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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시신 셀카 20시간 공유됐다···'살인 전시장'된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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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 후 사진 올린 美 20대 남성

시신 배경 삼아 셀카까지 찍어

20시간 넘게 시신 사진 떠돌아

면식범이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은 17세 소녀의 시신 사진이 SNS에 무분별하게 퍼지며 거대 IT 회사들이 유해 게시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중앙일보

비앙카 데빈스의 고등학교 졸업 사진. [사진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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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주 유티카에 거주했던 비앙카 데빈스(17)는 지난 13일 뉴욕 퀸즈에서 진행된 콘서트를 함께 보러 간 브랜든 클라크(남·21)의 손에 살해됐다. 이후 클라크가 올린 데빈스의 시신 사진이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폭발적으로 공유되며 사용자들의 삭제 요청이 쇄도했으나 적절한 조치가 신속히 이뤄지지 않아 SNS 기업의 책임 소홀과 사용자들의 저급한 윤리 의식에 대한 공분이 일고 있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17일 전했다.

데빈스의 시신 사진을 처음 올린 이는 살인 용의자이자 데빈스의 지인 혹은 남자친구로 알려진 클라크였다. 일부 언론은 클라크는 사건 다음날 새벽 자신의 SNS에 “지옥이 시작된다. 이건 구원이야”라고 썼다. 이는 록밴드 ‘할리우드 언데드’의 히트곡 가사를 그대로 따온 것이다. 그는 이어 영화 ‘파이트클럽’ 대사를 인용해 “이게 네 인생이야, 최후에 다다르고 있어”라고 적는가 하면, 피 흘리는 시신 상반신을 흐릿하게 처리한 사진을 올리고 “미안해 비앙카”라고 썼다. 가디언에 따르면 경찰이 클라크의 집에 들이닥쳤을 때 그는 방수포로 덮인 비앙카의 시신을 배경 삼아 셀카를 찍고 있었다고 한다.

문제의 사진은 인스타그램 측이 클라크의 계정을 완전히 삭제하기까지 약 20시간 동안 온라인에 그대로 노출됐다. 그동안 사진이 공유된 횟수는 수백 회에 달한다. 미국 대중문화 전문지 롤링스톤즈는 “부적절한 콘텐츠를 걸러내기 위해 설계된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을 피하기 위해, 시신 사진을 다른 사진 옆에 나란히 붙여 올리거나, 사진 일부를 편집‧합성해 올리는 사용자들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들의 윤리 의식에 문제가 있었을 뿐 아니라 인스타그램의 필터링 시스템 또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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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앙카 데빈스의 죽음을 추모하는 인스타그램 게시물. [사진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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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클라크의 SNS 계정에 범행 사진을 보내달라며 댓글을 다는 사용자들과, 원본 범행 사진을 패러디한 사진을 유료로 판매하겠다는 일부 사용자들이 나타나며 미국 국민에게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BBC는 ‘비앙카 데빈스: 10대 소녀의 죽음이 클릭 수에 희생되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일부 SNS 사용자들의 몰지각한 행태를 비판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또한 “(시신 사진을 본) 일부 SNS 사용자들은 이를 ‘이색적인 광고’로 착각해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며 “우리는 살인 사건이 ‘바이럴’될 뿐 아니라 가벼이 여겨지는 SNS 환경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논평했다.

이번 ‘시신 셀카’ 사건은 앞서 4개월 전에 발생한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테러와 닮은 점이 많다는 게 외신의 지적이다. 지난 3월 뉴질랜드 남섬 크라이스트처치에서는 한 백인 남성이 이슬람 사원에 난입해 시민들에게 소총을 난사하는 장면을 페이스북에 생중계하며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이후 그가 올린 동영상이 각종 SNS에 걷잡을 수 없이 퍼지며 SNS 업체들이 부적절한 콘텐츠를 관리할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부적절한 SNS 콘텐츠에 대한 미 정부의 대응 방식도 도마 위에 올랐다. 뉴질랜드 테러 두 달 후 뉴질랜드·프랑스 등 17개국 정부와 페이스북·트위터·구글 등 8개 글로벌 인터넷 기업이 극단적 온라인 콘텐츠를 규제하는 방안에 합의하며 ‘크라이스트처치 합의서’에 공동 성명 했지만 미국은 “테러리스트 콘텐츠 규제에 찬성하지만, 표현의 자유 역시 존중돼야 한다”며 불참 의사를 밝혔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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