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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포식자’ 퓨마에게 인간은 공포의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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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목소리 들리면 경계·낮은 포복 이동
사냥 범위 줄여 하위 동물 개체 수 늘기도
서울신문

UC산타크루즈 제공


“그리스 최고신 제우스는 사촌인 프로메테우스에게 흙으로 동물과 인간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나중에 제우스가 보니 동물이 너무 많이 만들어져 그중 일부를 사람으로 바꾸라고 명령했다. 이에 프로메테우스는 처음 동물로 만들었던 것 중 일부를 사람으로 바꿨다.”

이솝우화 속 ‘프로메테우스와 인간’이라는 제목의 이야기입니다. 처음 사람이 만들어졌을 때는 엄연히 동물과 구분되는 다른 존재였지만 나중에 모양만 사람의 형상으로 바뀐 존재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사람으로 바뀐 것들은 겉모습만 사람일 뿐 속은 여전히 짐승이라는 것이지요. 요즘 뉴스를 보다 보면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는 단어가 연상될 정도로 잔인하고 파렴치하며 인간 같지 않은 존재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이야기가 나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대(UC산타크루즈) 환경과학부, 캐나다 온타리오 웨스턴대 생물학과 공동연구팀은 아메리카 대륙에 사는 대표적인 포식자인 퓨마도 사람을 가장 무서워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번 연구에서는 사람의 사냥행위나 주택, 도로, 자동차처럼 사람들을 연상케 하는 것들 없이도 단지 ‘인간’ 존재 자체가 동물들에게 엄청난 공포를 준다는 것을 밝혀냈다는 점이 더욱 놀라움을 줍니다.

이번 연구는 UC산타크루즈가 캘리포니아주 수렵·낚시국과 함께 수행하고 있는 ‘산타크루즈 퓨마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수행됐으며 생태학 분야 국제학술지 ‘에콜로지 레터스’ 17일자에 실렸습니다. 산타크루즈 퓨마 프로젝트는 야생동물의 행동과 생태 이해, 야생동물을 위한 토지개발 계획 등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연구팀은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캘리포니아주 산타크루즈 산맥에 있는 원격 연구지 2곳에 1㎢ 면적의 공간을 만들어 각각 25개의 스피커를 설치했습니다. 연구팀은 스피커를 통해 남녀 성인, 아이들 목소리와 청개구리 울음소리를 들려주면서 퓨마를 비롯한 포식자들의 움직임을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퓨마는 사람의 목소리, 심지어 아이들 소리가 들리기만 해도 걸음을 늦추고 주변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며 낮은 포복 자세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사람의 목소리가 잘 들리는 1㎢의 공간은 멀리 돌아가는 것이 관찰됐다고 합니다. 반면 청개구리 울음소리는 아무리 크게 틀어 놓아도 관심을 갖지 않고 지나갔다고 합니다. 퓨마보다 작은 포식자들도 사람 목소리가 들리기만 해도 활동량과 사냥 범위를 40~70%가량 줄였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사람에 대한 공포 때문에 퓨마, 밥캣 같은 고양이과 포식자들이 활동을 억제하면서 흰발생쥐, 숲쥐 같은 설치류들의 개체수가 증가하고 활동 범위도 넓어지는 등 반사이익을 본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흰발생쥐의 활동 범위는 평소보다 45% 정도 늘어났고 숲쥐가 먹이를 찾아 나서는 횟수는 17~20% 정도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번 연구를 이끈 저스틴 수라치 UC산타크루즈대 박사는 “야생동물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공포는 포식 위험에 대한 인식인데 동물들에게 인간은 우리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존재”라면서 “이번 연구는 야생동물들이 인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환경을 어떻게 이용하고 동물 간 상호작용을 하는지 잘 보여 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연구는 지구 생태계에서 점점 고립돼 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른 동물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 수는 없는 걸까요.

edmond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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