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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몰카 돌려보는 관음증 사회… 여성들은 ‘성범죄 공포’에 떤다 [대한민국 신인간관계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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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성폭력 피해 연 3만건… 대책 시급 / 신림동 강간 미수사건 등 성범죄 잇따라 / 女 57% “범죄 불안” 男보다 10%P 높아 / 교통사고·먹거리 불안감은 줄어 대조적 / 5명 중 1명 “단체 채팅방서 몰카 봤다” / 경찰·시민단체 신고 등 대처 5%도 안돼 / 전문가 “범죄인식 없고 처벌도 약한 탓”

세계일보

#1. 조모(30)씨는 지난 5월28일 오전 6시20분쯤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에서 술에 취한 채 귀가하는 여성을 발견하고 뒤쫓았다. 조씨는 피해 여성이 자기 집 현관문을 닫을 때 손을 내밀어 문을 잡으려 시도했다. 다행스럽게도 조씨가 붙잡기 전 문이 닫혔다. 조씨는 닫힌 문고리를 잡아 흔들며 이 여성의 집 앞에서 1분가량 서성였다. 이 상황을 담은 CC(폐쇄회로)TV 영상이 사건 이후 ‘신림동 강간미수 영상’이란 제목으로 온라인상에 퍼지면서 논란이 됐다. 조씨는 사건 다음날 자수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주거침입 강간미수) 혐의로 현재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2. 이 사건이 발생한 지 불과 한달여 만에 같은 동네에서 또 한 번 혼자 사는 여성을 노린 강간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40대 남성인 김모씨는 지난 11일 신림동의 한 원룸 화장실 창문을 통해 여성이 혼자 사는 집 안에 침입했다. 김씨는 강간을 시도했으나 피해 여성이 저항하자 달아났다 지난 13일 경기 과천시의 경마장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최근 주거침입·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김씨를 구속했다.

이렇게 잇따른 유사 수법의 성범죄는 우리 사회 여성들의 불안이 그저 과장된 걱정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실제 여성 2명 중 1명 이상이 범죄 발생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성범죄의 경우 여성 피해자가 계속 증가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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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여성 연간 3만명 육박

17일 통계청 ‘사회조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 사회 안전 전반에 대해 ‘불안하다’고 느끼는 여성의 비율은 35.4%였다. 남성(27.0%)보다 8.4%포인트 높은 수치다. 안전 분야 중 가장 많은 여성이 불안을 느끼는 부문이 바로 ‘범죄 발생’이었다. 여성 중 57.0%가 범죄 발생에 대한 불안이 있다고 답했다. 남성의 경우 44.5%로 1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났다.

같은 조사가 이뤄진 1997년 결과와 비교하면 ‘국가안보’, ‘교통사고’, ‘먹거리’ 등 다른 사회 안전 부문에 대한 여성의 불안 비율은 모두 줄어든 모습을 보였지만 유일하게 범죄 발생만은 증가했다. 1997년 기준 범죄 발생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여성 비율은 51.5%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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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 등 범죄와 관련 긴급 구조·보호·상담을 요청할 수 있도록 여성가족부가 운영 중인 여성긴급전화 1366 상담 건수 또한 지난해 기준 35만2269건으로 전년(28만9032건) 대비 21.9% 증가한 모습을 보였다.

이중 성폭력의 경우 가정폭력(18만9057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2만7683건이었다. 이는 전년(2만1470건) 대비 28.9% 늘어난 수치였다.

실제 여성 성폭력 피해자는 연간 3만명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성폭력 피해 여성이 2만9272명이었다. 전년(2만6116명) 대비 10% 이상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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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영상’ 속 30대 남성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는 모습. 연합뉴스


◆일상에 스며든 디지털 성범죄

스마트폰 보급 확산을 등에 업고 디지털 성범죄가 활개를 치면서 피해자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몰카’라 불리는 불법 촬영물 문제는 우리 사회가 안이한 인식으로 방치한 사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최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우리나라 만 20∼59세 모바일메신저(카카오톡·라인·텔레그램·페이스북메신저) 이용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단체채팅방을 통한 불법 촬영물 유포 관련 시민 경험 및 인식 조사’에 따르면 단체채팅방에서 불법 촬영 사진이나 동영상을 받거나 유포되는 걸 본 적 있다고 한 응답자는 5명 중 1명 수준인 19.4%에 이르렀다.

이들 중 64.9%(복수응답)는 불법촬영물 유포 목격 시 ‘조용히 혼자 봤다’고 답했다. ‘보거나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뒀다’는 51.5%, ‘해당 채팅방을 나갔다’는 43.8%, ‘사진이나 동영상에 대해 다른 이들과 품평하거나 얘기를 나눴다’ 38.7%, ‘상대방에게 항의했다’ 23.2%, ‘다른 사람에게 사진이나 동영상을 전송했다’ 18.6%, ‘해당 메신저 서비스에서 완전히 탈퇴했다’ 14.9%, ‘다운로드 등을 해 소지했다’ 11.9%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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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나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등에 신고했다’(2.6%), ‘시민단체 등에 도움을 요청했다’(2.1%) 등 적극 대응한 응답자 비율은 미미했다.

디지털 성범죄 대응에 소극적인 이유에 대해선 안이한 인식과 약한 처벌이 주로 거론됐다. 불법 촬영물 유포 행위 발생 원인을 묻는 말에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가벼운 인식으로 인해 불법 촬영물 시청에 대한 죄의식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44.3%로 가장 많았다. 이어 ‘처벌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란 답변이 31.3%로 나타났다.

진민정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불법 촬영물을 받거나 유포되는 것을 목격하고 항의하거나 신고하는 등 적극 거부 표시를 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모바일메신저에서 간편한 신고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다면 좀 더 나아질 것으로 생각된다”며 “일상화된 불법 촬영에 대한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 사회적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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