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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강지환 “만취해 기억 없다”…성범죄자 ‘주취감형’ 되풀이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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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세 여아 성폭행한 조두순이 ‘심신미약’ 이유로 12년형 받자 여론 반발

‘감경 미적용’ 규정 신설 이후에도 유사한 판결 잇따라…“더 강한 처벌” 목소리



경향신문

여성 스태프 2명을 성폭행·성추행한 혐으로 검찰에 송치된 배우 강지환씨.




배우 강지환씨(42·본명 조태규)가 18일 준강간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강씨는 지난 9일 오후 경기 광주시 자택에서 여성 스태프 2명과 술을 마신 뒤 이들이 자는 방에 들어가 성폭행·성추행한 혐의를 받는다. 강씨는 경찰 조사 내내 “술에 취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눈을 떠보니 여성 스태프들이 자고 있던 방이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성범죄자 다수는 강씨처럼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를 주장한다. 법원은 이런 주장을 펼친 성범죄자들에게 관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8년 12월 경기 안산시에서 8세 여아를 성폭행한 조두순씨(67)가 대표적이다. 조씨는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법원은 심신미약을 인정해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형법 제10조 2항은 “심신장애로 사물을 분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자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조씨의 ‘주취감형’에 여론이 반발하자 2013년 6월 국회는 성폭력처벌법을 개정하며 제20조에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에서 성폭력 범죄를 범한 때에는 감경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2017년 12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주취감형 폐지’ 청원이 21만명의 동의를 얻었을 때 “(2013년 성폭력처벌법 개정) 이후부터는 술 먹고 성범죄를 저지른다고 해서 봐주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경향신문이 지난 판결문들을 확인한 결과 성폭력처벌법 개정 이후에도 재판부 재량에 따른 ‘주취감형’ 판결은 이어졌다. 2017년 6월 대구지법 서부지원 형사1부(조현철 부장판사)는 강제추행상해 혐의로 기소된 ㄱ씨에게 심신미약을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ㄱ씨는 2017년 1월 대구 달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학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던 여중생을 마구 폭행한 뒤 추행했다. 재판부는 “ㄱ씨가 음주로 인한 블랙아웃 현상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 당일 회식 자리에서 주량을 초과해 술을 마신 점,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일관되게 진술하는 점 등을 종합하면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2014년 11월 부산지법 형사5부(권영문 부장판사)는 준강간 혐의로 기소된 ㄴ씨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ㄴ씨는 2014년 6월 양산시의 한 계곡 민박집에서 후배 애인이 만취해 자고 있는 틈을 타 성폭행했다. 재판부는 “ㄴ씨가 낮 12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계속 술을 마셨던 점, 함께 술을 마신 피해 여성도 성관계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점, 자신의 범행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일관되게 진술하는 점 등에 비춰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했다.

2016년 10월 광주지법 형사11부(강영훈 부장판사)는 강간미수 혐의로 기소된 ㄷ씨에게 심신미약을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ㄷ씨는 2016년 2월 친구 집에서 셋이서 술을 마시다가 친구가 취해 방에 들어가고 거실에 여성과 둘이 남게 되자 성폭행을 시도했다. 재판부는 “ㄷ씨가 범행 직후 그대로 잠을 잤던 점 등에 비춰보면 심신미약 상태”라고 했다. 2013년 10월 서울고법 형사9부(김주현 부장판사)는 주거침입강간 혐의로 기소된 ㄹ씨에 대해 심신미약을 인정해 징역 2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1년3월을 선고했다.

법원이 주취감형을 하는 이유는 형법이 범죄를 책임질 능력이 있는 자만 벌할 수 있다는 ‘책임주의’ 원칙을 채택하기 때문이다. 판단력을 잃은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면 의도적인 범죄와 같은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취지의 원칙이다. 성범죄자가 재판에서 감형을 기대하며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실제 과도한 음주로 심신미약 상태가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주취감형의 필요성을 아예 부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재판부가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감경 조항을 엄격하게 해석하지 않고 관대하게 감형해준 것이 문제”라고 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법에 주취감형이 있어 성범죄자가 술을 핑계로 숨으려고 하는 일이 여전하다”며 “가해자가 술에 취한 상태라면 피해자가 더 심한 피해를 입을 수 있어 오히려 더 강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이 소장은 “가해 남성은 ‘술을 마셨으니 실수할 수도 있다’며 감형받거나 용인받는데 그 자리에 있던 피해 여성은 ‘조심하지 않았다’며 비난받는다”며 “음주운전처럼 법이 더 강경한 태도를 보여야 잘못된 사회적 통념도 바뀐다”고 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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