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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무령왕릉 주변에 백제고분 다수 존재할 가능성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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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문화재연구소, 공주 송산리고분군 정밀조사로 41기 고분 가능성 확인

뉴스1

2019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조사한 공주 송산리고분군의 현황. 무령왕릉을 포함해 정비된 고분은 7기, 일제강점기 보고됐으나 현재까지 위치를 알 수 없었던 고분은 6기, 새롭게 확인된 추정 고분은 41기이다.(위쪽이 북쪽, 문화재청 제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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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황인호)는 백제 웅진도읍기(475~538년)의 왕실묘역인 공주 송산리고분군(사적 제13호)에서 새로운 고분의 유존 가능성을 다수 확인했다고 17일 밝혔다.

지난 2~3월에 문헌조사와 사진조사를 동반한 실내조사를 시행했고, 4월에 진행한 고고학 지표조사에서 고분 41기의 유존 가능성을 추가로 확인했다.

백제는 신라, 가야와 달리 지하에 매장시설을 두고 봉분을 크지 않게 조성했기 때문에 지표면에서 고분을 찾아내기 쉽지 않았다. 이에 고분의 흔적(봉분, 석재 등), 입지특성, 지형분석 등을 통해 위치를 추정했다.

6월부터는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과 함께 무령왕릉 정비구간의 지하물리탐사를 진행했으며, 그 결과 일제강점기 이후 위치를 알 수 없었던 7~9호와 29호분의 흔적을 파악했다.

또한 조사과정에서 지표면에서 수습된 '중방(中方)'이라 적혀 있는 벽돌도 주목할 만하다. 무령왕릉과 6호분은 틀로 찍어낸 소성벽돌을 쌓아 터널형태의 무덤방을 만들었다. 아치형 구조를 시공하기 위해 다양한 크기의 모양과 벽돌을 제작했다.

문양이 없는 대신 대방(大方), 중방, 중(中), 급사(急使) 등 글자를 압출한 벽돌들도 일부 확인됐는데, 이 글씨들은 벽돌이 사용된 위치 등 쓰임새를 의미한다는 견해가 많다.

무령왕릉의 경우 7927점 벽돌이 사용됐는데, '중방'명 벽돌은 30점에 불과하다. 벽돌의 크기와 글자의 위치로 볼 때, 이번 수습품은 긴 벽면에서 창문모양을 장식한 8점과 유사하다.

이번에 수습된 벽돌이 발견된 위치가 벽돌무덤인 무령왕릉의 남쪽 80m 지점이었고, 일제강점기에 보고된 벽돌무덤인 17호분의 추정 위치와도 70m 이상 떨어져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벽돌이 발견된 일대에 또 다른 벽돌무덤이 있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한편 이 지역에 백제 왕릉이 있다는 건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등에서 이미 알려져 있었고, 일제강점기 당시 발굴조사에서도 29기가 보고된 바 있다.

이번에 추가로 발견한 41기의 고분이 29기와 얼마나 중복되는지는 추가조사가 필요한 상황으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2020년부터 추정 고분들을 단계적으로 조사할 계획이다.
lg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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