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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홍콩 시위대 노린 '백색 테러'… 만삭 임신부까지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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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셔츠 차림 수십명, 지하철까지 들어가 쇠파이프 휘둘러

입법회 의원 등 45명 부상… "홍콩 내 친중파가 배후" 의혹 제기

지난 21일 밤 10시 45분쯤 백색의 테러가 홍콩 북서부 위안랑(元朗) 지하철역을 덮쳤다. 각목과 쇠파이프를 손에 든 흰색 셔츠, 마스크 차림의 건장한 남성 수십명이 역 안으로 몰려오더니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로 폭행하기 시작했다. 범죄인 인도 법안 완전 철폐 시위에 갔다가 귀가하던 검은 옷차림 참가자들과 일반 시민, 기자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졌다. 시민들은 플랫폼으로 달려가 객차 안으로 피신했지만, 백색 옷의 남성들은 객차 안까지 따라 들어와 둔기를 휘둘렀다. 객차 안은 아비규환이었다. 역 개찰구와 플랫폼 주변은 온통 핏자국으로 얼룩졌다.

조선일보

21일 밤 홍콩 북서부 지역 위안랑(元朗) 지하철역 안에서 흰색 셔츠와 마스크 차림의 남성들이 각목과 쇠파이프로 시위대와 시민을 무차별 폭행하고 있다(위). 홍콩 현지 언론들은 "이들의 배후가 홍콩 내 친중파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날 폭행 피해자 중에는 만삭의 임신부(아래)도 있었다. /유튜브·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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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테러는 명백히 범죄인 인도법 완전 철폐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노린 것이었다. 홍콩 자유언론은 "부상자 중에는 만삭의 임신부도 있다"고 전했다. 목격자들은 "이들이 폭력 조직인 삼합회 조직원들로 보인다"고 말했다. 민주파 입법회(의회) 의원인 린줘팅(林卓廷) 의원을 포함한 최소 45명이 다쳤고 1명은 중태에 빠졌다.

백색 옷의 테러는 오후 11시 15분 경찰관들이 도착할 때까지 30여분간 계속됐다. 경찰은 이들이 사라진 뒤에야 현장에 나타났다. 시민들은 늑장 출동에 거칠게 항의했고, 일부 시민은 "흰색 옷을 입은 남성들이 역으로 내려올 때 경찰이 일부러 자리를 피했다"고 주장했다. 새벽 1시쯤 인근 주택가에선 백색 옷 남성 100여명이 집결한 모습도 목격됐다. 경찰이 출동했지만 한 명도 체포하지 않고 쇠파이프 몇 개만 압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일보

21일(현지 시각) 중국 중앙인민정부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 정문의 중국 정부 휘장에 검은 페인트가 뿌려져 있다.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은 중국 중앙정부를 대표하는 기관으로, 지난달 9일부터 본격화한 홍콩 시위 사태 이후 연락판공실이 시위대의 타깃이 된 것은 처음이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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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홍콩 언론은 "이들의 배후가 홍콩 내 친중파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22일 보도했다. 범죄인 송환 반대 시위 참가자들은 홍콩 정부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검은 옷을 입어왔다. 그러나 친중 진영은 경찰과 정부를 지지한다는 의미에서 흰색 옷을 입고 맞불 시위를 벌여왔다. 지난 20일 친중 집회도 온통 흰색 물결이었다. 특히 친중파 입법회 의원 허쥔야오(何君堯)가 위안랑역 부근에서 흰 옷, 마스크 차림의 남성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다가가 악수를 나누는 장면까지 공개됐다.

홍콩 정부는 백색 옷 테러 사건 직후인 22일 새벽 대변인 명의 성명을 내고 "이번 사건은 법에 의해 지배되는 홍콩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며 "정부는 어떤 형태의 폭력도 강력히 규탄하며 심각히 법 집행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만약 이들의 배후가 친중파임이 밝혀진다면 홍콩 내 반중 정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보복 행위 등 폭력의 악순환도 우려된다.

지하철역에선 백색의 테러가 벌어진 반면 홍콩 도심의 도로에선 범죄인 인도법 완전 철폐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한 채 심야까지 경찰과 대치했다. 이 과정에서 도심 도로는 또다시 최루가스로 뒤덮였다. 43만명(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 최대 13만8000명)이 참가한 시위에서 참가자들은 '법안 완전 철폐' '캐리 람 행정장관 사퇴' '행정장관 완전한 직선제' 등을 요구하며 행진을 벌였다. 일부 시위대는 중국 중앙정부를 대표하는 중앙인민정부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로 몰려가 중국 정부를 상징하는 붉은 휘장에 검은 페인트를 뿌리고 날계란을 던졌다. 청사 벽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중국 공산당과 함께 침몰하라' 'F××k 지나(支那)' 등 반중 구호·욕설을 그리며 중국에 대한 분노와 반감을 쏟아냈다. 이번 시위 사태가 발생한 이후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이 시위대의 타깃이 된 것은 처음이었다. 범죄인 인도 반대로 시작된 홍콩 시위의 숨은 본질이 결국은 '반(反)중국' '반중국식 사회주의 통치'임을 드러낸 것이다.

시위대의 행위에 중국 중앙정부는 격노했다.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은 21일 밤 대변인 명의 담화를 내고 "이런 행위는 중국 정부 권위에 공공연히 도전하고 일국양제의 마지노선을 건드리는 것으로서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베이징=이길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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