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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년 추억어린 기찻길 옆 ‘떡볶이 가게'...사라질 위기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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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조성 사업으로 무허가 건물 철거 추진 中
서대문구 "도시미관, 방음 위해 숲 조성 필요"
가게 주인 "역사성·상징성 고려해 살려 달라"

‘충정로 철길 떡볶이’ 가게가 문 닫을 위기에 놓였다. 47년 동안 서울 서대문구 충현동 경의·중앙선 철길 가에서 떡볶이와 튀김, 김밥 등 먹거리로 아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곳이다. 지금은 직장인은 물론 머리카락 희끗희끗한 중년 신사들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떡볶이를 먹다 보면 ‘뿌우~’ 하는 경적과 함께 지나는 기차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추억의 장소다.

관할 구청은 이 가게를 헐고 주변을 밀어 공원 등 녹지를 조성한다고 한다. 무허가 건축물이니 가게는 철거될 처지다. 하지만 주인 허덕회(58)씨는 "공원을 조성하더라도 ‘역사성’과 ‘상징성’을 고려해 가게는 그냥 살려두면 안 되느냐"며 "철길 떡볶이는 철길 가에 있어야 그 의미가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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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철길 떡볶이를 운영하는 박미희씨가 떡볶이를 만들고 있다. /권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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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한 가격·철길 테라스…2대째 이어온 먹거리 名所
17일 오후 15평 남짓한 가게에는 손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직장인 유모(36)씨는 "인근에서 학교를 나와 제법 오랫동안 다니고 있다"며 "떡볶이도 맛있고, 튀김도 바삭해 꼭 같이 먹으라"라고 귀띔해줬다. 대학생 이수영(23)씨는 "가게 위치도 특별하지만, 떡볶이 맛도 끝내줘 서울에서 맛집을 검색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곳"이라며 "오랜 역사를 가진 맛집이 사라진다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철길 떡볶이는 허씨의 어머니 설부자씨가 1973년 철길 맞은편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팔던 것이 시작이다. 1990년 허씨가 건축자재 장사를 하고 있던 지금의 점포로 옮겨와 온 가족이 함께 소매를 걷어붙였다. 1994년 설씨가 숨지자 허씨 부부가 물려받았고, 이후 25년째 가게를 지키고 있다.

이곳은 저렴한 가격은 물론, 가게 뒷편 테라스에서 기차가 오가는 것을 볼 수 있는 운치가 있어 명소가 된 지 오래다. 떡볶이의 가격은 1인분에 2000원. 김밥과 튀김 등은 1인분에 1000원씩이다. 지난 10년 동안 한번도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허씨의 아내 박미희(58)씨는 "단골이 많고, 가족끼리 장사를 하는 만큼 저렴한 가격을 유지해왔다"고 말했다.

최근 만화 ‘식객’으로 유명한 허영만 화백이 찾은 것이 방송을 타면서 가게가 더 바빠졌다. 보통 주말이면 떡볶이 240인분을 준비한다고 한다. 오후 8시까지 문을 여는데 지난 일요일엔 오후 5시에 재료가 다 떨어져 손님들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허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정확한 조리법을 남겨두지 않아, 그 맛을 재현하느라 정말 고생했다"면서 "이제 좀 장사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철거 이야기가 나오니 착잡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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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오전 철길 떡볶이(붉은 원) 옆으로 기차가 지나고 있다. /권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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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 "안전 때문에도 철거해야" vs 주인 "소송도 불사"
지난 5월 철길 떡볶이 가게 부지 40㎡(약 15평)에 대한 토지수용 결정이 났다. 이 땅은 서울시 소유이지만, 1950년대 이 무허가 건축물이 지어진 뒤부터 이곳에 살거나, 이곳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소유권이 인정돼 왔다.

이곳에 공원을 만들겠다는 계획은 1978년부터다. 철길 주변에 무허가 건축물이 도시미관을 해치고, 기차가 다니는 소음을 막기 위해 ‘방음림(林)’이 필요하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토지수용 등이 쉽지 않아 사업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러던 중 2017년부터 서대문구청이 다시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서대문구청은 허씨 부부에게 철거·이전에 따른 보상금 3500만원을 주겠다고 제시했지만, 허씨 부부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허씨 부부는 이달 중으로 행정법원에 ‘토지수용 재결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지난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가게를 보존할 수 있길 가장 바라지만, 최소한 사업을 1~2년만 ‘보류’해 달라"는 청원도 올렸다.

허씨는 "대다수 시민을 위해서 필요한 사업이라면 당연히 수용에 응할 것"이라며 "당초 5000㎡(약 1500평) 규모이던 공원 조성사업이 158㎡(약 48평)로 쪼그라들었는데 굳이 왜 이렇게 사업을 추진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맞은편에 만들어놓은 숲도 사실상 포장마차 손님들이 담배 피우는 장소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대문구청 관계자는 "거꾸로 생각해보면 민원인(철길 떡볶이)이 무허가 건물에서 장기간 이익을 추구해 온 것 아니냐"며 "철길 바로 옆에 있는 건축물들은 매우 노후화돼 안전을 고려해서라도 철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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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철거 위기에 놓인 충정로 옆 ‘철길 떡볶이’ 주방. /최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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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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