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정덕현 칼럼] 아베의 군대와 방탄의 아미(army)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국일보

그룹 방탄소년단이 지난 6일부터 7일까지 오사카 얀마 스타디움에서, 13일부터 14일까지 시즈오카 스타디움 에코파에서 '러브 유어셀프: 스피크 유어셀프 - 재팬 에디션'(LOVE YOURSELF: SPEAK YOURSELF' - JAPAN EDITION)을 개최해 총 21만 팬과 만났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보면 산 자와 죽은 자들의 결전이 등장한다. 철 왕좌(iron throne)에 앉기 위해 7왕국이 죽고 죽이는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데, 북벽을 지키는 야경대원인 존 스노우는 장벽 저편으로부터 ‘밤의 왕’이 부활시킨 백귀들의 군대가 쳐들어오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존 스노우는 이 사실을 왕좌의 전쟁을 벌이는 이들에게 죽은 자들과의 결전을 위해 산 자들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설득한다. 그래서 뭉치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는 전제 하에 그간 치열한 전쟁을 벌였던 산 자들이 뭉쳐 저들과 대적하게 된다. 이 부분은 ‘왕좌의 게임’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자, 이 드라마의 메시지가 가장 잘 드러난 부분이기도 하다. 이대로 가다간 다 죽는다. 그러니 싸움을 멈추고 더 큰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

최근 일주일 간 아베 정권의 도발을 보면서 먼저 ‘왕좌의 게임’을 떠올리게 된 건, 이들의 우경화가 전 근대적인 제국주의 시절의 망령을 다시 부활시키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른바 ‘정상국가’를 추구하는 아베정권은 헌법 개정을 통해 군대를 다시 만들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그 명분으로서 한국을 안보를 위협하는 적으로 규정하려 한다. 일부에서는 이것이 이른바 ‘21세기 정한론(征韓論)’으로까지 불리고 있다. ‘왕좌의 게임’ 식으로 말하면 이 신 냉전 상황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게다.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

하지만 이런 긴장 국면 속에서 방탄소년단의 일본 공연 풍경은 이례적이다. 일본에서 발매된 싱글앨범은 선주문 100만 장이 나갔고 연일 오리콘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지난 6,7일 오사카, 13,14일 시즈오카에서 열린 공연에서는 무려 21만 명의 일본 팬들이 운집했다. 사실 이런 결과는 지난해 방탄소년단 지민의 이른바 ‘광복 티셔츠’가 일본 내 극우 세력의 공격을 받았지만 콘서트가 인산인해를 이뤘던 전적을 떠올려보면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당시 방탄소년단의 팬덤인 일본 아미(army)들은 SNS를 통해 극우 세력의 도 넘은 비판에 대한 자제를 촉구했고, 자신들이 “방탄소년단을 지켜주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또 전 세계의 아미들은 ‘광복 티셔츠’를 ‘원폭 티셔츠’라고 오도한 일본 우익들의 이야기를 바로잡기 위해 일제의 역사왜곡 문제를 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전 근대적인 제국주의 시절의 망령으로서 아베가 다시 깨우려는 군대가 있다면, 마치 이런 도발에 맞서 국가와 언어를 초월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아미가 있다. 전자가 이미 한 세기도 지난 시절의 죽은 망령의 부활이라면, 후자는 이제 앞으로 국경을 훌쩍 뛰어넘어 함께 할 ‘살아있는 자들’의 대적처럼 보인다.

아베 정권이 자행하고 있는 행보들을 보면 국가주의로의 회귀가 엿보인다. 국가주의는 이제 점점 지나가고 있는 옛 유산이 되고 있다. 그것은 개인주의적 가치들이 더 우선시되는 사회를 세계인들이 지향하기 시작했고, 디지털 네트워크로 연결된 글로벌한 환경 속에서 국가나 언어의 장벽은 이제 쉽게 무너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야 국가마다 다른 입장들이 존재하겠지만 적어도 경제나 문화에 있어서 국가의 경계는 쉽게 넘나드는 세상으로 가고 있다. 이번 아베 정권이 내놓은 수출 규제가 우리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미는, 거꾸로 보면 그만큼 우리가 연결된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 고리를 깨고 국가와 국가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놓은 후 그 바깥을 적으로 간주하는 행위는 그래서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는 퇴행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전 근대적인 국가주의의 망령을 깨우는 자들은 죽은 자들이다. 그래서 지금을 살고 있고 또 미래를 살아갈 산 자들은 저들에게 저항해야 한다.

‘국가가 없다고 생각해봐/ 해보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냐/ 누군가를 위해 죽일 이유도 죽을 필요도 없고...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산다고 생각해봐.’ 존 레넌은 1971년 ‘이매진(Imagine)’이라는 곡을 통해 국가가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노래한 바 있다. 냉전시대 베트남전에 반대하던 반전 평화주의자이자 무정부주의자였던 존 레넌의 면면이 잘 드러나는 곡이다. 그가 국가주의의 망령이 만들어냈던 죽고 죽이는 현실 속에서 꿈꾼 건 국가를 뛰어넘어 ‘공존하는 길’이었다. 아마도 존 레넌이 다시 살아난다면 지금 ‘21세기 비틀즈’로 불리는 BTS에 열광하는 전 세계적인 팬덤 아미에서 자신이 꿈꾸던 국가를 뛰어넘는 세상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국가와 언어를 초월해 좀 더 모두가 행복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아미들은 그래서 국가주의 그 다음을 이을 새로운 지구적 공동체의 상징처럼 보인다. 20세기를 피로 물들였던 ‘죽은 자들의 군대’에 맞설 21세기 ‘산 자들의 연대’. 공멸을 넘어 공존으로 가기 위해, 일본의 깨어있는 대중들을 포함하는 전 세계의 잠재적 아미들은 그래서 분연히 일어나 죽은 자들과 맞서야 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한국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