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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런치리포트]첫단추 잘못꿴 日배상문제, '1965년 체제' 극복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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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오상헌 , 권다희 , 최태범 기자] [the300][최악의 한일갈등]관계 전면 ‘재설정’…미래지향적 새 협력 고민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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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일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행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2019.06.28. pak7130@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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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54년前 '불법 배상' 빠진 한일협정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감싼 역대급 태풍의 진원지는 과거사, 강제징용 문제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국제법(한일 청구권 협정) 위반”으로 규정하고 '시정'을 요구했다. 우리 정부가 이에 응하지 않자 수출규제 등 초유의 경제보복 조치를 꺼내 들었다.

최악의 한일 갈등의 근저에 일본 식민지배의 성격과 역사인식을 둘러싼 뿌리깊은 이견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충돌이 54년 전 국교 정상화 이후 양국 관계를 떠받쳐 온 ‘1965년 체제’의 한계를 극명히 노정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과거사 문제를 비롯한 한일관계의 전면적 재설정과 미래지향적 새 협력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정치 타협, 태생적 한계'

강제징용 개인배상 문제의 근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승전국(연합국 48곳)과 패전국(일본)이 1951년 체결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은 영국의 반대로 대만(당시 자유중국)과 함께 전승국에서 배제돼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받지 못했다. 대신 한일 간 재산 및 청구권을 ‘특별 조정(special arrangement)’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배상’의 전제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받는 법적 권리 자체를 부여받지 못한 것이다.

후속 조치인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은 이런 태생적 한계를 안고 태어났다. 14년에 걸친 협상 끝에 일본은 한국에 ‘경제협력자금으로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를 지급’(협정 제1조 1항)하기로 했다. 협정문에는 ‘양국간, 양국 국민간의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을 확인한다’(제2조 1항)는 내용도 담겼다.

식민지배로 이어진 1910년 강제병합조약 등에 대해선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모호한 표현이 반영됐다.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대한 합의도 없었다. 부실하고 모호하게 정치적으로 타협한 셈이다. 수교 당시의 국내 정치적 상황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1961년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반대 여론에도 한일회담을 적극 추진했다. 경제 성장을 위해 일본 자금이 절실하다는 명분이었다. 국민적 합의없이 체결한 만큼 한일 협정의 내용도 공개하지 않았다.

◇2005년 민관 공동위 "강제징용 배상 해결됐다고 봐야"

한일 청구권 협정의 세목이 공개된 건 40년 만인 2005년 노무현 정부 때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일 국교정상화 문서를 전면 공개하면서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와 이용훈 변호사를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한일 수교회담 문서공개대책 민관 공동위원회’(21명)를 구성해 교섭 과정을 검토했다. 일제 식민지배 피해 보상 문제 등 후속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도 정부 위원 자격으로 공동위에 참여했다.

공동위 논의 과정에선 강제징용을 둘러싼 한일 갈등의 핵심인 국가간 조약(협정)이 개인청구권에 미치는 효력 논란이 이어졌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당시 ‘개인 청구권을 어떤 법리로 소멸시킬 수 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공동위는 같은해 8월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 협정에 의해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런 맥락에서 일본 국가 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사할린 동포, 원폭 피해자의 배상 청구권은 존재한다고 봤다. 하지만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은 협정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청구권협정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3억 달러는 개인 재산권, 조선총독부 대일채권 등 한국 정부가 국가로서 갖는 청구권, 강제징용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 등이 포괄적으로 감안됐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이런 입장을 사실상 유지해 왔다. 한일 사법부 판결도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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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대법원 "日식민지배 불법, 개인배상 소멸안돼"

대법원은 그러나 2012년 강제징용 피해자가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일본 기업들이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요지는 일본 식민지배가 불법이므로 강제징용도 불법이어서 피해자들의 위자료(손해배상) 청구권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일본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한 바 없으므로 ‘불법성’을 전제로 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협정 대상에 포함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청구권도 모두 소멸됐다”는 일본 정부와 피고(신일철주금)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양국 간 합의(협정)에도 불구하고 강제징용자 개인이 상대 회사에 가지는 민사적 권리는 남아 있다는 것이 한국 대법원의 판례”라며 “양국간 합의가 개개인들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확정 판결 후 “사법부의 판단에 행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며 일본 정부가 주장한 “국제법 위반 시정”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1965년 체제'의 종언…한일관계 '새로운 전환기'

강제징용 문제로 파생한 한일 갈등이 외교적 마찰을 넘어 경제·안보 등 전방위적으로 확전하면서 ‘1965년 체제’의 한계를 넘어서는 한일관계의 구조적·질적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리적 인접성과 경제·안보 협력에 기초한 우호적 양국관계가 뿌리까지 흔들렸다는 점에서다. 정치와 경제, 과거와 미래를 분리해 갈등과 마찰을 완충해 온 전통적 한일관계도 일본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경제 보복 조치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아 보인다.

한일 문제를 과거사 갈등 차원에서 접근하던 정부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일관계의 전면 재설정 검토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정부·여당은 지난 16일 당청 연석회의에서 일본 정부의 공세 배경에 대해 “한일 과거사 문제와 한국 경제발전에 대한 견제, 남북관계 진전과 동북아 질서 전환과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본다”고 결론내렸다. 외교부 당국자도 “표면에 나타나는 것(강제징용·경제보복)만 수습할 게 아니라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기조를 생각하고 한일관계를 더 잘 관리하는 방안에 대해 준비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의 최은미 일본연구센터 교수는 “식민지배와 냉전을 거쳐 구축된 한일 관계가 국제사회 환경 변화와 강대국 세력 전이, 양국 국력 변화와 경제력 상승 등으로 관계 설정의 새로운 전환기에 들어섰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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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뉴시스】박진희 기자 = 제73차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뉴욕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오전 파커 뉴욕 호텔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한일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2018.09.25. pak7130@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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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3국 중재위' 수용 불가 '강경'....日, ICJ 제소 등 추가조치 나설 듯

정부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일본이 18일을 기한으로 제시한 제3국 중재위원회 설치 요구에 ‘수용 불가’ 방침을 분명히 했다. 다음 수순으로 국가간 분쟁을 다루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를 추진할 것으로 보이지만, 정부는 ICJ에도 응하지 않을 전망이다.

17일 청와대와 외교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일본이 한일 청구권협정 3조 3항을 근거로 18일까지 대답해 달라고 요구한 3국 중재위 설치에 답변을 주지 않기로 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전날 기자들과 만나 "명쾌하게 결론이 난 것 같다”며 “(일본 측에) 특별한 답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그간 중재위 수용 여부 대해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는 외교적 수사로 즉답을 피해왔다. 청와대가 ‘수용 불가’ 입장을 못 박은 것은 일본의 경제보복이 철회되기 전까지 대일(對日) 강경기조로 대응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전날 아프리카 3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뒤 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일본이) 취한 조치부터 철회해야 할 것"이라며 "정부 입장을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면밀히 시나리오별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정부의 기본 입장은 우리가 제안한 방안에 대해 일본이 협의에 나서주길 바라는 것"이라며 지난달 19일 일본에 제안한 ‘한일 기업의 자발적 출연금을 통한 피해자 위자료 지급’ 방안(1+1안)의 수용을 다시 촉구했다.

◇정부, 사법부 판단 존중…당사자간 해결이 최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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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뉴시스】배훈식 기자 = 2018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중인 강경화(왼쪽) 외교부 장관이 2일 오후 싱가포르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양자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2018.08.02. photo@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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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일본이 1+1안을 받아들이면 청구권협정 3조 1항에 따른 ‘양자 협의’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양자간 외교적 협의는 일본이 지난 1월 먼저 요구했던 안이다. 한일 청구권 협정은 분쟁 발생시 해결 절차로 1단계(양자협의), 2단계(양국 중재위), 3단계(3국 중재위)의 단계적 해결을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다시 1단계로 돌아가자고 제안한 것은 격화된 갈등을 진정시키고 소송 당사자간, 즉 강제징용 피해자와 일본 기업의 화해를 통해 문제의 해법을 찾으려는 목적에서다. ‘사법부 판단을 존중한다’는 정부의 기본입장에서 출발한다.

정부가 3국 중재위에 응하지 않는 건 외교적 해결과 대화의 여지를 남겨두려는 목적도 있다. 중재위가 구성된 이후에는 정부 차원에서 협상으로 풀 수 있는 영역이 사실상 사라지기 때문이다. 한국에 불리한 중재 결과가 나오더라도 정부 입장에서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

중재위 결론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독도 등 한일간 다른 역사 문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범국 일본에 대한 국제사회의 부정적 인식에도,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현실 국제정치의 역학구도상 일본에 유리한 결론이 나오는 상황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부가 중재위가 아닌 양자 협상의 영역에서 강제징용 문제를 다루려는 배경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정부가 제안한 '1+1안'은 최종안이 아니라며 다양한 해법을 찾기 위해 협의의 문이 열려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여러 제안들을 한꺼번에 테이블에 올려놓고 그것을 토대로 협의해 가자는 취지로 1+1안을 제안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본은 1965년 체결한 한일 청구권 협정을 근거로 한국 정부가 사법부 판결의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라"며 철회를 압박하고 있다. 답을 정해 놓은 셈이어서 협상으로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 지난달 19일 우리 정부의 1+1 제안을 1시간도 안 돼 거절했고, 지난달 말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는 한일 정상회담을 거부했다. 지난 1일에는 대한(對韓) 수출규제 강화조치까지 발표했다.

한국을 안보상 우호국인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의견 수렴 절차도 24일까지 진행한다. 추가 보복에 더해 ICJ 제소까지 추진하면 바닥까지 떨어진 한일관계는 더 깊이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 조만간 진행될 우리 법원의 일본기업 압류자산 매각도 한일 관계의 확전 여부를 가를 중요 포인트다.

◇국제 여론전 노린 일본의 ICJ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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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AP/뉴시스】'사학 스캔들'로 지지율이 급락하는 등 곤욕을 치르며 집권 이래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9일 오전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재무성 문서 조작 의혹과 관련한 공문서 관리 방식 등을 둘러싼 집중심의를 받았다. 그는 일체의 혐의를 부인했다. 사진은 위원회 중 눈을 비비고 있는 아베 총리. 2018.03.19.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일본은 ICJ 제소로 유리한 국제여론 조성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이 청구권협정상 분쟁 해결절차인 외교 협의→중재위→3국 중재위 등 조약에 따른 해법을 모두 거절했다며 "ICJ에서 시비를 가릴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펼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본의 제소만으론 소송 개시 효력이 없다. 한국이 ICJ에 가입해 있지만 규정 36조 2항의 ‘강제관할권’은 채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도 ICJ 제소의 실효성보다는 국제사회를 통한 여론전과 국내 정치적 활용에 속셈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일본의 ICJ 제소에 동의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반대 측은 국력의 차이로 한국에 불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재판에서는 실체적 진실의 발견보다는 재판관 구성이나 법정기술 등에서 승패가 결정될 수 있어서다.

반면 찬성 측은 ICJ 판단에 맡김으로써 갈등의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ICJ 공동제소를 지속 주장해온 이원덕 국민대 교수(일본학과)는 “피해자 구제 방법에 초점을 맞춰 판결을 받아보자는 것”이라며 “ICJ에 회부되면 부분 승소, 부분 패소로 결론이 예상된다. 최종 결론이 나오기 전에 양국이 화해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오상헌 , 권다희 , 최태범 기자 bum_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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