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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고작 벽걸이로 쓰려고 사냥한 사자 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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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죽음으로 21세기 가장 유명한 동물이 된 ‘세실’…

‘국립공원은 정말 사자를 보전하는가’라는 의문 제기해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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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초원 위로 기차가 지나간다. 짐바브웨의 황게국립공원. 철길 왼쪽은 국립공원이고, 오른쪽에는 가난한 농부들이 산다. 철길은 국립공원 경계선이다. 그러나 동물에게는 이것이 중요치 않다. 동물은 철길을 건너 국립공원을 드나든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자 ‘세실’도 철길을 건너지 않았다면 지금도 살아 있었을 것이다.

북극해 횡단 크루즈보다 비싼 패키지



21세기 들어 가장 유명한 동물을 꼽으라면, 나는 두 동물을 들겠다. 둘 다 ‘죽음’으로 세상을 바꿨다. 한 동물은 전편에서 다룬 범고래 ‘틸리쿰’이다. 다른 동물은 사자 세실이다. 세실은 반대로 사람에게 ‘살해’됨으로써 세상을 바꿨다. 2015년 벽에 걸어둘 멋진 기념품 박제(트로피)를 만들기 위해 사냥된 세실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들불처럼 일었다. 수십 개 항공사에서 트로피 운송 거부를 선언했고, 미국 정부는 아프리카사자를 멸종위기종에 등록했다. 미국, 독일, 네덜란드 등은 사냥한 트로피의 수입을 금지했다. (미국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뒤집었다.)

세실이라는 이름이 처음 알려진 건 2008년이다. 당시 영국 옥스퍼드대학 사자연구팀은 석궁으로 마취제를 쏘아, 사자 목에 위성항법장치(GPS) 목걸이를 다는 작업을 했다. 검은 갈기의 위엄스러운 모습인 수사자 세실도 이렇게 목걸이를 달았고, 그 뒤 국립공원을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인기 사자가 됐다. 다른 사자들은 사파리 차량이 들어오면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는데, 세실은 그렇지 않았다. 차량 앞으로 다가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관광객을 쳐다보았고, 턱 주저앉아 낮잠을 잤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세실은 그저 ‘사진발 잘 받는 지역 인사’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세실은 고난받는 사자들을 대표하는 영웅이 됐다.

월터 팔머라는 미국인 치과의사는 수천만원을 내고 사냥 여행에 나선다. 지금도 인터넷에 치면 나오는 사냥 광고를 보면, 사자 사냥은 3만5천달러(약 4120만원), 얼룩말 사냥은 1250달러(약 147만원)의 거금이 든다. 짐바브웨 정부는 매년 쿼터를 정해 종별로 사냥 면허를 팔고, 여행사는 그 면허와 사냥 안내, 숙박을 묶어 외국인 관광객에게 판다. 북극해 횡단 크루즈보다 비싼 이 패키지의 고객은 주로 사냥을 좋아하는 미국 부호들이다.

국립공원 밖에 미끼 설치해 꾀어



물론 면허를 샀다고 아무 데서나 사자를 사냥할 수 없다.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짐바브웨는 국립공원 같은 보호구역에서 사냥을 전면 금지한다. 그러나 허점이 있었다. 국립공원에 사는 사자가 공원 경계 밖으로 나오면 문제될 게 없었다. 사냥꾼들은 더러운 피로 얼룩진 사냥을 합법적으로 세탁하기 위해 사자를 철길 밖으로 유인했다. 야생동물 사체를 차량에 매달고 천천히 사자를 유인하거나, 철길 밖 나무에 고기를 걸어놓고 사자를 기다렸다. 2015년 7월 세실도 코끼리고기 냄새를 맡고 홀리듯 철길을 건넜다. 그와 함께 무리를 이끌던 수사자 제리코와 함께였다. 세실과 제리코는 며칠은 굶은 듯 얼굴을 묻고 코끼리고기를 파먹었다. 가이드는 모든 걸 갖춰놓았다. 귀족처럼 다가간 미국인 치과의사는 방아쇠에 손을 얹었다. ‘톡’ 하는 짧은 소리가 울렸고, 세실은 맥없이 쓰러졌다. 사흘 뒤였다. 옥스퍼드대학 현장 연구원이던 브렌트 스타펠캄프는 세실의 위성항법장치 수신이 사라진 걸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수사자 사체가 발견됐다는 제보를 받고 달려가보니, 거기 세실의 갈비뼈와 척추뼈가 있었다. 이 뉴스는 관광객들의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짐바브웨 밖으로 퍼져나가며 세계적 이슈가 되었다. 아무도 이렇게 큰 사건이 될 줄 몰랐다.

세실의 죽음은 트로피 사냥 문제와 요새형 보전에 관한 문제를 환기했다. 사냥꾼들이 노리는 것은 대개 ‘알파(우두머리) 수컷’이다. 수사자 머리가 벽에 걸어두는 트로피로 맞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사자 한 마리의 죽음은 ‘프라이드’라는 사자 무리 전체를 혼란에 빠뜨린다. 왕을 잃고 혼란에 빠진 왕국, 이웃 왕국의 침략, 그리고 대량의 ‘영아’ 살해. 새끼들은 죽고 흩어진다. 암사자는 정처를 잃은 채 국립공원 밖으로 빠져나간다. 배고파서 가축을 습격한다. 농부들은 복수의 총을 겨눈다. 다행스럽게 세실의 프라이드에서는 ‘의리의 사자’ 제리코가 암사자와 새끼들이 일상을 유지할 수 있게 지켰다.

틸리쿰과 세실은 현대 야생동물에 대한 착취 체제의 두 경로를 상징한다. 하나는 동물원이나 수족관에 감금된 동물이다. 또 하나는 국립공원 같은 보호구역에 사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야생동물이다. 전자는 야생에서 포획되거나 인위적으로 번식, 전시됨으로써 자유를 박탈당한다. 그렇다면 후자는 정말 자유로울까? 법적으로 보호되지만, 요새 안에서만 그 지위를 누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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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에서 원주민은 난민으로



동물지리학자 대니얼 브로킹턴은 아프리카의 야생보전 정책과 관련해 ‘요새형 보전’이라는 말을 처음 썼다. 원래 동물이 사는 야생과 사람이 사는 비야생 공간은 딱 잘라 나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아프리카 국가들은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그 안에 사는 원주민을 퇴거시키고 대자본을 불러들여 리조트와 관광시설을 지었다. 관광산업으로 벌어들인 돈은 국립공원 보전과 경제 발전에 쓰겠다고 했다. 그 결과 원주민은 또 다른 형태의 난민, 즉 ‘보전 난민’(Conservation Refugees)이 되었다. 쫓겨난 난민은 동물을 증오하게 되었다. 동물의 삶은 국립공원 안에서만 존중받게 되었다. 영역 싸움에서 패퇴한 수사자, 새끼를 지키려고 나온 암사자들은 국립공원 바깥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사람들에게 복수를 당했다. 이렇게 엉켜버리고 만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다 무엇 때문인가?

세실의 죽음 이후 세계적 열풍에 참가한 남녀노소가 이런 복잡한 관계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사건을 대할 때, 선과 악 두 진영으로 판단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세실의 죽음이 ‘무언가 잘못됐다’는 믿음을 주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고작 벽걸이 하나 쓰려고 사자의 위엄을 무너뜨리며 그의 가족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사실 말이다.

런던(영국)=남종영 <애니멀피플>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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