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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군사활동 강화하는 러시아…독도 영공 침범한 푸틴의 속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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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229] 지난 23일 중국과 러시아 간 연합훈련 과정에서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영공을 침범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중국과 러시아 폭격기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하기도 했다. 우리 군은 전투기를 출격시켜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군용기 쪽으로 경고 사격을 가했다. 영공 침범과 경고 사격 모두 사상 초유의 일이다.

러시아가 이렇듯 갑작스러운 도발을 감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주목해야 할 점은 도발 시점과 장소다. 최근 한국 정부는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항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가 한국 영공을 침범한 23일은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이 전후 최악을 달리고 있는 한일 관계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방한하기로 예정된 날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한·미·일 안보협력의 균열을 노렸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영공에서 비행한 점도 심상치 않다. 독도는 한일 관계 최악의 아킬레스건이다. 한국이 일본을 믿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과거사에 대한 속죄가 없음은 물론, 도리어 오늘날까지 한국 영토인 독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러시아가 독도 영공을 침범한 이후 일본은 또다시 독도가 자국 영토라는 억지 주장을 내세웠다. 미국이 두 동맹국 간 아물지 못한 상처가 덧날까 조심스럽게 들여다보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가 가장 아픈 곳을 콕 집어 생채기를 낸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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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보좌관이 방한한 지난 23일(현지시간)러시아 군용기가 한국 영공을 침범했다. 볼턴 보좌관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다음날 오전 청와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최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터키가 러시아산 방공 미사일 체계인 S-400을 도입하면서 미국이 터키에 대한 스텔스기 F-35 판매를 동결하는 일이 벌어졌다. 미군에 중동기지를 제공하고 있는 주요 동맹국인 터키가 미국에 등을 돌리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러시아의 교묘한 개입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015년 말 터키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전투기를 터키 공군이 격추시키면서 양국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투기 격추에 대한 보복으로 터키 농산물 수입을 금지하는 등 강력한 경제 제재를 취했다. 러시아는 특히 가스 수송관 건설 프로젝트를 중단하면서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크게 의존하는 터키를 강하게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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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터키가 러시아로부터 들여온 모델인 방공 미사일 체계 S-400의 모습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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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쿠르드족 문제와 쿠데타 주도자 송환 문제를 두고 터키와 미국 동맹이 균열을 보이자 러시아는 그 틈을 치고 들어가 터키에 다시 손을 뻗었다. 터키는 미국이 시리아 내전에서 전력으로 활용하기 위해 그들이 국가 안보상 실존적인 위협으로 여기는 쿠르드족을 무장시킨 데 큰 불만을 품어왔다. 중동 여러 국가에 흩어져 사는 쿠르드족이 그들이 염원하는 바와 같이 별도의 독립 국가를 설립한다면 터키 내부에 있는 쿠르드족도 동요하면서 국가 안정성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터키 외교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 같은 행보가 미국에 대한 터키 국민들의 신뢰를 크게 약화시켰다고 지적한다. 그러던 중 2016년 7월 터키 군부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장기 집권과 이슬람 통치에 반발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진압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제일 먼저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다. 반면 미국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군부 쿠데타의 배후라고 주장한 펫훌라흐 귈렌의 인도를 거절하면서 터키와 갈등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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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국가 건설을 염원하며 시리아에서 IS를 격퇴한 쿠르드족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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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는 2016년 10월 미국인 목사 앤드루 브런슨을 간첩 혐의로 체포한 뒤 궐렌과 교환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에 분노했고, 결국 지난해 8월 터키 내무장관과 법무장관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고 터키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두 배로 높이는 등 경제 보복을 가했다. 이 같은 조치에 터키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터키 경제가 벼랑 끝으로 치닫자 에르도안 대통령은 그 해 10월 브런슨 목사를 미국에 송환했다.

반면 러시아는 지난해 터키 군이 시리아 내 쿠르드족 거주지인 아프린에 군사를 보내 작전을 수행하는 계획에 지지하는 목소리를 보내며 터키와 더욱 밀착했고, 터키는 최근 미국의 극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산 방어 무기를 들여오기에 이른다. 이에 터키는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시킨 지 3년여 만에 러시아와 안보 협력 관계로 발전하는 반전을 이룩했다고 평가받는다. 러시아는 터키에 경제·군사적 압박을 가하는 동시에 핵심 이해 사안에 대해서는 협력하는 회유책을 적절히 활용해 유럽에서 중동으로 가는 요충지에 위치한 터키를 포섭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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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를 강제 합병하는 등 군사 행동을 강화하며 서방 진영을 잔뜩 긴장시켰다. 같은 해 미국과 나토는 러시아가 실전 배치한 순항미사일체제 9M729가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위반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에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돕기 위해 러시아 해커들이 미국 주정부 투표 관리 시스템에 대대적인 공격을 가했다는 점이 최근 미국 상원에서 드러났다. 이렇듯 러시아가 국제사회에서 결코 용인될 수 없는 무리한 일을 벌이는 의도는 무엇일까.

'21세기의 노스트라다무스'라 불리는 미국의 지정학자 조지 프리드먼은 2009년 저서 '100년 후'를 발표하고 러시아가 향후 10년간 국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인 군사력 강화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그는 "현재 러시아가 견딜 수 없는 것은 버퍼존 없이 적대 국가와 국경을 마주한 상황"이라며 "러시아는 앞으로 주변국 간에 분열을 조종하며 새로운 지역 균형을 모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따라서 러시아의 행보는 굉장히 공격적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상 방어적인 성격을 띨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분석이 나온 배경으로는 냉전 종식 이후 미국 일방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크게 수축한 점을 들 수 있다. 러시아는 소련 해체 이후 과거 우방국이던 동유럽 국가들이 나토에 대거 가입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은 민주주의를 확산한다는 기치 아래 세계 곳곳에 미국에 우호적인 정권을 수립하며 패권을 넓혀 나갔다. 러시아·터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조지아에서는 2003년 '장미혁명'이 일어나 부정선거 의혹을 받은 친러 성향 예두아르트 암브로시예비치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이 실각하고 친미 성향의 미하일 사카슈빌리가 당선됐다. 이어 2004년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 2005년 키르기스스탄의 '레몬혁명'이 잇달아 발생했다. 구소련 지역에 대한 영향력 상실을 심각하게 우려한 러시아는 2008년 조지아 침공을 감행했다. 러시아가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배경에는 미국의 패권에 대항하려는 의도가 서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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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이 크렘린궁에서 파이낸셜타임스(FT) 편집자와 독점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푸틴 대통령은 "자유주의는 한물 갔다"고 주장하며 미국 일방주의를 비판하고 나섰다. /사진=파이낸셜타임스


최근 푸틴 대통령 인터뷰를 살펴보면 이러한 시각이 더 명확히 드러난다. 지난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1면에는 "자유주의는 한물갔다"고 주장하는 푸틴 대통령의 독점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 유럽에서 국가주의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있다"며 "그간 자유주의는 이념적으로 강요됐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남이 무엇인가를 하도록 만들 수 없는 것이 자유주의의 한계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자유주의가 이념적으로 강요됐다고 지적한 부분이다. 미국이 그간 민주주의를 전파한다는 명목으로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대해온 데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이나 걸프만의 긴장이 고조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미국 일방주의'로 인해 세계 질서를 뒷받침할 규칙이 상실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냉전은 나쁜 것이었지만 적어도 규칙이 있었고 양 진영 국가들이 이를 따랐다"며 미국 일방주의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미국 일방주의가 전개되기 전 냉전시대 안보 환경을 되돌리고자 하는 야심을 내비친 셈이다.

문제는 러시아가 새로운 지역 균형을 노리는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원칙이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그 과녁이 유럽 쪽을 향해 있었지만 한일 관계에 균열이 보이자 러시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비집고 들어왔다. 지금 적극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터키와 마찬가지로 경제·군사적 압박이 들어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한미동맹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날에는 한국을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해 회유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러시아가 교묘하게 독도를 둘러싼 분쟁을 부추기며 한·미·일 공조에 분열을 노린다면 한국으로선 매우 위험한 안보 환경에 둘러싸이게 된다. 한국은 러시아의 도발에 숨겨진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대비책을 단단히 마련해둬야 할 것이다.

[문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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