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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장자는 아름다운 언어 쓰는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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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고형렬 시인

한겨레

“문득 눈을 떠보니 15년이 후딱 흘렀네요. <장자>는 정말 재미있는 책이에요. 저는 <삼국지>보다 더 재밌던데요. 나중에는 끝나는 게 싫어서 일부러 천천히 작업을 했을 정도예요. 이렇게 끝내고 나니 허전하고 공허하기까지 하네요.”

시인 고형렬(65)이 <장자>를 번역하고 풀어 쓴 에세이 7권을 한꺼번에 내놓았다. <고형렬 에세이 장자>(전7권, 에세이스트)는 <장자>를 ‘소요유’에서 ‘응제왕’까지 7권으로 나누어 직접 우리말로 옮기고 1만2천매에 이르는 산문으로 장자의 방대한 세계를 재해석한 책이다. 2011년에 <장자의 하늘 시인의 하늘>이라는 제목으로 냈던 1권 ‘소요유’ 편을 비롯해 4권까지는 이전에 책으로 출간한 것을 다듬어 다시 내놓았고, 5~7권을 새로 써서 완결했다. 2008년부터 경기 양평에서 살고 있는 그를 15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났다.

한겨레

“1985년부터 20년간 근무했던 출판사 창비를 그만두고 전업 시인이 되면서 장자를 다시 읽었습니다. 사실 장자는 제가 스무 살 때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에서 면서기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고,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이미 초등학교 시절 아버님 서가에서 접했던 책이었죠.”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자란 고형렬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집안 형편 때문에 아버지의 고향인 전남 해남 할머니 집으로 보내졌다가 5학년 무렵 다시 부모가 있는 고성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즈음 어린 고형렬은 장자를 읽다가 거기 나오는 낱말들을 종이에 써서 들고 다녔는데, 어느 날인가는 바닷가에 홀로 서서 ‘유애’(有涯)라는 글자를 오래 들여다보다가는 먼 바다를 응시하기를 되풀이하기도 했다. 그러니 그의 1979년 등단작인 시 ‘장자’는 연원이 제법 오랜 것이다.

“어머님, 저는 이제 바다 속에 살고 있는 나를 그리워하며/ 철썩이는 해안에서 시달립니다./ (…) / 나를 다시 잉태하여 달라고 아주 착하게 장자(莊子)는 그때부터 울고 있었다./ 해 떨어진 천공(天空)의 산 앞에/ 바람소리 들리던/ 집만 비어 있고.”(‘장자’ 부분)

등단작 ‘장자’는 먼 과거와 먼 미래에 대한 암시가 교차하면서 ‘장자의 시인 고형렬’의 탄생을 예고한다.

‘장자 에세이’ 7권 한꺼번에 펴내
전업시인 선언 뒤 15년 걸려 작업
“노자가 뼈라면 장자는 이야기 세계
너무 재밌어 일부러 천천히 번역도
고향서 면서기하던 20살 때 빠져”


40년 전 시 등단작도 ‘장자’

“속초와 고성은 북에서 내려온 월남민들이 많이 살았고 충청도나 경상도, 제주도에서까지 오징어를 잡으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어요. 이북이 코앞이어서 일선 지구와 비슷했고, 어떤 경계 의식 같은 게 만연했습니다. 나중에 생각하니 그게 분단 의식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분위기 때문에, 무언가 초월하고 변이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저를 <장자>로 이끌었죠.”

<…에세이 장자>를 내기 전인 2010년에 그는 역시 장자를 소재로 한, 단행본 800쪽에 육박하는 장시 <붕새>를 소량 제작해 가까운 이들에게 나누어 준 다음 스스로 책을 불태우는 의식을 통해 자기 갱신을 도모하기도 했다. 장자의 용어로 말하자면 자기를 죽이고 잊어버린다는 상아(喪我)의 의식이었다고나 할까. 그는 이번 책에서 ‘상아’를 비롯해 ‘비피무아’(非彼無我), ‘이예상존’(以隸相尊), ‘승물유심’(乘物遊心) 등 장자 고유의 한자 용어를 적극 살려 썼다.

그가 생각하는 장자는 철학자라기보다는 아름다운 언어를 쓰는 시인이고 에세이스트다. <장자>에는 노자 <도덕경>의 흔적이 많이 보이고 장자의 사상은 흔히 노자와 한데 묶여 노장 사상으로 일컬어지지만, “노자는 권력적이고 체계적이며 강고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 반면, 장자는 아름다운 언어와 인간애를 보인다”고 그는 평가한다. 그는 “노자가 뼈다귀일 뿐이라면 장자에게서는 최초의 서사, 이야기가 나왔다”며 “공자를 비롯한 당시 지식인들이 모두 왕과 대화하려 했던 데 반해 오직 장자만이 절름발이, 꼽추, 혹부리 등과 어울리고 그들과 대화했다”고 강조했다.

<장자> 텍스트의 문학성은 고형렬의 에세이로도 이어진다. 이 책은 장르로는 에세이지만 시적인 울림을 준다. “나의 고향은 파괴된 북명의 핏빛 물바다. 그 먼 미래에 다시 생령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그 망중한의 해변의, 사구(砂丘) 위에 우리들의 쇄골과 복사뼈의 뼛조각만 반짝이고 있다” 같은 식이다.

“저한테 ‘장자가 누구인지, 어떤 사상가인지 한마디로 말해 달라’고는 제발 주문하지 말아 주세요. 언제 읽어도 달라지는 게 장자입니다. 이번 장자 에세이를 15년 걸려서 썼는데, 지금 다시 읽는다면 다른 장자를 쓸 것 같아요. 장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무궁합니다. 장자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는 명작인 건 그 때문일 거예요.”

짧게는 350쪽 가까이에서 길게는 650여쪽을 넘나드는 7권짜리 장자 에세이를 읽기란 웬만해서는 엄두가 나지 않을 법하다. 그렇게 지레 겁을 먹을 독자들에게 그는 “장자는 어느 페이지부터 읽어도 좋은 텍스트”라며 “내키는 대로 한 단락씩 읽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러면서도 “꼭 1권부터 읽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5권 덕충부부터 읽으면 좋겠다”고도 권했다. “7권 응제왕은 혼돈을 죽이는 이야기로 끝나는데, 사실은 그로부터 장자 1권의 붕새 이야기가 시작되는 게 아닌가, 그런 점에서 장자 전체는 순환 구조를 지녔다고 생각합니다.”

책이 안 팔리는 시대에 장자 에세이 7권을 한꺼번에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출판사는 책 출간 전에 문인 및 문화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후원 성격의 사전 주문을 받았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화가 홍성담, 시인 이도윤 등 모두 101명이 230여 세트를 주문했다. 책 뒤에 그들의 이름이 적혔다.

뿌듯하면서도 허전할 듯한 대 작업을 마무리한 시인은 인터뷰를 끝내며 말했다. “나는 장자의 심부름꾼일 뿐이다. 장자는 아직 발견되지 못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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