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 모기 씨를 말릴 인류의 '대량살상무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뎅기바이러스 모기 국내 첫 발견… 세계 年100만명 모기 감염병 사망

不妊 유전자로 代 끊는 기술 개발… 실험실서 모기 집단 멸종 유도

美 정부, 악용 방지 기술에도 투자… 모기 항체로 병원체 막는 연구도

조선일보

이영완 과학전문기자·논설위원


최근 국내에서 채집된 모기에서 뎅기열을 유발하는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대부분 증상 없이 지나가지만 일부는 심한 고열과 두통에 시달리다가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항공기를 통해 동남아시아에서 뎅기바이러스를 가진 모기가 유입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짧은 장마와 태풍이 지나가면서 불볕더위가 시작됐다. 이제 열대야와 함께 모기도 기승을 부릴 것이다. 한철 극성일 뿐이라고 우습게 볼 일은 아니다. 의료계에 따르면 해마다 전 세계에서 모기가 옮기는 말라리아·뎅기열·황열병 등에 7억명 이상이 감염되고 이 중 100만명이 사망한다. 말라리아 하나만 따져도 60만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간다.

인류도 가만있지 않았다. 최근 모기에 대한 인류의 반격이 본격화되고 있다. 질병을 옮기는 모기를 잡아 없애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씨를 말리는 유전자 기술이 개발돼 상용화 막바지에 들어갔다. 소규모 야외 실험이 시작된 데 이어 몇 년 내 실제 자연에도 적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영국 임피리얼 칼리지 런던(ICL) 생명과학부의 안드레아 크리산티 교수 연구진은 지난 1일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유전자 변형 모기를 방사했다. 연구진은 지난해 실험실에서 이른바 '유전자 드라이브(Gene Drive)' 기술로 번식이 안 되는 불임(不妊) 모기를 만들어 8세대 만에 말라리아모기를 완전히 없앴다고 발표했다. 모기가 태어나서 자손을 낳을 때까지 26일이 걸리니 산술적으로 200일 정도에 멸종이 가능한 셈이다. 이 연구는 지난해 과학 매체들이 잇따라 올해의 과학 뉴스로 선정했다. 연구진은 이 기술을 자연에 본격 도입하기 전 이번에 다른 유전자를 바꾼 모기를 풀어 전파 경로를 시험하기로 했다.

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전부터 불임 모기를 방사해 질병을 옮기는 모기를 박멸하는 연구를 했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자손은 유전자를 부모 양쪽에서 절반씩 물려받는다. 불임 유전자를 가진 모기가 야생 모기와 짝짓기를 하면 후손은 절반만 불임 유전자를 가진다. 이렇게 세대를 거듭하면 불임 유전자를 가진 모기가 극소수로 줄어든다. 일종의 유전자 희석이 일어나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은 2014년 불임 유전자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라는 효소 단백질을 결합시켜 문제를 해결했다. 자손은 불임 모기와 야생 모기로부터 유전자를 절반씩 받는다. 유전자 가위는 야생 모기로부터 물려받은 DNA에서 불임 유전자에 상응하는 부위의 유전자를 잘라낸다. 빈 곳은 불임 유전자가 복제돼 채운다. 이렇게 되면 양쪽 부모에게 모두 불임 유전자를 물려받는 셈이 된다. 영국 연구진은 빌 게이츠 재단의 지원을 받아 '타깃 말라리아'와 같이 아프리카에 이 기술을 보급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유전자 드라이브도 약점이 있다. 세대가 거듭하면 모기 유전자에서 내성(耐性)을 가진 돌연변이가 생겨난다. 과학자들은 유전자 드라이브의 대상을 돌연변이가 덜한 유전자로 바꿔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지난해 크리산티 교수팀은 말라리아모기에서 특정 유전자 부위를 손상시키는 새로운 유전자 드라이브를 개발했다. 이 유전자는 생식과 관련된 유전자라 돌연변이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실험 결과, 암컷 모기가 피를 빨지 않고 알을 못 낳아 결국 집단이 자멸했다.

유전자 드라이브는 모기를 넘어 다른 유해 생물에도 적용되고 있다. 미국 UC샌디에이고 연구진은 올해 유전자 드라이브로 실험실에서 키우는 쥐들의 털색을 단기간에 바꾸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세계 각국에서 고립된 섬 생태계를 파괴하는 외래 설치류를 박멸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병원성 미생물도 같은 방법으로 박멸하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인간을 도우려던 유전자 기술이 생물무기로 악용되거나 생태계 파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인도적 목적이라고는 하나 인간이 한 생물의 멸종을 일으킬 권리가 있느냐는 비판도 있다.

이에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2017년부터 유전자 드라이브가 농작물이나 가축을 박멸하는 식의 생물무기로 악용되면 바로 무력화할 수 있는 대항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모기도 사람도 다 생존하는 유전자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UC샌디에이고 연구진은 지난 5월 이집트숲모기가 뎅기바이러스에 항체를 만들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러면 모기가 뎅기열을 옮기지 않고 오히려 바이러스를 막는다. 연구진은 앞으로 어떤 병원성 바이러스라도 감염되면 바로 항체로 공격하는 모기를 개발할 계획이다. 모기에 월바키아라는 세균을 감염시켜 말라리아 원충을 대신 공격하도록 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논설위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