가 있어 당시 경성에 머물며 비천을 제작했음을 알려준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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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빛 하늘에 연분홍색의 구름이 떠다닌다. 그 사이로 피리를 부는 여인 ‘비천(飛天)’이 있다. 고구려의 조우관(鳥羽冠)을 닮은 금관 장식을 머리에 쓰고 있지만 머리색과 눈동자는 짙은 푸른색이다. 한국 전통 회화 같으면서도 서양식 화풍이 배어 있다. 가로 6m, 세로 9m가 넘는 크기에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그림은 1915년 조선의 상징과도 같던 경복궁 한가운데에 걸렸다. 일제가 경복궁 근정전 동측의 동궁(東宮) 일대를 허물고 세운 조선총독부 박물관의 1층 천장 벽화다.

광복 이후에도 전통공예관, 학술예술원, 경복궁 관리사무소 등으로 사용된 옛 총독부 박물관은 1995년 진행된 경복궁 복원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조선총독부 청사 건물과 함께 철거됐다. 다만 ‘비천’은 뛰어난 예술적 가치 덕분에 철거 위기를 모면하고, 20년 넘게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보관 중이다. 하지만 작가와 제작 의도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학계의 과제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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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의 모티브가 된 고구려 강서대묘의 비천상 벽화 모사도(왼쪽 사진). 1912년 강서대묘를 조사한 일본 도쿄제국대학 연구진은 고분 벽화를 모사한 그림을 일본으로 가져갔다. 오른쪽은 일본 도쿄대에서 소장 중인 ‘강서대묘 천장고임 벽화의 천인 모사도’로 안도 도이치로가 실제로 참고한 그림으로 추정된다. 국립중앙박물관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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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비천의 작가와 작품의 탄생 배경을 알려주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진행한 ‘일제강점기 공공건물 벽화’ 조사 사업을 통해 일본의 근대 화가 안도 도이치로(1882∼1967)와 다나카 료(1884∼1974)가 비천의 작가임을 확인했다”며 “1915년 조선총독부의 보고서에서 고구려 강서대묘 벽화를 모티브로 한 사실도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1915년은 한일 강제병합이 일어난 지 5년째 된 해다. 당시 조선총독부 통감이던 데라우치 마사타케(1852∼1919)는 경복궁 궐내에 끔찍한 계획을 세운다. 식민 지배의 성과를 홍보하는 조선물산공진회를 대대적으로 개최하고, 이때 만든 공진회 미술관 건물을 박물관 용도로 영구히 경복궁에 두도록 한 것이다.

건물의 상징과도 같은 1층 천장 벽화를 무엇으로 채울지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총독부는 1912년 일본 도쿄제국대학 연구진이 발굴 조사한 평안도 남포의 강서대묘 벽화에서 모티브를 따올 것을 지시한다. 정미연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일제가 한반도에서 펼친 고적조사사업의 정당성과 성과를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시대 배경을 고려하면 주목할 만한 사실이 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 연합군 측으로 참전한 일제는 독일 등 열강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며 제국주의 국가로서의 면모를 공고히 한다. 미술사학자인 김영순 전 부산시립미술관장은 “일제는 숙원사업이던 만주 진출을 위해 육군성 산하에 만주철도조사를 설치하는 등 치밀한 계획에 나선 사실이 최근 일본 측 자료를 통해 확인됐다”며 “만주를 호령한 바 있는 고구려 역사를 활용하기 위해 강서대묘의 벽화를 차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전 관장은 지난해 일본 현지에서 안도 도이치로의 유족을 만나 소장 중인 ‘비천’의 습작을 확인했다. 논란이 분분했던 비천의 작가를 찾아낼 수 있던 배경이다. 안도는 일본 근대 미술의 거장 와다 에이사쿠(1874∼1959)의 제자로, 도쿄미술학교 교수를 지냈다.

김 전 관장은 “간토(關東)대지진(1923년)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공습(1945년) 등으로 인해 일본에서도 다이쇼 시대(1912∼1926)의 공공 건축물 벽화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 비천은 근대 미술을 연구하는 귀한 자료”라며 “부정적인 유산이지만 이를 정확히 연구하고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식민 역사를 올바로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