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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박찬수 칼럼] ‘친미 보수’에서 ‘친일 보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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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하기 전,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민갑룡 경찰청장을 찾았다. “잘 부탁한다”는 특별한 인사를 건네기 위해서였다. 사연이 있다. 2017년 11월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 한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 일행은 뜻하지 않은 곤욕을 치렀다. 청와대 만찬을 마치고 숙소인 하얏트 호텔로 돌아가던 도중, 세종문화회관 앞에 모여 있던 시위대가 트럼프 차량 행렬에 종이컵과 물병 등을 던진 것이다. 트럼프 일행은 곧바로 방향을 틀어 세종로 반대편 도로를 역주행해서 숙소로 돌아갔다. 주한 미국대사관과 한국 경찰이 가슴을 쓸어내린 ‘사건’이었다.

얼마 전 서울시가 광화문광장의 우리공화당 불법 천막 철거에 나선 것도 트럼프 대통령 방한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2년 전의 시위대가 ‘전쟁 반대, 트럼프 반대’를 내세운 진보 쪽 사람들이었다면, 이번엔 극우보수 진영의 반트럼프 시위를 염려하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북한을 혼내주리라 기대했던 트럼프가 판문점에서 김정은과 함께 북한 땅을 밟는 깜짝 이벤트까지 선보인 건 보수 진영에 짙은 배신감을 안겨줬다. 보수논객 정규재씨가 “이제 대한민국 보수는 트럼프나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노선을 하루빨리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 건 그런 정서를 대변한다. 주말마다 서울 도심을 헤집는 ‘태극기 집회’엔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가 여전히 등장하지만, “성조기를 뭐 하러 흔드나”라는 목소리도 내부에선 터져 나온다.

뿌리 깊은 친미 성향의 한국 보수가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노선’을 추구한다면 어쨌든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게 요즘 보면 ‘일본 의존’으로 그 대상만 바뀐 것처럼 보인다. 한-일 관계 파탄의 책임을 오로지 문재인 정부에 돌리고, 심지어 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막으려 삼권분립까지 훼손했던 박근혜 정권 행동이 옳았다고 강변하는 건 지나쳐도 한참 지나치다.

아무리 탄생부터 외세 의존적이었다 해도 보수 진영의 이런 모습은 꽤 낯설다. 진보를 ‘철 지난 민족주의’라 비난하면서도 일본 문제에서만은 반일 감정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데 익숙했던 게 한국 보수정권의 모습이었다. 보수의 원조로 꼽히는 이승만 대통령은 해방 직후 반민특위를 무력화시키면서도 일본과는 절대 수교할 수 없다고 버텼다. 한-일 국교 정상화 주역인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대 김대중 납치사건과 육영수 저격사건을 계기로 대규모 반일 관제데모를 부추겨 정권 유지에 활용했다.

이게 수십년 전의 일만은 아니다. 지금의 한-일 관계 냉각은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서 비롯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몰래 추진하다 어그러지자 이 대통령은 돌연 대일 강공으로 돌아서 역대 어느 대통령도 하지 않은 독도 방문을 실행했다. 친인척 비리 등으로 정치적 위기에 처한 그가 ‘일본 카드’를 여론 반전의 계기로 활용했다는 건 손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때 자유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은 쌍수를 들어 지지했다. <동아일보>의 1면 헤드라인 제목은 “목숨 바쳐 지켜야 할 진정한 우리 영토”라는 이 대통령 발언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한-일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인데 보수 진영은 아베 신조 정권을 비판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적 실책을 짚는 데 훨씬 집중하고 있다. 물론, 강경화 장관을 비롯한 외교안보 라인이 지난 수개월간 한-일 현안에 제대로 대응해왔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이명박 대통령보다 10배는 더 무모한 아베 총리의 행동을 이해할 만한 빌미를 제공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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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가 무역 갈등까지 불사하며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는 건, 단지 참의원 선거 승리라는 단기 목표를 위한 것으로만 보긴 어렵다.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한-일 관계의 기반은 북한을 ‘공동의 적’으로 상정한 안보·경제 협력이었다. 그런데 최근 한반도 정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이런 한-일 관계 기반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아베의 강수는 동북아 정세의 근본 변화까지 염두에 둔 좀더 장기적인 포석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보수 세력이 아베에게 비교적 호의적인 건, ‘반북·반통일’이라는 기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미국의 트럼프가 빠져나간 자리의 심리적 공백을 아베가 채워주고 있는 것일까.

박찬수 논설위원실장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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