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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13살 웨이트리스→경단녀 워런, 트럼프 싸움닭으로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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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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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항마 시리즈② 엘리자베스 워런

사랑꾼 모범생에서 포기를 모르는 싸움닭으로-.

엘리자베스 워런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의 인생을 요약하면 이렇다. 1949년생으로 올해 70세인 워런은 정치와는 거리가 먼 20대를 보냈다. 교사를 꿈꾼 그는 고교 시절 첫사랑과 결혼하기 위해 명문 조지워싱턴대를 중퇴했다. 남편이 직장을 구한 휴스턴으로 이주하기 위해서였다. 휴스턴에서 로스쿨을 다녔지만 둘째 임신 후엔 휴학을 택하는 등, 자신보다 가정이 우선이었다.

2019년의 워런은 다르다. 민주당 대선 주자 중에서 야심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존재다. 2012년 매사추세츠주가 배출한 첫 여성 상원의원으로 재선에 성공한 그는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남편과는 결혼 10년만인 78년 이혼했고, 2년 뒤 동료 법학자와 재혼했지만 성은 바꾸지 않았다.

현재 워런의 이미지는 ‘싸움닭’에 가깝다. 정계 입문 후 출간한 대표적 저서 제목도 『싸울 기회(A Fighting Chance)』『이 싸움은 우리의 싸움이다(This Fight Is Our Fight)』로 지었다. 그는 “싸울 만한 가치’가 있다면 아주 강력한 적들을 상대로 싸우더라도 이길 수 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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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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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의 강력한 적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워런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폭스뉴스가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워런에게 2%포인트 뒤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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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9일(현지시간) 트위터 글을 통해 "내가 종종 '포카혼타스'라고 부른 엘리자베스 워런 의원이 오늘 대선 레이스에 합류했다"고 소개하면서 미국의 첫 아메리카 원주민 대선 후보로 레이스를 펼칠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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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국방장관 된다고? 미쳤다”

워런이 최근 싸움닭의 면모를 과시한 건 지난 15일 상원 군사위원회다. 마크 에스퍼국방장관 지명자의 인준 청문회에서 워런은 에스퍼가 세계 3위 군사납품 업체인 레이시온의 부사장으로 일하며 로비의 대가로 높은 연봉을 받았던 점을 문제 삼았다.

워런은 에스퍼에게 ”국방장관이 된다면 레이시온과 관련한 결정은 피하겠다고 약속하겠나”라고 재차 물었지만 에스퍼는 약속을 거부했다. 워런은 그러자 “당신은 장관으로 인준돼선 안 된다”고 몰아붙이며 “이건 미친 짓이다(This is outrageous)”라고 말했다. 미국 언론은 “에스퍼가 워런에게 혼쭐이 났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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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워런 의원이 정계 입문 후 쓴 저서의 제목엔 '싸움'이 많이 들어간다. [연합뉴스]



워런의 전공 분야는 사실 파산법이다. 배경은 그의 아픈 어린 시절이다. 그가 12살이었던 때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와병하면서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는 13살 때부터 먼 친척이 하는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했다. 그가 이후 최저임금 인상을 강조하고, 파산법 전문가가 된 이유다.



대표적 저서 제목은 『맞벌이의 함정』

법조인으로 그는 곧 두각을 나타냈다. 하버드 졸업생이 아님에도 95년 하버드대 로스쿨에 임용돼 정계에 입문한 2012년까지 교편을 잡았다. 『맞벌이의 함정』, 『맞벌이 부부의 경제학』 등, 전공인 파산법뿐 아니라 일반 대중을 위한 책도 집필했다. 상법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학자로 권위를 인정받았다. 이후 소비자 보호 운동을 펼쳐 현재 미국의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의 설립에도 핵심 역할을 했다. 정치에 눈을 뜬 것도 이때부터였다.

워런은 고교 시절 토론왕이었다. 토론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던 그는 정계에 입문해서도 특유의 직설적이고도 강력한 화법을 구사했다. 그가 처음으로 중앙정치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2012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을 위해 민주당 전당대회(DNC)에서 지지 연설을 했을 때다. 이후 그는 일약 스타로 떠올랐고, 뉴요커 등은 그를 “힐러리 클린턴을 위협할 상대”로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2016년까진 “대선엔 관심 없다”며 클린턴 지지를 선언했다. 그러나 클린턴의 패배 후 대선 출마 의지를 굳혔고, 지난 2월 “경제적 불평등과 싸우겠다”며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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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워런 당시 백악관 특보가 2011년 7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리처드 코드레이 금융소비자보호국(CFPB) 초대 국장에 지명하는 자리에 배석했다.[백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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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워런의 가장 큰 적은 민주당 내부에 있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라는 두 거목을 쳐야 대선 출전권을 딸 수 있다. 일각에선 그를 두고 “말만 번지르르한 포퓰리스트”라는 비판도 거세다. 그가 비판의 바람을 잠재울 수 있을지 리트머스 시험지는 오는 30~31일 CNN이 주관하는 2차 대선후보 TV토론이 될 전망이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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