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폭삭 붕괴된 백제 임금의 '휴식 궁궐?' 화지리 유적의 수수께끼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기와와 지붕에서 그대로 무너져 내린 화지산. 화재로 전소되어 폭삭 붕괴된 것으로 보인다. |백제고도문화재단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부여 화지산 유적은 예부터 사비백제 시기(538~660)의 이궁지(離宮址)로 알려졌다. 이궁이란 왕이 정사를 보는 정궁 이외의 곳에 따로 세운 궁궐이다. 그래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부소산성 및 관북리 유적 등과 함께 백제 사비기의 중요 유적으로 대접받았다. 사적 제425호로 지정돼있다.

그런데 이 화지산 유적은 남쪽을 향한 남면(南面)인 사비도성 내 다른 건물지에 견줘 서쪽을 향한 서면(西面)인게 특징이다. 또한 유적의 서편에는 “634년(무왕 35년) 3월 20여리의 물을 끌어들이고 사면 언덕에 버들을 심고 물 한가운데 섬을 쌓아 조성했다”(<삼국사기> ‘백제본기’)는 궁남지가 보인다. 화지산의 해발은 50m에 불과하지만 도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이 유적에서는 규모가 아주 큰 초석 건물지 등 심상치않은 유구와 유물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경향신문

화지산 유적의 건물지. 초석 사이에서 연화문 수막새가 확인됐다.|백제고도문화재단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재단법인 백제고도문화재단이 백제왕도 핵심유적 보존관리 사업의 하나로 이 화지산 유적을 발굴하고 있는데, 지난 2월부터 진행된 6차 조사에서 초석건물지 3동을 확인했다. 심상육 백제고도문화재단 문화재조사부장은 11일 “이 초석건물지 3동은 2018년 확인한 건물지 3동과 연결되고 있다”고 밝혔다. 확인된 6동은 모두 서향 건물이며, 초석은 원형과 긴사각형, 사각형 등 다양한 형태였다. 초석과 초석 사이에는 고맥이(기와 건물에 벽체를 조성하기 위한 하부시설)가 보였다. 또 지붕 조성에 쓰였을 연꽃무늬 수막새(추녀나 담장 끝에 기와를 마무리 하려고 사용된 둥근 형태의 와당)와 기와 등도 보였다. 건물지의 앞쪽과 뒤쪽에 조성한 배수구와, 배수구 내부에서 다량의 기와와 토기도 확인했다. 초석건물지는 옆면이 2칸 이상인 건물지와 옆면이 1칸인 회랑형 건물지가 나란히 연결되는 특징을 지녔다. 또한 화지산유적 서쪽 비탈면에서 대지 경사면의 암반을 ‘L’자형으로 땅을 판 다음 흙으로 일부를 다시 메워 평평한 대지를 조성한 흔적을 확인했다. 백제인들은 이런 방식으로 계단식 대지를 조성하여 건물들을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확인한 초석건물지와 계단시설 등의 유구와 함께 연꽃무늬 수막새, 백자 조각과 백자 벼루(2015년 출토) 등의 유물은 심상치 않다. 심상육 부장은 “사비백제기의 왕궁인 부여 관북리와 익산 왕궁리 등에서 나타난 유물·유구와 맥락을 같이 한 국가 중요시설이었음을 재확인시켜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유적은 무왕을 비롯한 백제 사비기 임금의 이궁일 가능성이 짙어졌다.

경향신문

기와지붕이 폭삭 내려앉은 건물지에서 확인된 출토유물들.|백제고도문화재단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백제 임금들은 이 화지산 이궁을 어떤 용도로 사용했을까. 다른 도성 내의 건물과 달리 서쪽을 향하고 있다는 점, 인공연못인 궁남지 인근이라는 점, 도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빼어난 조망권을 지닌 점 등을 미뤄보면 이 유적은 정사에 시달린 백제 임금이 잠시 짬을 내어 머리를 식힌 휴식공간이 아니었을까. 물론 아직 확인되지 않은 추정일 뿐이다.

경향신문

화지산 유적의 입지. 해발 50m에 자리잡고 있으며 궁남지가 한눈에 보인다. 다른 사비도성의 건물들이 남향인데 반해 화지산 유적의 건물은 서향이다. 정사에 찌든 백제 임금들이 잠깐 휴식을 취한 이궁이 아니었을까.|백제고도문화재단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수수께끼는 초석건물지들이 폭삭 붕괴된 채 확인됐다는 것이다. 2015년 조사에서 일부 건물지에서 출토된 기와를 보면 불에 타 터진 흔적이 역력하다. 이번에 확인된 건물지의 경우 기와가 지붕에서 그대로 무너져 내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건물의 붕괴원인이 화재라고 할만한 직접증거는 없지만 하부구조에서 불에 탄 흔적인 남아있다. 이 화지산 유적은 사비백제 시대 이후의 유구와 유물은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곧 백제멸망과 함께 이 유적이 패기됐다는 뜻이다. 이 유적의 건물들이 백제 멸망 때 불에 탔거나 다른 어떤 이유로 한꺼번에 붕괴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 역시 추론일 뿐이다. 심상육 부장은 “8월까지 진행되는 조사에서 확인되는 추가내용을 바탕으로 건물지의 성격을 명확히 밝혀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