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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한류에 찬물? 그래도 한다. 항일 시대극 기피하던 드라마의 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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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꽃’ ‘이몽’ 흥행은 못했지만

제작진, 극중 과감한 항일 메시지

일제 강점기 주제의식 또렷이 담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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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나란히 막을 내린 드라마 <녹두꽃>(에스비에스)과 <이몽>(문화방송)은 평균시청률 각각 6.6%와 4.7%(이상 닐슨코리아 집계)로 큰 화제몰이는 못했다. 하지만 두 드라마는 시청률 수치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것,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대중문화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줬다.

<녹두꽃>은 드라마에서 처음으로 1894년 동학농민운동과 전봉준을 중심에 세웠고, <이몽>은 의열단을 이끈 김원봉을 비롯해 다양한 독립운동가를 조명했다. 일본의 경제보복이 노골화된 지금, 일제 강점기에 집중한 두 드라마는 종영 뒤 더 큰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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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한국 드라마에선 ‘일본의 만행’을 까발리는 시대극은 건드리면 안 되는 소재였다. 2000년대 초반 일본을 중심으로 한류 열풍이 불면서 일본을 자극하는 작품은 기피 대상이었다. 2012년 항일을 다룬 드라마 <각시탈>을 제작할 당시엔 주인공 섭외가 어려워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지금도 그 기류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지만”(한 제작사 관계자) 구한말 의병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조명해 호평받은 <미스터 션샤인>에선 한류 스타인 이병헌과 촉망받는 배우 김태리가 일본과 싸우는 역할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녹두꽃>과 <이몽>에서도 배우들은 열린 태도로 임했다. <녹두꽃>에서 전봉준으로 나온 최무성은 최근 <한겨레>와 만나 “어떤 작품이든 옳고 건강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한다. 세상을 올바르게 살려면, 젊은 친구들이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우리가 각성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김원봉을 연기한 유지태도 <이몽> 홍보대행사를 통해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싶어 출연하게 됐다”고 전했다. <녹두꽃>에서 동학군 별동대장으로 열연한 조정석도 최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역사 공부는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통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깨달음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드라마들은) 그런 역사를 보여주면서 교훈을 준다는 점에서 의미있다”고 말했다.

2012년 ‘각시탈’ 제작 당시엔

‘일본 눈치보기’로 배우 섭외 곤혹

‘미션’에선 이병헌·김태리가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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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꽃> <이몽>이 도드라진 지점은 대하사극이 아닌 미니시리즈에서 일제 강점기를 다뤄 젊은 시청자들을 끌어당겼다는 것이다. <미스터 션샤인> 방영 당시 주로 젊은 시청자들이 사용하는 ‘드라마톡’(방송을 보면서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채팅하는 것)에서 친일파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 등의 놀라운 변화가 보였다. 드라마 관련 댓글에서 자신을 고등학생이라고 밝힌 한 시청자는 “역사를 잘 몰랐는데, <녹두꽃>을 보면서 동학농민운동을 찾아보게 됐다”고 썼다. 최무성도 “나도 고1 아이를 키우는데,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는 건 잘 안 먹히더라. 슬쩍 보여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게 좋은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즐겁게 보면서도 울분도 느끼는, 그렇게 다가가는 역사드라마가 존재해야 한다. 이게 방송과 영화의 몫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까운 일제강점기라는 점에서 과거는 현실을 각성하게도 만든다.

‘녹두꽃’ 전봉준 역 배우 최무성

“시청자에 다가가는 역사드라마

분노보다 깨달음 끌어내는 게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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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런 드라마의 특징은 제작진이 출연자들에게 주제의식을 강하게 심어주고, 극 중에 과감한 항일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녹두꽃>의 신경수 감독은 촬영 현장에서 중요한 장면을 촬영할 때 배우들과 제작진에게 이 장면의 역사적 의미를 자세하게 설명했다고 한다. 최무성은 “시청률을 올려보자가 아니라 모두 한 마음이 되어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들이 실제 움직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담아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녹두꽃>은 1895년 전봉준이 이송되기 직전에 찍은 사진을 비슷하게 연출한 뒤 실제 사진을 이어 내보내기도 했다. <이몽> 역시 일부 회차가 끝난 뒤 마지막 장면에 박에스더, 지청천 등 독립운동가들의 면면을 소개했다. 최무성은 “드라마에서 실제 사진을 내보내면 판타지가 깨질 수 있는데 감독이 과감하게 넣었다. 상징적인 변화의 장면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몽>의 조규원 작가는 홍보대행사를 통해 “꽤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언급하고 등장시키려고 했다. 시청자 열에 한분은 그 이름을 검색해보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젊음과 가족과 생명을 던진 분들을 기억할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드라마들이 단지 일본에 대한 분노를 조장해서는 안 된다고 배우들은 말한다. 분노가 아닌 깨우침과 변화, 다짐을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배우들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우리가 그때 일본에 의해 이렇게 고통당했어’라며 단순하게 분노하는 것보다 백성들이 험난한 세월을 이기려고 어떻게 함께 노력했는가, 지금 이 시대에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곱씹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최무성) “아픈 경험은 나한테 새로운 미래를 열어준다. 우리가 알아야 바꿀 수 있다.”(조정석)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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