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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느냐 사느냐, 이제 관객의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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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참여형’ 연극은 진화중

관객들에 말 걸고 무대 세우는

소극적 참여에서 진화

스토리 전개 ‘플레이어’로

카톡 통해 주인공에 조언하고

토론·추리 함께 하며 작품 동참

불확실성 높아 배우들 늘 긴장

극 몰입도 높아져 관객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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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문 ‘관객 참여형’ 공연이 진화 중이다. 관객에게 말을 걸고, 함께 춤추고, 무대에 세우는 정도는 이제 축에도 못 낀다. 즉석에서 관객들이 제시하는 내용으로 공연을 완성하는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고정된 무대와 객석이 따로 없이 관객들이 이리저리 이동하며 공연에 참여하는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나 <포스트 아파트> 등 참신한 시도들이 쏟아지고 있다. 아예 관객들이 스토리 전개에 ‘플레이어’로 참여하기도 한다. 연극 <#나만빼고>는 공연 중에 카카오톡(이하 카톡) 대화를 하자며 휴대전화를 켜놓으라고 한다. 새아버지를 살해한 소녀의 유·무죄를 국민배심원단이 다투는 문제를 그린 연극 <시비노자>(시시비비를 가리는 화난 사람들이라는 뜻)는 ‘당신의 생각은 어떠냐’고 묻고 관객들이 내린 결론에 따라 극을 마무리한다.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보니 공연 완성도의 3할은 관객이 좌지우지한다. 공연의 재미도 그날 관객의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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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객들도 배우이자 연출가

“평경장님이 들어왔습니다.” “고니님이 들어왔습니다.” “도봉오른손잡이님이 들어왔습니다.” 지난 16일 서울 대학로 익스트림씨어터. 어두운 공연장에서 관객들이 일제히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본다. 극장 입구에서 휴대전화로 큐아르코드(정보무늬)를 찍고 오픈 채팅방에 가명으로 들어온 관객들은 무대 위 스크린에 나오는 채팅방 상황을 신기한 듯 바라본다. 공연 시작 전에 항상 나오는 “휴대전화 전원을 꺼달라”는 안내 대신, 채팅방에 이런 문자가 뜬다. “얘들아, 휴대전화는 꼭 무음으로 해줘.”

‘카톡 소통 연극’을 표방한 공연은 사랑 고백에 서툰 대학생 진욱의 이야기가 큰 축이다. 여기에 생활고를 겪는 모녀, 사랑 표현에 인색한 아버지 등의 이야기가 섞이면서 옴니버스 형식으로 극이 펼쳐진다. 진욱의 친구로 설정된 관객들은 채팅방을 통해 진욱에게 갖가지 조언을 내놓으며 연극에 참여한다. 짝사랑 상대가 보낸 미소가 무슨 의미인지 몰라 헷갈려 하는 진욱에게 진짜 친구들처럼 의견을 보탠다. “정신 차려” “그린라이트”(호감 있는 상태를 뜻함). 진욱이 사랑 고백할 때 뭘 입고 갈지 고민하면 ‘영상통화’와 ‘투표하기’로 옷을 골라준다. 센스 있는 대화명, ‘애정이 어린’ 욕과 이모티콘 등 관객들의 애드리브가 빛나면 웃음이 터진다. 박상협 연출가는 “기본 줄거리는 해치지 않는 선에서 공연 중간중간 카톡 대화를 나누는데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가 순간의 재미를 좌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공연을 본 한 관객은 “카톡 소통 연극이 신선했다. 대화 글이 순식간에 지나가는데 내가 ‘독수리’(세 손가락으로 느리게 타자 치는 모습을 비유)인 게 아쉬웠다”고 말했다.

관객들이 결말을 짓는 ‘개방형 연극’도 있다. 대학로 열림홀에 올려진 연극 <시비노자>(8월4일까지)는 ‘사람이 사람을 심판하는 게 가능할까’란 무거운 메시지를 던지는 ‘토론 연극’이다. 새아버지를 죽인 혐의로 재판을 받는 소녀를 두고 국민배심원단이 열띤 토론을 벌이다 관객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사건이 일어난 현장에서 소녀를 봤다는 목격자도 있고, 소녀의 미용가위가 살인도구라는 결정적 증거도 제시된다. 그러나 소녀의 ‘유죄’ ‘무죄’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관객들도 배심원이 돼 설전을 벌인다. 지난 17일 관람한 공연은 관객이 적어 토론이 활발하진 못했으나 “병원에서 일한다”는 한 관객의 ‘출연’으로 분위기가 확실히 살아났다. 소녀가 유죄라고 생각한 한 관객이 “살해도구가 증거다. 다른 사람이 새아버지를 죽이려고 했다면 좀 더 확실한 살해도구를 썼을 것”이라고 추정하자, 무죄를 주장하는 관객도 나섰다. “칼이 들어간 위치를 잘 살펴봐야 할 것 같아요. 뒤에서 올라가는 근육은 짧고…소녀가 앞쪽에서 찔렀다면 혈관이 터지면서 소녀 옷에 피가 다 묻었을 거예요.” 고급진 의학전문용어가 마구 터져나오자, 순간 무대와 객석에서 “오호~” 감탄사가 터졌다. 관객들이 각자의 논리를 전개할 때마다 유·무죄를 다투던 배우들은 “증거가 어중간하다고요” “증거와 증인이 있는데 무슨 소리 하시는 거냐”며 극을 이어갔다. 이날 관객들은 토론 끝에 소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강봉훈 연출가는 “진지한 연극은 관객들이 보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는데, 토론을 하면 오히려 진실을 판단하는 건 두려운 일이라는 메시지를 보다 쉽게 받아들이고 볼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한 사람들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손을 들어 의견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초반엔 걱정했는데 객석이 꽉 차거나 서로 친한 단체관객들이 있으면 토론이 훨씬 재미있고 활발하게 벌어지더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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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이 콘서트 주제를 정하기도 한다. 그룹 에픽하이는 2016년부터 소극장 콘서트를 ‘관객 선택형’ 공연으로 열고 있다. 에픽하이가 영화나 드라마를 패러디한 테마 6가지를 온라인에 공지하면 관객들은 자기가 볼 회차에 보고 싶은 테마를 선택해 사전 투표를 하고, 에픽하이는 그 결과에 따라 공연을 준비한다. 새달 2~4일, 9~11일까지 모두 8회에 걸쳐 서울 서강대학교 메리홀에서 펼쳐지는 ‘현재 상영 중 2019’도 현재 온라인 투표를 하고 있다. 올해 패러디한 작품은 ‘급한직업’ ‘친절한 쓰라씨’ ‘완벽한 라임’ ‘늙은 소년’ ‘아버찌’ ‘하이(HIGH) 캐슬’이다. 공연을 직접 기획한 에픽하이는 “우리 공연은 다회차 관람을 하는 팬들이 많다. 그런 팬들에게 회마다 색다른 공연을 즐기게 해주려고 고민하다 나온 기획”이라고 설명했다.

■ 똑같은 공연은 없다

‘열린 연극’은 국외에선 이미 대세로 자리 잡았다. 1980년 미국에서 초연돼 지금까지 공연 중인 <쉬어 매드니스>는 최장기 공연 기록을 갖고 있는 관객 참여형 연극이다. 미용실 위층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는 내용으로 국내에선 2006년 첫선을 보였다. 2015년부터 극을 새롭게 각색한 뒤엔 한 해도 쉬지 않고 무대에 올랐는데 현재 대학로 콘텐츠박스에서 상연중이다. 인기 비결은 역시 관객들의 추리와 선택에 따라 범인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미용실 위층에 사는 피아니스트 바이엘 하를 죽인 용의자는 모두 네 명이다. 피아노 소리가 듣기 싫다며 툭하면 화를 냈던 헤어디자이너 조지, 바이엘 하가 집착했던 헤어디자이너 수지, 바이엘 하의 골동품을 판매하다 수지와 애인이 된 오준수, 사건이 발생한 시간에 미용실에 들렀던 부잣집 사모님 등이다. 이들은 모두 수상쩍은 행동을 하고 두 명의 형사는 관객들에게 수사 도움을 요청한다. 지난 15일 함께 연극을 본 관객들은 형사의 질문에 “오준수가 자신의 007 가방에 비닐장갑 같은 걸 황급히 숨겼다”거나 “남편에게 전화했다던 사모님이 쪽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건 게 수상하다” 등의 의견을 내놓았다. 관객 투표로 결정된 ‘이날의 범인’은 오준수였다. 그러나 내일은 수지가 범인이 될 수도 있다. 서성종 연출가는 “관객분들 추리력이 대단하셔서 작은 디테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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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공연은 그만큼 불확실성이 높아 배우들에게도 훈련이 필요하다. 반응이 썰렁할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모든 것이 즉흥적으로 이뤄지지만 공연 횟수가 쌓이면 데이터가 생긴다. <쉬어 매드니스>는 원작을 들여올 때 장기 공연을 하며 쌓인 축적된 매뉴얼 북이 있다. 난데없이 형사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특이한 관객에게도 대응하는 방법이 있다. 서성종 <쉬어 매드니스> 연출가는 “관객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공연은 배우들도 늘 긴장하기 마련”이라며 “배우들 스스로가 공연하는 맛을 느껴 장기 공연을 해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봉훈 <시비노자> 연출가는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에게 그 상황엔 이렇게 했으면 좋았겠다를 얘기하며 다양한 사례들을 배워가는 중”이라고 했다.

박병성 공연평론가는 “넷플릭스 같은 영상매체에서도 관객들이 참여하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듯이 관객 참여형 공연은 세계적 흐름”이라며 “관객들이 직접 참여한 작품에 갖는 친밀감과 애정도는 다른 작품보다 클 수밖에 없어 참여형 공연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참여형 공연은 커튼콜도 색달랐다. <시비노자>는 관객들이 한 소녀에게 내린 판결이 온당했는지 곱씹어보게 하기 위해 배우들의 무대인사를 생략했다. <#나만빼고>는 배우들이 인사하는 사이 채팅방에 “배우님들 멋지세요” “재밌어요” 등의 관객 후기가 올라왔다.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극장을 나서듯 채팅방에서 줄줄이 나갔다. “평경장님이 나가셨습니다.” “고니님이 나가셨습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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