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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난민 보트 구해낸 소녀, 평화의 물결 타러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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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선 끌고 헤엄쳤던 '영웅'… 시리아 출신 유스라 마르디니 인터뷰

17세 소녀는 주저 없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2015년 여름, 지중해 동부 해역인 에게해. 6~7명이면 꽉 차는 작은 보트에 20명이 올라타고 위태롭게 나아가고 있었다. 갑자기 엔진이 멈췄다. 수년간 이어지던 내전(內戰)을 피해 터키를 거쳐 그리스로 향하던 시리아 사람들은 울부짖으며 신을 찾았다.

조선일보

양손으로 ‘손하트 인사’ - 유스라 마르디니가 18일 광주세계수영선수권 선수촌 앞에서 양손으로 작은 하트 모양을 만들어 한국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시리아 다마스쿠스가 고향인 그는 독일로 탈출해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정착했다. 이번 대회에는 ‘FINA(국제수영연맹) 독립선수’ 자격으로 출전한다. /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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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수영 선수였던 유스라 마르디니는 절망하지 않고 행동에 나섰다. 두 살 터울 친언니, 성인 남자 두 명과 물에 들어가 배를 밀기 시작했다. 배 위에선 엔진을 살리려는 사투가 벌어졌다. 3시간 30분쯤이 지났을 무렵, 결국 시동이 다시 걸렸다. 표류할 뻔했던 보트는 그리스 동부의 레스보스섬 해변에 닿았다. 죽음보다 강한 의지로 살아남은 마르디니는 언니와 함께 독일로 갔고, 그해 9월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정착했다. 부모가 딸들을 따라 독일로 건너오면서 가족이 다시 모였다.

18일 마르디니를 만났다. 현 국적은 독일인데 'FINA(국제수영연맹) 독립선수' 자격으로 광주에 왔다. 벨기에 국적인 또 다른 시리아 난민 출신 라미 아니스(28)도 독립선수로 출전한다. 대회 참가 194개국 선수 2500여 명 중 둘만 국가를 대표하지 않는다.

생사의 경계를 오갔던 4년 전의 일을 물어보자 마르다니는 "아직도 바다를 보면 예전 기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몸이 떨려요. 우울하진 않아요. 그땐 오로지 살기 위해 헤엄쳤다면, 지금은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요"라고 대답했다.

수영 얘기를 꺼내자 얼굴이 환해지면서 말이 많아졌다.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았던 옛 시절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열을 올린다"고 했다. 마르디니는 수영 코치였던 아버지를 따라 12세 때부터 물살을 갈랐다. 14세였던 2012년엔 시리아 국가대표로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FINA 쇼트코스(25m 풀) 세계수영선수권 세 종목(개인 혼영 200m, 자유형 200·400m)에 출전했을 만큼 유망주였다.

하지만 전쟁이 모든 것을 짓밟았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리아 학생들의 시위가 전국적으로 퍼지고, 정부군이 생화학무기로 국민의 목숨을 앗아갔다. 무슬림 종파 간의 갈등까지 겹치면서 시리아는 생지옥이 됐다. '올림픽 결선 무대를 같이 밟아보자'고 다짐했던 마르디니의 친구 3명은 수영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포탄으로 무너진 건물에 깔려 숨졌다.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 있던 마르디니의 집, 매일 새벽 찾았던 수영장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사촌 동생은 실종됐다. 마르디니가 2012년 쇼트코스 세계선수권에 참가했을 때 일어난 참변이었다.

"터키에서 돌아왔더니 운 좋게도 가족은 무사하더군요. 미리 피신했던 덕분이에요. 하지만 밤이고 낮이고 총, 포탄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어요. 항상 '내일 눈을 뜰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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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디니는 독일에 정착한 이듬해인 2016년 올림피언이 되겠다는 꿈을 이뤘다. 당시 사상 처음으로 결성된 난민 올림픽팀(Refugee Olympic Team) 자격으로 개최지인 브라질 리우에 간 것이다. 접영 100m에서 45명 중 41위, 자유형 100m는 46명 중 45위. 보잘것없는 성적이지만 마르디니의 도전은 많은 박수를 받았다.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포기할 줄 모르는 마르디니의 스토리는 전 세계 아이들에게 희망이 될 것"이라고 칭찬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로 활동하는 마르디니는 광주세계선수권에선 자유형 100m, 접영 100m에 나선다. 목표를 묻자 부끄러운 듯 얼굴이 빨개졌다. "내가 마이클 펠프스(미국)처럼 빠르면 좋겠지만, 그건 능력 밖이에요. 전쟁으로 꿈을 잃은 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어요. 한 명이라도 제 경기를 보고 힘을 내면 정말 기쁠 거예요."

[광주=주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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