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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간호사는 일 대신 뒷담화만?···의학드라마, 왜 자꾸 논란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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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동떨어진 캐릭터 설정에 항의 빗발쳐

탈 많은 의학드라마, 제작진 공식 사과하기도

최근 SBS 의학 드라마 ‘의사 요한’이 방송 시작 전부터 구설에 올랐다. 간호사를 깎아내렸단 논란에 휩싸이면서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간호사 폄하하지 말아주세요” “간호사는 의료인입니다” 등의 항의글이 빗발쳤다. 19일까지 올라온 56개의 글 가운데 대다수가 이랬다.

이 드라마는 미스터리한 통증의 원인을 찾아가는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들의 얘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제작진이 등장 간호사들의 캐릭터를 소개한 부분이 문제가 됐다.

통상 20년 경력을 쌓아야 하며 병동 라인 전체 책임자급인 수간호사에 대해선 “일명 홍간. 병원에서 일어나는 대소사를 사사건건 알아야 하고 퍼뜨려야 직성이 풀리는 수다스럽고 호들갑스러운 아줌마”라고 설명했다. 환자의 얘기를 소문내는 역할로 비칠 수 있다. 제작진은 또 다른 간호사에 대해서도 “일명 나간. 통증 센터 접수처를 꿰차고 앉아 틈틈이 먹고, 먹다가 퇴근하던 일상이 차요한의 등장으로 백팔십도 달라진다”고 썼다. 먹다 퇴근한다고 표현한 부분은 다소 한가로운 느낌을 주는데 환자를 돌보다 밥 먹을 시간조차 없는 현장 상황과 동떨어진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간호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부생이라 밝힌 최모씨는 “간호사도 의료법에 명시돼 있는 의료인”이라며 “어떤 간호사도 간식만 먹다 퇴근하지 않는다. 모든 간호사는 비밀누설 금지의 원칙에 따라 업무상 알게 된 어떤 사실도 함부로 누설하지 않는다”고 썼다. 고모씨 역시 “비밀 유지가 선서식 구절일 정도로 개인의 정보 비밀을 중요시하는 게 간호사 윤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김모씨는 “너무 놀라 게시판까지 들어오게 됐다”며 “아무리 드라마라도 현장에선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가고 하루 12시간 넘게 근무하고 연장수당도 제대로 못 받는데 이런 인식을 심어주는 게 불쾌하고 허무하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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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의사요한'이 극중 간호사에 대한 현장과 동떨어진 묘사 등으로 논란에 휩싸였다.[사진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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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성(姓)과 간호사의 ‘간’자를 붙여 호칭한 데 대해 간호사를 비하한 표현이라는 비난이 집중됐다. 자신을 대학병원 간호사라고 밝힌 김모씨는 “일하면서 물 한잔 화장실 한 번 못 가고 일한다. 홍간, 수간 이렇게 절대 말하지 않고 다들 선생님이란 존칭을 쓴다”고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생사를 다투면서 일하는 의료인인데 이런 대우에 눈물이 난다”고도 썼다. 조모씨는 “현장 모니터링을 제대로 하고 드라마 쓰시는지, 작가 수준이 의심된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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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의사 요한'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항의 글. [사진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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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찬기 대한간호협회 홍보국장은 “‘간호부’에서 ‘간호원’으로 그리고 1987년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의사와 같이 끝에 스승 ‘사(師)’를 붙여 ‘간호사’가 됐다”며 “‘간호사 선생님’으로 부르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드라마에선 간호사가 별다른 일을 하는 게 없는 것처럼 잘못 그려낸다. 방송작가협회 측에 관련 책자를 만들어 전달했지만 인식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서울 준종합병원 응급실 수간호사를 하다 현재 지역 보건소에서 근무하는 40대 강모씨는 “현재는 인식이 바뀌면서 일반인들도 선생님이라 하는 분이 많아졌다”며 “드라마에서 그렇게 보이면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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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연합뉴스 TV 제공]


제작진은 결국 드라마 캐릭터 소개 문구를 수정했고 PD가 직접 나서 “미흡했던 것 같다”며 “치밀하게 신경 써야 했는데 간호사분들께 사과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사과했지만 “지켜보겠다” “간호사 역할을 삭제하라” 식으로 여전히 분노를 드러내는 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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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방송됐던 드라마 '병원선'에서도 간호사의 복장 등이 논란이 돼 제작진이 공식 사과했다. [사진 MBC 드라마 병원선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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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드라마가 현실과 동떨어진 설정으로 논란이 된 건 처음이 아니다. 디테일과 리얼리티, 몰입도 측면서 그간 말도, 탈도 많았다.

앞서 2017년 방영됐던 ‘병원선’에선 몸매가 드러나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손톱엔 매니큐어를 칠한 간호사의 모습이 문제가 됐다. 위급한 상황에도 의사 뒤에 숨어 있고 환자의 개인정보를 떠들고 다니는 등의 업무태도 역시 논란이었다. 이에 대한간호협회 측이 시정조치를 요구했고, 외주제작사가 전국의 간호사들에게 사과하는 내용의 공문을 협회에 보내면서 논란이 일단락됐다. 2009년 ‘솔약국집 아들들’에선 간호사가 병원 청소부터 각종 허드렛일 등을 떠맡는 캐릭터로 묘사돼 보기 불편하단 지적이 있었다.

2008년 ‘뉴하트’의 경우 한약 비하성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고, 특정 의약제품명을 거론한 극중 대사가 사실과 다른 점이 있어 제작진이 공식사과한 바 있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방송됐던 ‘흉부외과’란 드라마는 현장에서의 탄탄한 취재와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호평을 받은 경우다. 보기 드물게 전문가들로부터 “지금까지의 의학 드라마 중 수술장의 모습을 가장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당시 제작진은 흉부외과 권위자로부터 조언을 받았고, 이들의 제자를 소개받아 30명으로 자문단을 꾸렸다. 대본 구성에도 6명의 의사와 간호사가 참여했다고 한다.

한편 ‘의사 요한’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통증의학과 의사의 실제 모습은 어떨까. 서울 한 대형병형원의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보통 통증은 어떤 병에 딸린 부수적 증상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통증 자체를 치료해야 하는 병으로 보고 환자를 치료한다”며 “수술로 인한 통증 같은 급성 통증이 있고, 노인의 허리 통증 등 만성 통증이 있다. 진통제 등 약물이나 신경차단술 등을 통해 통증 정도를 조절해주는 게 우리 역할”이라고 말했다. 드라마는 미스터리한 통증의 원인을 찾아간다는 설정을 하는데 실제 원인을 명확히 알 수 없지만 통증이 너무 심해 조절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고 한다.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마취과가 없으면 수술을 못하기 때문에 수술 의사처럼 ‘생명의 최전선에서 일한다’하는 그런 느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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