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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인사이드 스토리]대형마트가 심야영업 재개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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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롯데마트 여름 한 달간 30분~1시간 연장영업 '심야영업 제한' 무색해진 시장 변화…막막한 대형마트 [비즈니스워치] 나원식 기자 setisoul@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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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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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되면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밖에 계시는 경우가 많고요. 저희도 심야영업할 만한 '여유'가 생겼잖아요."

이마트와 롯데마트가 하절기 연장 영업에 돌입합니다. 이마트는 오는 19일부터 한 달간 전국 142개 매장 중 35개 점포에서 폐점 시간을 기존 오후 11시에서 11시 30분으로 늦추기로 했고요. 롯데마트 역시 지난 15일부터 내달 18일까지 전국 126개 점포 중 76개점의 영업시간을 11시에서 자정까지 한 시간 연장합니다.

연장 영업에 돌입하는 이유는 한 여름밤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쇼핑몰이나 마트를 찾는 '올빼미족'을 잡기 위해서입니다. 평소 오후 11시에서 자정까지는 매출 비중이 1.5%가량에 불과할 정도로 '손님'이 없는 시간대입니다. 다만 여름이 되면 이 시간대 매출이 어느 정도 늘기 때문에 이 기간만 '반짝 마케팅'에 나서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하절기 심야 연장 영업이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매출이 안 나오는 심야 시간대에 문을 닫다가 매출이 오르는 시기에 맞춰 일시적으로 영업시간을 늘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처럼 보입니다. 당장 지난해에만 해도 같은 시기에 같은 방식으로 연장 영업을 하기도 했고요.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슬픈(?)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사실 지난 수년간 대형마트들은 여름이라고 해서 연장 영업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대형마트는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이 제한되는데요. 대부분 점포들이 자정까지 시간을 꽉 채워 영업해온 만큼 추가로 문을 열 수 없었던 겁니다. 그러다가 지난해 두 업체 모두 영업시간을 오후 11시까지로 '단축'한 터라 연장 영업을 할 '여유'가 생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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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마트가 지난해 내놓은 폐점시간 단축 안내문. (사진=롯데마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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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와 롯데마트는 지난해 주 52시간 근무제와 최저임금의 영향 등으로 폐점 시간을 밤 11시까지로 앞당겼는데요. 워라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에 따른 것이기도 했지만 비용을 줄이기 위한 이유도 있었습니다.

대형마트들이 폐점 시간을 앞당긴 건 지난 2010년대 초반을 떠올려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일이었습니다. 지금 같은 영업시간 규제 방안이 마련된 건 지난 2013년입니다. 당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는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방안이 담겼는데요.

이런 규제가 최종적으로 결정되기까지 대형마트들과 정치권의 갈등이 컸던 것은 물론 이후에도 업체들이 관련법에 대해 헌법 소원을 내는 등 여파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형마트들이 그토록 사수하려고 했던 '심야영업'을 스스로 안 하겠다고 선언한 겁니다.

아마도 이제 대형마트들은 심야영업을 허용한다고 해도 과거처럼 대대적으로 영업시간 늘리기에 나서진 않을 겁니다. 과거에는 새벽 영업은 물론 24간 영업을 하는 점포도 많았는데요. 지난 2011년 관련 규제를 논의하기 시작할 무렵 심야 영업 제한과 의무휴업일 제정으로 대형마트 업체 전체의 손해가 연간 9조 471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심야영업은 물론 피크 시간대 영업조차 어려운 지경에 내몰리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주요 대형마트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줄줄이 반 토막 났고요. 올해 들어서도 침체라는 큰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과거처럼 영업시간을 늘리기보다는 폐점 시간을 앞당겨 인건비 등 비용 절감을 통해 효율을 높여야만 하는 상황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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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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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며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인 규제가 몇 년 만에 실효성 자체가 없어졌다는 점도 대형마트 입장에선 씁쓸한 지점입니다.

사실 대형마트의 심야영업을 제한하는 방안은 국회를 통과할 당시에도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특히 이 규제에 따른 수혜가 재래시장 등 골목상권이 아니라 온라인 시장으로 갈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이런 전망이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요즘 심야 시간대 쇼핑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이커머스들입니다. 올해 연 매출 6조~7조원을 바라보고 있는 쿠팡의 경우를 볼까요. 쿠팡의 하루 주문량 중 3분의 1가량은 오후 10시부터 자정까지 이뤄진다고 합니다. 소비자들 사이에선 전날 저녁 스마트폰으로 장을 보고, 다음날 배송받는 일상이 이미 자리 잡은 셈입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새벽배송도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아마도 한여름 잠을 이루지 못한 '올빼미족' 대다수는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점포보다는 온라인 쇼핑에 나설 가능성이 더 커 보입니다.

대형마트들도 이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심야영업을 한다고 해서 드라마틱하게 매출이 오를 것으로 보진 않는다"면서 "날씨도 더워졌고 하니 인근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이벤트성으로 연장 영업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라고 설명했는데요. 그러면서 "심야영업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객을 점포로 오게 하는 게 가장 큰 고민거리"라며 씁쓸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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