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왜 일 안주나""강제 PT대회로 망신"···봇물터진 직장내 괴롭힘

댓글 3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직장 괴롭힘 당했다” 곳곳서 분출

이마트 직원 40여명 기자회견

“관리자가 고객 앞에서 막말 모욕”

중앙일보

직장 괴롭힘 일러스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가 포함된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된 후 불과 3일 만에 사업장 곳곳에서 갈등이 터져나오고 있다.

시행 첫날인 16일만 해도 MBC, 이마트, 석유공사 등에서 ‘직장 내 괴롭힘’ 진정서를 고용노동부에 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취지 자체는 조직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만 근로자들은 모두 고용노동부로 바로 달려갔다.

진정서를 낸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을 대변하는 류하경 변호사는 “일을 주지 않고 사내 인트라넷 접속을 금지한 것은 고용노동부가 밝힌 직장 내 괴롭힘 사례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될 개연성이 높다”는 판단을 내놓았다. 하지만 MBC 사측은 “계약직 아나운서들의 지위에 대한 법적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소모적인 논란과 갈등을 초래할 수 있는 행위를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손정은 MBC 아나운서도 17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제 어떻게든 MBC에 다시 들어와야겠다며 몸무림치는 너희의 모습이 더 이상 안쓰럽게만 느껴지지 않는구나”란 비판의 글을 올렸다.

경북 포항에서는 이마트 직원 40여 명이 기자회견을 열고 “이마트 관리자가 계산원들에게 폭언·반말·막말을 일삼았으며 근무 중 고객 앞에서 모욕을 주는 행위를 했다”고 호소했다. 피해 직원들은 이날 관리자의 ‘분리조치’를 요구하며 고용노동부 포항지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마트 사측 관계자는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그런 적이 없다’고 하고 있어 양측 주장이 엇갈리는 데다 감사와 현장조사·면담을 했는데 특별히 입증된 피해 사실이 없었다”며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오해가 없도록 하라는 뜻에서 경고조치했다”고 해명했다.

“합의된 기준 나오기 전엔 충돌 불가피”

중앙일보

16일 이마트 포항 이동점 직원들이 관리자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며 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울산에 본사를 둔 한국석유공사 50대 간부직원들도 16일 고용노동부가 문을 열자마자 직장 내 괴롭힘 진정서를 냈다. 석유공사에서 20~30년간 근무해 온 이들은 지난해 3월 양수영 사장 취임 이후 인사평가에서 최하위 점수를 받으며 ‘전문위원’이라는 명목으로 강등된 3급 이상 직원들이다. 이들은 청사 별도 사무실 한곳에 격리된 채 별다른 업무를 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석유공사는 같은 날 자료를 통해 “전문위원 배치 등 고위직을 포함한 기존 인력의 인위적인 구조조정보다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노력을 시행했던 것”이라고 반박했다.

괴롭힘 범위에 대해 쟁점이 되는 ‘업무 독려’ 방식에 대해서도 이견이 표출됐다. 대신증권은 저성과자 영업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제 프레젠테이션(PT) 대회를 연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근로자들은 “저성과자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제로 PT 대회에 참가하게 해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사측은 “PT 대회는 상품 제안에 필요한 기초 소양을 키우고 영업직원 모두의 업무 능력 향상을 목표로 진행되는 것”이라며 “하반기에는 특정 직원이 아닌 전 영업직원들이 회차를 나눠 모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기업의 한 인사담당자는 “고용노동부가 몇 차례에 걸쳐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괴롭힘의 범위와 기준을 판단하는 근로자와 사용자의 시각이 다르다”며 “어느 정도 합의된 기준이 정해지기 전까지 이 같은 갈등 표출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괴롭힘 입증 안 돼도 신고자 불이익 안 돼

한편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절차를 두고도 사용자와 근로자의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 한 대기업 5년 차 대리는 “언론을 보면 다들 고용노동부로 바로 접수시키던데, 그 방법밖에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직장 내 괴롭힘 신고·처리 어떻게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일단 괴롭힘을 당한 근로자는 직장 내에 있는 괴롭힘 예방·대응 업무조직 담당자에게 신고할 수 있다. 본인이 신고하지 않더라도 제3자가 괴롭힘 사실을 알게 돼 신고할 수도 있다. 근로자의 신고가 접수되면 사측은 근로자의 요구에 따라 단순히 상담만 진행해 가해자와 분리조치할지, 아니면 구체적인 조사를 통해 가해자에 대한 징계 절차를 밟을지 정하게 된다. 상담과 조사 과정에서 신고자의 말과 달리 괴롭힘 사실이 없다 하더라도 신고자에 대해 불이익한 조치를 취하면 안 된다. 괴롭힘 사실이 인정되고 가해자에 대한 조치가 취해졌다 해도 끝나는 게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 재발 여부나 보복이 있는지 등을 점검해야 한다.

물론 근로자 입장에서 사측의 결정이 불합리하다고 판단하면 고용노동부에 직접 진정을 넣거나 가해자를 상대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이후연 기자, 포항·울산=백경서·이은지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