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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째 섬마을 진료 `청산도 슈바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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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한 1년만 있다가 떠나려 했는데 어쩌다보니 15년 넘게 머물고 있네요."

노의사는 담담했다. 또 수줍어했다.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상이라고 거듭 말했다.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도 내 유일한 의사인 이강안 씨(83). 그가 JW중외제약이 수여하는 올해 제7회 성천상 수상자로 15일 결정됐다. 성천상은 의료봉사를 이끌어온 이들에게 주는 상이다. JW그룹 공익재단인 중외학술복지재단은 "생명 존중의 숭고한 정신을 음지에서 묵묵히 수행해 온 이 원장은 참의료인으로서 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며 그의 수상 이유를 밝혔다.

영화 '서편제' 무대로 잘 알려진 청산도는 완도군 내 200여 개 섬 가운데 세 번째로 큰 곳이다. 하지만 이곳엔 보건지소를 제외하면 병원이라곤 딱 하나, 푸른뫼중앙의원뿐이다. 이곳 원장으로 재직 중인 이씨는 2004년부터 간호사 1명과 물리치료사 2명 등 총 5명의 직원과 함께 섬 내 유일한 의사로 활동해 오고 있다. 1962년 전남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 잠실병원 부원장과 혜민병원장을 거쳐 1993년 서울 화곡동에 이강안의원을 개원해 10년 넘게 운영해 온 그는 2004년 의사 일을 관두고 소일거리나 하며 지내려 했다. 하지만 그런 생활도 고작 한 달 만에 끝났다. 지인 소개로 푸른뫼중앙의원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원장은 15일 매일경제신문과 전화통화에서 "2003년 문을 연 청산도 내 유일한 병원인데 1년 새 의사가 3명이나 바뀌었다는 얘길 들었다"며 "모두들 섬 생활을 이겨내지 못하고 관둔 모양인데, 늙은 나라도 가서 폐원 위기에 처한 병원을 살려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그 길로 아내와 함께 내려왔다"고 말했다. 그도 처음에는 1년 정도 섬 생활을 각오했지만 마음씨 좋은 주민들과 어울려 제2의 고향에 온 것처럼 지내다 보니 어느 새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원장의 근무시간은 오전 7시 40분부터다. 청산도에 사는 2200여 명 주민이 생업에 바빠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아침 7시 40분에 와보면 벌써 30여 명 주민이 진료를 기다리고 앉아계신다"며 "오늘(15일)은 수상 소식도 전해지고 해서 빵 100개를 준비해 아침부터 이분들께 나눠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하루 동안 살피는 인원은 120명 정도. 지금까지 누적 48만여 명이 그의 손을 거쳤다.

공식 진료는 오후 4시 30분에 마감되지만 그 이후에도 아픈 주민들은 이 원장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왕진'을 자주 나가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거동이 불편한 주민들 집엔 직접 찾아가 진료하는 왕진을 자주 하고 있고, 병원에서 5분 거리에 자택이 있기 때문에 진료시간 이후 주민들이 우리 집을 직접 찾아오기도 한다"며 "그래서 집에 주사기나 간단한 의료기기도 배치해 두고 주민들을 맞아들인다"고 말했다. 그는 배를 타고 인근 섬인 여서도나 모도까지 나가 왕진을 하기도 한다.

15년간 진료하는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복막염으로 장이 터진 환자를 자신이 직접 응급 처치한 후 경비정을 불러 뭍에 있는 큰 병원으로 보내준 일이란다. 이 원장은 "경비정 운영자가 돈 한 푼 받지 않고 응급 환자를 즉각 옮겨주는 걸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며 "우리나라 응급 의료 체계는 이 같은 숨은 공로자들이 계셔서 유지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지금껏 청산도 생활을 유지하며 의사로서 묵묵히 제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건 과거 친분이 있던 장기려 박사(1995년 작고) 덕분이란다. 이 원장은 "이웃을 내 가족처럼 여기며 환자를 대했던 장 박사야말로 한국의 슈바이처나 다름없다"며 "그의 의료정신을 늘 되새기며 나 역시 지금껏 의사로서 떳떳하게 내 일을 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청산도 생활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 이 원장은 "마을 사람들은 내가 죽을 때까지 이곳에 있어 달라고 하는데 암튼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 몇 년은 더 청산도에서 의사로 일하고 싶다"고 전했다. 평소에도 청소년과 노인, 가난한 의대생을 대상으로 기부를 많이 해온 그는 이번 성천상 상금 1억원도 남을 위해 쓸 생각이다. 이 원장은 "지금 기부가 계획된 곳이 많은데 다 합쳐보니 1억원이 넘을 것 같다"고 말했다.

JW중외제약 창업주인 고 성천 이기석 선생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성천상은 올해 7회를 맞아 다음달 27일 광주에서 시상식이 열릴 예정이다. 이 창업주는 1959년 당시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수액제를 국산화하는 등 국내 치료 의약품 산업 초석을 다지는 데 평생을 바친 제약인이다. 성천상도 그의 정신을 기려 의료를 통해 인류 복지 증진에 크게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되고 있다.

[서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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