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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만물상] 외래 많이 가는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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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급한 증상도 아닌 환자가 대학병원서 응급 진료를 받는 경우가 꽤 있다. 이들은 집으로 돌아갈 때 보험회사 제출용 서류를 뗀다. 진료비를 돈으로 보상받는 실손보험 가입자다. 보험사는 응급실 진료 한 번에 5만원 정도 준다. 비(非)응급 증상으로 응급실을 찾는 실손보험 가입자가 비가입자보다 32% 많다. 대형 병원 응급센터에 경증 환자가 몰리는 이유 중 하나다.

▶유명 대학 병원 정형외과 교수가 들려준 얘기다. 관절염 때문에 인공 관절 수술을 받아야 할지 물어보기 위해 이른바 '빅(big) 4' 병원 외래 네 곳을 다 거친 환자를 종종 본다고 한다. 자신은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한 네 번째 의사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심각한 질병이 아닌데도 초호화 닥터 쇼핑을 제한 없이 할 수 있다. 특진비마저 사라져 비용 부담도 크지 않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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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과잉진단예방연구회 소속 의대 교수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부가 흡연자를 대상으로 폐암 CT 무상 검진을 시작하는데, 그러면 폐암처럼 보이는 '가짜 폐암' 임시 진단이 쏟아져 나와 그걸 확인하기 위해 조직 검사를 받다가 멀쩡한 사람들이 폐출혈이나 기흉(氣胸) 피해를 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은 과잉 진단으로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갑상샘암 폭증 현상을 경험한 바 있다. 우리나라 직장 건강검진에서 받는 검사 종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검진받을 때보다 많다.

▶엊그제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 통계를 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2.7세로 일본에 이어 둘째 장수국이다. 그렇지만 자기 건강이 좋다고 보는 비율은 매우 낮고, 병·의원을 찾는 횟수는 가장 많다.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가 연간 16.6회로 십수년째 1위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지원 아래 3000원(65세 이상은 1500원)만 있으면 웬만한 도시서 예약 없이 전문의 외래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같은 보험료 내고 병·의원 안 가는 사람이 손해라는 생각이 든다.

▶문턱 낮은 외래가 중병을 막는 효과가 있지만 전문 의료는 양날의 칼이어서 맘껏 한다고 마냥 좋은 게 아니다. 약물·검사 남용으로 의료비가 올라가고, 병원 의존증, 검사 과신증, 건강 염려증도 유도된다. 이에 선진국은 전문의 진료에 단계별 제한을 둔다. 건강 증진 활동을 해서 외래를 덜 가거나, 고가 주사를 안 쓰거나, 약을 적게 먹어도 인센티브를 준다. 건강은 '의사 면죄부'로 얻는 게 아니다. 스스로 노력해 만들어야 건강 수명이 길게 간다.



[김철중 논설위원·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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