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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아베의 무역 공격, 비논리적인데도 우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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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태형 이코노미스트] [편집자주] 색다른 시각을 통해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같은생각 다른느낌]아베의 정치적 술책에 한국이 내부 분란 모습을 보여선 안 돼

머니투데이

/그래픽=김현정 디자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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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베 총리는 7일 후지 TV의 보도 프로그램에 나와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의 수출 통제를 강화한 이유에 대해 한국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지난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대한민국 수출관리 운용 재검토 대해’를 발표해 "한일간의 신뢰가 심각하게 손상돼 수출관리가 어려워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폴리이미드, 레지스트, 불화수소 3품목을 포괄적 수출 허가 품목에서 제외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아베와 일본 관료들은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피해자 배상 판결이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신뢰감 손상의 이유로 들면서 이번 수출 규제가 정치적 보복조치란 것을 명백히 드러냈다. 또한 1일자 요미우리 신문은 “일본 정부는 기본적으로 수출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방침으로 사실상의 금수조치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러다보니 일본 내에서는 한국이 국제무역기구(WTO)에 제소할 경우 일본이 불리할 것을 직감하고 일본 정부와 언론의 입단속을 주문하는 요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중부대학 호소카와 마사히코 교수는 ‘니케이 비즈니스 퍼블리케이션스’(Nikkei Business Publications)에 3일과 5일에 기고한 글에서 “이번 조치의 경위는 신뢰관계가 손상됐다는 말을 빼고 수출관리 문제만 가지고 설명해야 한다”면서 “수출규제나 금수조치란 말도 쓰지 말라”고 조언했다. 한국 강제징용피해자 배상판결은 이번 조치의 일반적인 배경이나 일본의 정치논리일 뿐이므로 어디까지나 수출관리상의 이유로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으로의 수출 우대는 2004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이번 조치는 2003년까지의 일반 절차로 되돌린 것이므로 수출규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개별 심사에 걸리는 표준처리기간이 90일이라고는 하나 실제로는 평균 4~5주 정도라며 애써 피해를 축소했다.

일본의 이런 대응안은 과거 중국의 희토류 대일 수출 규제와 관련된 경험에서 나온다. 센카쿠 열도를 둘러싸고 대립했던 중국이 2010년 희토류의 일본 수출을 제한했으나 WTO에서 패소했다. 호소카와 교수는 일본의 입장에서 아베나 일본 언론이 정치적 보복조치라고 드러내면 일본도 마찬가지로 패소할 것이라 경고한 것이다.

그럼에도 당분간은 아베가 일제 강제징용피해자 배상 판결 등에 대한 사실상의 대항조치라고 떠벌리는 것을 입막음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처음부터 이번 수출 규제 조치를 자국민의 애국심에 호소할 정치적 술책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21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현재 아베는 경제와 정치·외교 모두 궁지에 몰린 상황이다.

아베 정권은 일본의 장기 불황을 타개하고자 물가상승률 2%, 명목경제성장률 3% 목표를 세웠지만 2013~2018년 평균 명목경제성장률 1.8%, 실질경제성장률 1.2%, 소비자물가상승률 0.9%에 그쳤다. 작년 일본의 실질경제성장률은 0.8%로 전년(1.9%) 대비 1.1%p나 고꾸라졌다.

올해 들어와서 4월 세계무역기구(WTO)는 한국의 일본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가 타당하다는 판정을 했다. 최근에는 노후자금으로 연금 외에도 약 2억원이 더 필요하다는 금융보고서가 나오면서 지지율이 흔들렸고, 올 10월 부가세 인상을 앞두고 일본 내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이다. 7월에는 올해 포획량을 227마리로 제한한 상업 포경을 허용한 선심성 행정까지 선보였으나 국제적 비난만 키웠다.

대외적으로도 망신살이 뻗친 한해였다. 일본은 2016년 러시아와 경제 협력 차원에서 3000억엔을 지원하는데 합의했으나 올해 6월 푸틴으로부터 쿠릴 4개섬의 반환 계획이 없다는 답을 들어야 했다. 든든한 우군인 트럼프에겐 방일 때마다 무기 구입 등 큼직한 선물을 안겼지만 한국 남북문제에선 패싱(=소외)을 당했고 참의원 선거 후 미국과의 통상교섭에 과감히 양보하겠다는 약속까지 발각된 상황이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일본은 의장국인데도 미중 무역협상에 밀려 주목받지 못했다. 이란 핵문제로 대립하는 미국과 이란을 중재하겠다고 나섰다가 양쪽 모두에게 호의를 얻지 못했다. 일본에서조차 “이젠 믿고 의지할 바는 정말 싫어하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 뿐이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올 지경이다.

결국 아베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국으로의 수출 규제 조치를 통해 일본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고 극우 애국심에 호소하는 길을 택했다. 최소한 21일 참의원 선거 때까지는 규제를 철회하지 않고 보복조치라는 말도 여전히 흘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수출 금지가 아니라 이전 절차로의 회귀라는 방어논리도 준비할 것이다. 이처럼 아베는 자국민에게는 정치 보복임을 밝히면서도 대외적으로는 수출관리 문제인 것처럼 이중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국내 일각에서는 아베가 정치적 술책으로 벌인 일을 가지고 정부나 기업이 미리 대비를 하지 않았다며 자기반성부터 해야 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차분히 대응하자면서 자발적인 일본제품 불매 운동마저 폄하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일방적으로 걸어 온 불합리한 무역 공격에 대해 우리가 내부적으로 분란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여선 안된다. 우선은 2010년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한 때 일본이 대응했듯이 일본의 수출 규제가 정치적 의도임을 밝히고, WTO 제소를 통해 정당치 못한 수출 규제를 철회하게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소재·부품 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로 일본의 기술적 우위를 흔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 더욱 명확해졌다.

김태형 이코노미스트 zestth@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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