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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1 (일)

실사 프로젝트 ‘황금알’… 디즈니 제국의 해는 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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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개봉 ‘라이온 킹’으로 본 디즈니 영화의 숨은 전략

동아일보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심바’가 25년이 지나 완벽한 컴퓨터그래픽 이미지로 재탄생했다. 디즈니 실사화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인 ‘라이온 킹’은 중국에서 12일 개봉한 후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에서도 원작 팬들의 추억을 자극할지 관심이 쏠린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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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곡 ‘서클 오브 라이프’와 함께 거대한 스크린에 아프리카 사바나가 그대로 재현됐다. 지축을 울리는 소떼의 움직임, 제 몸집보다 몇 배 큰 나뭇잎을 들고 줄지어 움직이는 개미들의 행진까지…. 관객들은 극장에서 망원경과 현미경으로 번갈아 아프리카의 초원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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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개봉하는 ‘라이온 킹’은 영화라기보다는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에 가까웠다. 이 작품은 디즈니의 실사 영화(라이브 액션)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다. 클래식 애니메이션의 실사화에 나선 디즈니는 ‘말레피센트’(2014년) ‘신데렐라’(2015년) ‘미녀와 야수’(2017년) 등을 선보였다. 올해는 ‘덤보’ ‘알라딘’에 이어 ‘라이온 킹’까지 잇달아 개봉하며 반신반의하던 관객들을 극장으로 모으고 있다. ‘알라딘’은 국내에서 실사 영화로는 처음으로 10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최근 중국 배우 류이페이(劉亦菲)가 출연한 ‘뮬란’(2020년 개봉 예정)의 예고편과 ‘인어공주’(2021년 예정)의 캐스팅까지 공개되면서 실사화 프로젝트는 관심의 정점에 서게 됐다.

○ M&A 통해 ‘에버그린 전략’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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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뮬란’.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디즈니가 실사 영화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저작권, 상표권 등 지식재산권(IP) 확장 전략의 일환이다. 1928년 세계 최초의 유성 만화 ‘증기선 윌리’ 속 캐릭터 미키 마우스의 탄생부터 축적된 지식재산권은 디즈니 수익의 원천이며 경영 전략의 중심이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수평적으로 확장돼 테마파크 디즈니랜드와 디즈니 크루즈, 전시, 쇼, 게임 등 다양하게 변주됐고, 캐릭터 상품의 판매로 이어졌다. 디즈니가 테마파크와 소비재 등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극장 수익의 약 2.5배에 이른다. 고영희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 교수(지식재산경영 전공)는 “디즈니가 극장 영화·애니메이션으로 버는 금액도 상당하지만 지식재산권과 그에 따른 라이선싱으로 버는 수익이 핵심”이라며 “영화와 애니메이션은 사실상 디즈니 캐릭터의 거대한 광고판과 같다”고 설명했다.

설립 100년을 앞둔 디즈니는 세대를 건너며 콘텐츠의 수명을 수직으로 확장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199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인어공주’(1989년) ‘미녀와 야수’(1991년) ‘알라딘’(1992년) ‘라이온 킹’(1994년) 같은 작품들은 ‘클래식(고전)’이라 불릴 정도였다. 하지만 25∼30년이 지나면서 팬들의 추억 속에서 잠자는 신세였다. 열 살에 ‘라이온 킹’을 본 어린이는 서른다섯 살이 됐다. 디즈니는 실사화를 통해 옛 팬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자녀까지 새로운 팬으로 끌어들이려고 한 것.

이런 지식재산권의 ‘에버그린 전략’(새로운 지식재산권을 추가해 독점 기한을 늘려가는 전략)은 픽사(2006년)와 마블(2009년), 루커스필름(2012년)에 이어 폭스까지 쉼 없는 인수합병(M&A)으로 막강한 지식재산권을 확보한 디즈니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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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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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한 실사 ‘게임 체인저’ 찬사

실사 영화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한 것은 눈부시게 발달한 컴퓨터 그래픽(CG)과 시각효과 기술(VFX)이다. 하늘을 나는 코끼리(덤보)나 램프에서 나오는 요정 지니(알라딘)를 어색함 없이 실제 배우들과 함께 한 화면에 등장시킨다.

‘라이온 킹’은 한발 더 나아가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처 세트장에서 CG와 VFX로만 무파사와 심바의 왕국 ‘프라이드 랜드’를 재현해냈다. 제작진은 아프리카 케냐와 나미비아, 미국 캘리포니아의 옐로스톤 국립공원 등으로 최적의 ‘실사’를 찾아 나섰다. 약 130명의 애니메이터가 86종의 동물을 필름에 담았다. 동물들의 근육 움직임, 피부, 털을 표현하기 위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데만 엔지니어 200여 명이 투입됐다. 감독 존 파브로는 “애니메이션도, 실사도 아닌 새로운 미디어”라고 했고, 해외 언론들도 시사 직후 ‘게임 체인저’(경쟁의 틀을 바꿔 버릴 정도의 혁신)라는 평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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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클래식 애니메이션은 컴퓨터그래픽 기술로 날개를 달아 변형된 스토리와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덤보’ ‘미녀와 야수’ ‘신데렐라’.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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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는 과거 성차별과 인종차별, 오리엔탈리즘 등 여성과 흑인, 동양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해 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는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신데렐라는 남자가 구원하길 기다리기 때문에, 인어공주는 남자를 위해 목소리를 포기하기 때문에 딸에게 보여주지 않는다”고 밝혔을 정도다. 실사 영화 프로젝트는 이 같은 비판을 받아들여 작품에 새로운 시대정신을 불어넣었다.

‘겨울왕국’(2013년) ‘주토피아’(2016년) ‘모아나’(2017년) 등 비교적 최근 제작된 작품에는 주체적으로 운명을 개척하는 캐릭터들을 등장시키며 시대의 변화를 반영해 왔지만 실사 영화들은 ‘스스로 술탄이 되려 하는 자스민’(알라딘)이나 ‘흑인 에리얼’(인어공주)을 내세워 직설적으로 변화를 줬다.

그러나 ‘엘사’에게 바지를 입히거나 ‘자스민’에게 주체적인 목소리를 내겠다는 주제의식을 담은 노래 ‘스피치리스’를 부르게 하는 것이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여성 캐릭터들이 전체 서사의 틀 안에서 주체적으로 역할을 수행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인어공주’ 실사 영화의 에리얼 역에 아프리카계 미국인 할리 베일리를 캐스팅한 것이 팬들의 반발을 샀다. 변화와 다양성을 포용하는 리메이크 방향과 원작을 최대한 그대로 누리고 싶은 팬들 사이의 간극이 단적으로 드러난 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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