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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고향에 기부하면 세액공제·특산물…국회서 11년째 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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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원하는 지방 지자체에 기부하면

10만원까지 전액공제에 답례품 받는 제도

60% 찬성 여론에 최소 1조 지방유입 추산

농어촌에는 재정 구명줄이자 특산품 판로

법안 15건 국회 낮잠에 촉구 결의안 잇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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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농어촌지역군수협의회(72곳) 소속 단체장들이 5월 23일 경북 의성군에서 '고향사랑 기부금법 조속 제정 결의문'을 채택한 뒤 결의를 다지고 있다. [전국농어촌지역군수협의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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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 지역은 생산인구 감소와 복지인구 증가의 과제를 떠안으며 세수 부족으로 신음을 거듭하고 있다. ‘고향 사랑 기부금법’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강력히 촉구한다.” 지난 5월 23일 경북 의성군 친환경농업기술센터. 전국농어촌지역군수협의회(72개군) 소속 41명의 단체장이 회의에서 채택한 결의문은 비장했다. “저출산ㆍ고령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농어촌”이라며 “국회와 정부는 농어촌 위기를 더 이상 외면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기부금법은 지방 재정 건전화와 지방 분권, 균형 발전을 통한 국가 경쟁력 강화와 일맥상통하고 있다”고 했다.

협의회가 촉구한 ‘고향 사랑 기부제’는 해묵은 과제다. 2007년 이래 논의된 제도의 이름과 기부 공제 방식만 달랐을 뿐 뼈대는 한 가지다. 현 정부 구상과 주요 의원입법안의 골격은 이렇다. 예컨대 수도권에 사는 출향민 A씨가 고향이나 원하는 지자체에 기부하면 10만원까지는 전액 세액 공제된다. 정치자금 공제와 같다. 10~1000만원은 16.5%, 1000만원 초과는 33%의 공제가 적용된다. 기부금품법의 일반 기부와 같은 비율이다. 기부를 받은 지자체는 답례품 제공이 가능하다. 답례품 종류와 상한은 따로 정하고, 모금액과 지출 실적은 공표된다. (행안부 설명자료 등)

제도가 실현되면 기부자는 고향을 응원하면서 나눔의 기쁨을 누리고 지역 특산품을 즐긴다. 지방은 기부금으로 보육ㆍ노인 복지 등에 쓰고 특산품 개발로 일자리를 만든다. 도시와 지방, 지방 상호 간에 돈ㆍ재화ㆍ사람의 이동이 이뤄지는 구조다. 한마디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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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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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도는 고질적 재정난에 빠진 농어촌 지자체엔 구명줄이다. 전국 군 단위 기초단체 82곳의 올해 평균 재정자립도는 18.26%다. 예산이 1만원이라면 자체 수입이 1826원이라는 얘기다. 충북 보은군은 재정자립도가 7.74%다. 자체 수입으로 공무원 인건비도 충당하지 못하는 곳이 수두룩하다. 농어촌군수협 회장인 홍성열 증평 군수는 “일본에서 고향 납세 제도가 농촌 경제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하는 점이 검증됐는데도 우리 국회의 관심이 낮아 결의문을 내게 됐다”며 “제도 도입을 위해 협의회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겠다”고 말했다.

고향 기부제는 2007년 12월 대통령 선거 기간 처음 나왔다. 당시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가 도시민의 주민세 10%를 고향에 내는 고향세 도입을 공약하면서 논의가 시작됐다. 그해 일본이 제도를 만들고 이듬해 시행한 고향 납세가 모델이었다. 누구나 거주지 이외 지자체에 기부하면 5000엔(5만4000여원ㆍ현재 2000엔)을 뺀 나머지는 주민세 등에서 공제해주는 제도다. 이후 18대 국회(2008~2012년)에서 두 건의 의원입법안이 발의됐다가 자동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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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군 가음면의 한 폐가 모습. 고령화와 여성 인구 감소로 지방 소멸 위기에 직면한 농어촌 지자체는 자체 세수로 공무원 인건비도 충당하지 못하는 곳이 수두룩하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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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기부제는 문재인 정부 들어 큰 탄력을 받았다. 지방 재정 분권과 균형 발전 차원에서 대선 공약으로 내걸면서다. 정부 출범 후에는 100대 국정과제에 들어갔다. 이를 계기로 고향 사랑 기부제 명칭이 정착됐다. 방식도 일본의 세금 공제가 아닌 기부금 공제로 바뀌었다. 대통령 직속 자치분권위원회는 지난해 관련법 제ㆍ개정을 하고 올해 시행할 계획을 밝혔다(‘자치분권 종합계획’).

문제는 국회다. 의원입법안 15건이 ‘결정하지 못하는 정치’의 벽에 막혀 있다. 국회 파행과 도시 의원들의 낮은 관심도로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의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다. 4월에 열린 소위 의사록을 들여다보니 법안의 취지 확인 차원에 머물렀다. 이대로라면 정부의 올해 시행 계획은 불투명하다. 일선 지자체나 지방 의회의 촉구 결의안이 잇따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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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의회 의원들이 6월 27일 고향사랑 기부제 도입을 촉구하는 결의안 채택에 동참해 주목을 끌었다. [광산구의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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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에는 광주광역시 광산구가 동참해 눈길을 끌었다. 결의안을 대표 발의한 유영종 의원은 “광산구의 21개 동(洞) 가운데 5개 동은 농촌 지역이지만 광역시 기초단체라 인근 다른 시군 지자체와 달리 농업 관련 예산을 받지 못해 기부제 도입을 촉구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방 농협의 결의안 채택도 주목거리다. 답례품 제공이 시작되면 농협엔 내 고장 특산물의 새 판로가 열린다.

제도에 대해선 국민 10명 중 6명이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갤럽ㆍ농민신문의 2017년 11월 전국 여론조사(표본 1021명) 결과 고향세 도입 찬성 비율은 59.7%였다. 지역별로는 강원도의 찬성 비율이 65.5%로 가장 높았다. 지역 간 재정 불균형 해소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응답도 54.8%였다. 반면 인지도는 매우 낮았다. “들어본 적이 없다”가 76%나 됐다.

지방재정 유입 효과 분석도 나왔다. 2016년 전북연구원은 지방재정 유입(기부총액)이 최소 3947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도시 출향민 중 기부 의사가 있는 경제활동 인구가 소득세의 10%를 고향 지역에 기부하는 것을 가정한 분석이다. 육동한 강원연구원장은 “고향 사랑 기부제는 이미 정부의 기본 골격과 의원 입법안이 나와 있는 만큼 미룰 시간도 없고, 미룰 필요도 없다”며 “제도는 일본에서 입증됐듯 소멸 위기를 맞고 있는 농어촌에 활력소와 위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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