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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제도의 힘…일본 고향 기부 1730만건 4조원에 답례품 20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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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시행 일본 고향납세는 지방의 금맥

상한액 내 기부하면 2000엔 빼고 전액 공제

기부자 대도시권 몰려 3만명서 300만명 늘어

동일본대지진 등 재해 땐 복구의 '구원투수'

답례품 과열 부작용…고가 선물권 4곳 퇴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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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한복판의 기초단체인 가미시호로초는 고향납세 기부금으로 고령자 복지버스를 운영하고, 어린이집을 10년간 무료화했다. [가미시호로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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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4980여명에 사육 소 3만4000두. 천혜의 광활한 고원.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한복판의 가미시호로초(上士幌町)는 전형적인 낙농 기초단체다. 고령화와 젊은 여성 감소로 소멸 가능성이 높은 지자체로 분류된 이곳에 새로운 금맥(金脈)이 나타났다. 2008년 닻을 올린 중앙 정부의 고향 납세(納稅)다. 누구나 거주지 외의 지자체에 기부하면 소득과 가족관계 등을 고려해 정해진 상한선 내에서 2000엔(2만1000여원)을 뺀 전액을 소득세ㆍ주민세에서 공제하는 제도다. 지자체는 기부금을 지역 활성화에 쓰고, 특산물을 기부자에 보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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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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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시호로초는 지금 이 제도로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해 기부가 11만여건에 20억엔을 넘어섰다. 연간 자체 세수(8억3500만엔)의 두배를 넘는다. 시행 4년째인 2012년 969건이던 기부는 이듬해 1만건을 넘더니 10년 만에 10만건을 돌파했다. 지역 재생의 안정적 자금줄이 생겨난 셈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 따로 없다. 기부 유치에는 지역 특산물인 흑모 와규(和牛)가 한몫했다. 기부자가 고르는 답례품은 와규와 가공품ㆍ공예품 등 연간 100여종이다. 답례품 가격은 현재 기부금의 30% 이하다. 가공품은 해를 거듭할수록 늘고 있다. 아이스크림 공장이 신설돼 새 일자리도 생겨났다.

기부금은 주로 저출산ㆍ고령화 대책에 쓰인다. 2016년부터 10년간 어린이집 무료와 외국어 교육 도입, 중학생 대상 공영학원 개설, 고령자 복지 버스 운영 등등. 지난해 말 현재 두 부분 기금 잔고는 약 17억엔이다. 덕분에 반세기 이상 계속된 인구 감소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2016년 31명, 2017년 71명이 늘었다. 기부자는 용처를 지정할 수 있다. 분야는 의료ㆍ복지에서 농업ㆍ임업 활성화와 관광 진흥까지 제한이 없다. 기부금 내역과 용처는 이 지자체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다. 스즈키 유타 기획재정과 고향 납세 담당은 통화에서 “답례품을 통해 우리 지역을 알리게 됐고 기부금도 많이 받게 됐다”며 “답례품 증산에 따른 공장 확대와 신설로 일자리가 늘어났고, 어린이집 무료화로 주부가 공장에서 일할 시간이 생기는 선순환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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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고향납세 관련 한 인터넷 사이트에 게시된 각 지방자치단체의 답례품.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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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시호로초 사례는 일본의 고향 납세 제도가 뿌리를 내렸음을 방증한다. 2017년 전체 기초ㆍ광역단체 1788곳이 받은 기부는 1730만건에 3653억엔으로 집계됐다(총무성 현황조사). 2008년 5만3000여건 81억여엔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4조원에 육박하는 돈이 소멸 위기에 직면한 지방으로 흘러가는 의미는 적잖다. 같은 기간 기부로 세액 공제를 받은 사람도 3만3000명에서 295만9000명으로 늘었다(기부는 복수의 지자체에 할 수 있다). 기부금은 수도권과 오사카(大阪)권, 나고야(名古屋)권의 3대 도시권 주민이 약 70%를 차지한다. 도시ㆍ지방 간 세수 격차를 메우고 지방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당초 목표에 다가서고 있는 셈이다. 제도의 힘이다. 총무성 간부는 “기업 유치보다 손에 빨리 쥘 수 있는 재원 확보책으로 (고향 납세 제도가) 퍼졌다”고 말했다(니혼게이자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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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야자키현 미야코조시의 고향납세 답례품인 쇠고기와 소주(왼쪽). 오사카부 네야가와시가 답례품으로 추가한 어린이용 방재용품. [지지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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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정착에는 여러 가지가 맞물려 있다. 상한액 확대, 공제 절차 간소화(고향 납세 원스톱 특례), 인지도 상승이 한몫했다. 답례품 다양화도 빼놓을 수 없다. 종류는 갈수록 늘어 현재 20만여점에 이른다. 지역 특산물 외 술ㆍ가공품ㆍ여행 숙박권 등 내 고장 먹거리와 볼거리 상품이 망라돼 있다. 기부 유치를 위한 지자체 간 답례품 개발 경쟁은 치열하다. 중앙 정부의 교부금에 목매던 지자체가 시장에 눈을 뜨게 됐다. 고향 납세 제도는 재해 지역 복구에도 기여했다. 2011년 3ㆍ11 동일본대지진 피해지역인 후쿠시마(福島)ㆍ미야기(宮城)ㆍ이와테(岩手) 현에 두 달 만에 400억엔이 기부됐다. 이 제도를 통한 재해 의연금이었다. 2016년 구마모토(熊本) 지진 때도 기부금이 몰렸다.

문제도 없지 않다. 지자체 간 답례품 과열 경쟁이다. 아마존 선물권, 고액의 여행권, 액정 TV, 디지털카메라…. 기부금 유치를 위해 취지에 벗어난 답례품을 보낸 곳이 적잖았다. 답례품 가격이 기부금의 절반을 넘는 곳도 수두룩했다. 결국 중앙 정부는 2017년 답례품을 ‘기부의 30% 이하 지역 생산 물품’으로 한정하도록 통지했다. 강제력은 없었고 과열 유치는 이어졌다. 정부는 지난달 1일 아예 이런 내용을 법제화했다. 고가의 상품권을 보낸 오사카부 이즈미사노(泉佐野)시 등 4곳을 퇴출했다. 43개 지자체에 대해선 9월 말까지 재지정 여부를 결정한다.

제도로 인한 대도시권의 세수 감소에 대한 볼멘소리도 없지 않다. 도쿄도(東京都)는 올 4월 제도 탈퇴를 선언했다. 자진 이탈은 광역ㆍ기초단체 중 유일하다. “주민의 수익과 부담이라는 지방세 원칙에 훼손된다”는 이유였다. 예산이 일본 전체의 약 20%인 초광역단체의 배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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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4일 일본 도쿄도에서 열린 ‘고향납세의 건전한 발전을 지향하는 자치단체연합’ 총회 모습. 이 단체는 고향납세 제도가 답례품 과열로 부작용을 빚자 2017년 27개 지자체(현 70여곳)로 결성돼 ‘도시의 관용과 지방의 감사’라는 본래 취지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지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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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향 납세 반대는 소수파다. 이 제도는 ‘파생상품’까지 나왔다. 2016년부터 4년간 기업판 고향 납세 제도(지방창생 응원세제)를 실시 중이다. 기업이 지자체 사업에 기부하면 자부담은 기부액의 약 40%다. 고향 납세는 아베 신조 내각의 간판 정책인 지방 창생(創生)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일본 사례는 지방 소멸 대책도 빠를수록 효과가 크다는 점을 일러준다.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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