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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단독] 한국, 日 통상전쟁서 '공격 카드' 있다…JDI 제소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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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WTO 보조금 협정 위반 지목 올초 검토
"JDI 자금줄 ‘산업혁신기구’ 정조준한 것"

정부가 일본과의 통상 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유력한 ‘공격 카드’로 일본 디스플레이 업체 재팬디스플레이(JDI)와 JDI 출범을 주도하면서 자금까지 댄 일본 정부를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는 방안을 올해 초부터 검토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아베 신조 정부의 산업 정책을 직접 공격하겠다는 것이어서, 실제로 한국 정부가 이를 대응 수단으로 선택할 경우 한·일간의 통상 분쟁이 확전될 것으로 관측된다.

조선비즈

일본 치바현에 있는 JDI 메인 공장 전경. /블룸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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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정부와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초 일본 정부가 JDI를 불공정 지원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 회사를 WTO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는 일본 측 통상 공세가 도를 넘었다는 판단에서 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직접적인 계기는 당시 일본 후쿠시마현 인근 지역산(産) 수산물 수입을 놓고 WTO에서 벌어지고 있던 법적 공방이었다. 해당 사건은 4월 한국의 승소로 끝났다.

일본이 지난해 11월 한국 정부의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 등에 대해 WTO 보조금 협정 위반이라고 제소한 것도 또 다른 배경이었다. 일본은 무역보험공사의 선수금 환급보증(RG) 발급까지 문제삼았었다.

정부 측은 당시 JDI 카드를 검토하면서 일본 정부가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로 맞대응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이달 초 "일본의 경제 보복과 관련된 100여개 품목의 ‘롱 리스트(후보목록)’가 있고, 1~3번째에 해당하는 품목이 이번에 일본이 규제한 것"이라 말하면서 알려진 ‘롱 리스트’는 이때 작성됐다. 한 관계자는 "당시 반도체·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 공정 핵심 업체들을 모아서 청와대에서 회의를 열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디스플레이 업계에서는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LCD(액정표시장치)를 주력으로 하는 JDI가 중국 공세에 이미 경쟁력을 상실했다고 보고 있다. 또 미래 디스플레이로 꼽히는 OLED는 생산 공장조차 없는 상황이어서 공격 카드로서 실익이 있느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조선비즈

그래픽=박길우



한국 정부가 그럼에도 JDI를 타깃으로 삼은 것은 일본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만든 산업혁신기구(ICNJ)를 정조준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산업혁신기구는 일본 정부가 2009년 만든 관민(官民)공동펀드다. 현재 정부가 2860억엔, 민간이 135억엔을 출자했다. 최대주주는 95.49%의 지분을 갖고 있는 일본 재무성(주주명부에는 재무대신)이다.

JDI는 2012년 산업혁신기구 주도로 소니·히타치·도시바 등 3개 회사의 디스플레이 사업을 통합한 회사다. 3개 회사의 디스플레이 사업을 합치고, 산업혁신기구가 2000억엔을 출자해 대주주가 됐다. 산업혁신기구는 파나소닉·소니의 OLED 사업부를 통합해 만든 JOLED(현 JDI 자회사) 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고, 샤프에 자금 지원을 하는 등 사실상 일본 디스플레이 산업을 움직이는 존재다.

결국 JDI를 문제삼으면 아베 정부의 산업정책 핵심 수단인 산업혁신투자기구의 활동에 태클을 걸 수 있는 셈이다. 산업혁신투자기구는 디스플레이 산업 뿐만 아니라 2017년 도시바 인수를 주도한 것처럼 반도체 산업에서도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 제조업 구조조정에서 핵심 자금원이기도 하다. 결국 2013~2014년 이후 일본 디스플레이 업계는 일본 정부의 예산으로 생존하면서 제품을 판매해왔던 셈이다.

산업혁신기구는 모태가 된 1999년 산업혁신법 제정 당시부터 WTO 보조금 협정 위반 소지가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특정 기업이 입은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서 정부가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데다, 지원을 받은 기업들이 정부 재정을 바탕으로 싼 값에 제품을 판매하는 격이라 통상 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6년 혼마 미쓰루(本間充) JDI 사장은 JDI의 유동성 문제를 우려하는 주주들에게 "산업혁신기구의 지원은 문제가 없다"며 사실상 정부 지원에 한도가 없다는 식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지난 2018년 산업혁신기구 임원들이 경제산업성과 마찰 끝에 교체되는 등 산업혁신기구가 경제산업성의 직접 통제를 받는다는 점도 일본의 ‘약점’이다.

권성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2017년 애플이 OLED를 아이폰에 탑재하기 시작하면서 LG디스플레이는 OLED로 LCD 라인을 전환하기 시작했지만, JDI는 자금도 없고 실적도 안 좋아 구조조정에 집중한 탓에 OLED 시장에서는 이미 3~5년 정도 뒤쳐졌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이 없이는 LCD 패널뿐 아니라 OLED에서도 생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세종=조귀동 기자(cao@chosunbiz.com);장우정 기자(wo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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