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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회사 사람이랑 노래방을 왜 가죠?”…사라지는 노래방 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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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노래방 숫자 감소세

노래방 수 2009년 정점 뒤 하락세

2018년 폐업이 신규 등록의 2배

1991년 부산 오락실에서 탄생

김영란법, 주 52시간제에 이어

지난달 직장내괴롭힘금지법 도입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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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래하기 좋아하는 권수연(가명·29)씨는 대학 때 강의가 비는 시간이면 노래방으로 달려갔다. 취업준비생 때도 왁자지껄하게 놀고 나면 가슴이 뚫린 듯 시원했다. 하지만 2015년 입사한 뒤 그는 노래방을 싫어하게 됐다. 회식 후 2차, 3차로 가는 노래방에서 그는 트로트를 불러야 했고 탬버린을 흔들어야 했다. 때로는 상사와 블루스를 추라는 강요도 받았다. “나와 내 동기는 ‘당돌한 여자’와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를 매번 불러야 했는데 싫은 노래를 신난 척하며 부르는 서로의 모습을 안쓰러워했어요.”

#2. 지난해 취업한 정소담(가명·27)씨는 회사 동료들과 노래방을 가본 적이 없다. 회식은 1차에서 대부분 끝나고 2차를 하더라도 몇몇 원하는 사람만 남는다. 원하면 언제라도 빠질 수 있다. 노래를 좋아하면 노래방을 갈 수도 있겠지만, 정씨는 그런 쪽은 아니다. “회사 사람이랑 왜 굳이 노래방을 가죠? 내가 노래 부르는 것 안 좋아하는데?”

일명 ‘노래방’(정식 명칭 노래연습장)이 ‘회식의 종착지’로서 그 수명을 다하고 있다.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2016년)에 ‘주 52시간 근무제’(2018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2019년)까지 잇따라 도입되면서 직장 회식 문화가 빠르게 바뀌고 있는 탓이다.

케이비(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노래방 현황 및 시장여건 분석’ 보고서를 보면, 올해 5월 기준으로는 전국의 노래방은 3만2796개다. 인구 1581명당 1개꼴로, 경기도(7656개)와 서울(6345개)에 집중돼 있다. 2017년 기준 노래방 전체 매출액은 1조5000억원, 종사자 수는 6만5000명, 업체당 평균 매출액은 4500만원 수준이다. 2009년 3만5684개로 정점을 찍은 뒤 내리막을 걷고 있다.

노래방의 쇠락은 폐업, 휴업 또는 등록 취소로 시장을 벗어난 노래방 수를 보면 좀더 분명해진다. 이 수는 2015년(1054개) 이후 증가하는 추세로, 2018년 1413개, 올해 5월까지 657개로 나타났다. 올해의 경우 전년 같은 기간(295건)에 견줘 2배 이상 늘었다. 반면 신규 등록(창업)은 2015~2017년 코인노래방 창업 열풍으로 반짝 반등했지만, 작년부터 다시 둔화됐다. 지난해 새로 문을 연 노래방은 766개로 폐업한 노래방(1413개)의 절반 정도였다. 이는 1991년 노래방이 생긴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올해 5월까지 신규 등록한 노래방은 295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315개)보다도 적은 상황이다. 갈수록 노래방 시장이 쪼그라들고 있다는 의미다.

외환위기 직후 가장 많이 생겨

노래방은 1991년 4월 부산의 한 오락실에서 탄생했다. 부산 동아대 앞 오락실에서 동전 300원을 넣어 노래를 부르는 노래 반주기가 처음 설치됐다. 이 기계는 컴퓨터 노래 반주기에 자막 기술을 결합해 만든 것이다. 이 노래방은 돌풍을 일으켜 청소년, 여성 등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같은 해 5월 해운대에 ‘하와이비치 노래연습장’이 생겼다. 한국에서 최초로 법적 승인을 얻어 노래방 영업을 시작한 곳이다. 1.5평 정도의 부스에 설치된 동전 노래 반주기에 300원을 넣고 한 곡씩 부르는 방식이었다. 1980년 초반부터 부산 지역에서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로 운영 중이던 가라오케와는 다르게 음식과 주류의 반입은 금지됐다.

노래방은 채 1년이 되지 않아서 부산 인근은 물론 서울, 광주, 인천 등 전국 각지로 확산됐다. 1992년 중반까지 전국에 7000여개, 1993년에 이르면 1만5000여개의 노래방이 생겨났다.(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

노래방이 성공한 이유는 공급자 측면과 수요자 측면에서 나눠 볼 수 있다. 노래방 점주 입장에선 상가의 지하나 2층에 열 수 있어 임대료가 저렴했고, 종업원 없이 혼자도 운영할 수 있어 인건비 부담이 적었다. 고급 기술이나 사업 경험이 필요하지 않아 시장 진입이 쉽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혔다.(케이비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이용자 입장에선 술을 금지하고 노래만 하는 곳이라는 특징 때문에 남성들만이 아니라 청소년, 노인, 주부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갈 수 있는 여가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송도영, ‘문화산업의 구조와 일상적 문화소비 양식: 노래방의 사례’, 1997년)

특히 1997년 외환위기 뒤 노래방 수가 크게 늘었다. 당시 대규모 구조조정의 여파로 자영업에 뛰어든 퇴직자가 많았던 것도 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노래방 신규 등록이 가장 많았던 해는 1999년(8112건)으로 집계된다. 경쟁이 치열해지자 불법으로 술을 파는 노래방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노래방이 회식 2차, 3차 장소로 떠오른 것도 그즈음이다.

1995년에 취업한 회사원 강수만(48)씨는 신입사원 때 회식 2차 장소는 주로 단란주점이었다고 했다. 노래방은 재미 삼아 한두번 가봤지만 술을 팔지 않아 회식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주머니 사정이 나빠지자 단란주점에서 노래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강씨는 “특히 술을 파는 노래방이 생기고 도우미도 부를 수 있게 되니까 2차, 3차 회식 장소로 자주 가게 됐다”고 말했다.

노래방에서는 권력과 위계질서가 분명히 작동했다. 윗사람은 안쪽 가운데 자리에 앉고 부서 막내가 끝자리에서 노래방 기계를 작동했다. 술을 시키고 춤을 추고 탬버린을 치는 것도 막내의 몫이었다. 노래도 부르는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처음 몇 곡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아랫사람이 먼저 불렀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못 이기는 척 윗사람이 애창곡을 뽑았다. 강씨는 “윗사람 비위를 맞추는 것이 ‘능력’으로 인정받는 분위기였다”며 “어떤 직원은 노래를 부르는 윗사람을 목말 태우기도 했는데 업무능력은 떨어져도 노래방에서 그런 이벤트를 하며 잘 놀면 귀여움을 받고 승진에도 도움이 됐다”고 회상했다.

2000년대 대기업에 입사한 홍민수(가명·41)씨의 경험도 비슷하다. 노래를 잘 부르는 그는 대학 때 일주일에 서너번씩 노래방을 가기도 했다. 2004년 회사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달라진 점은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아니라 윗사람이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상사가 여직원과 블루스를 추는 것도, 도우미를 부르는 것도 자주 봤다. 눈에 거슬렸지만 문제 제기를 해본 적은 없었다.

2010년대 초반만 해도 노래방 회식 문화는 건재했다. 2012년에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김준성(가명·34)씨도 회식을 한 뒤 2차로 노래방을 가야 했다. 노래를 잘 못하는 그는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억지로 한 곡을 부르면 ‘어디 가서 노래 부르지 말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김씨는 “부르기 싫다는 사람 시켜놓고는 혹평을 하니까 짜증이 났다. 그래서 안 부르겠다고 버티면 ‘권위에 도전하는 거냐’는 식으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노래방 가는 게 고역이었다”고 했다. 4~5년 전만 해도 취업준비생 커뮤니티에는 ‘신입사원이 노래방에서 부르면 좋을 노래’ 같은 것을 묻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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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말했다간 혼자 남는 수도”

직장 문화가 확 바뀐 것은 2017년부터다. 2016년 11월 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접대 문화가 눈에 띄게 줄었다. 식비가 1인당 3만원으로 제한되면서 저녁자리가 2·3차로 이어지는 모습이 자취를 감췄다. 지난해 시행된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문화 확산도 직장 내 회식을 줄이고 회식을 하더라도 1차로 끝내는 문화가 자리잡는 계기가 됐다.

홍민수씨는 요즘은 회식 때 노래방을 가자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했다. 그는 “잘못 말했다가는 직원들 다 집에 가버리고 상사 혼자 뻘쭘하게 남을 수 있다. 꼰대나 왕따가 되는 것이다. 예전엔 상사를 접대하는 회식을 했다면 지금 회식은 직원들이 참여하기 원하는 걸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 홍씨 회사는 레크리에이션 카페나 피시(PC)방, 스크린 야구장·골프장 등으로 회식 장소가 바뀌었다.

특히 노래방은 회식 장소 중에서도 성희롱·성추행이 빈번하게 일어났던 공간이다. 지난해부터 거세진 ‘미투운동’과 지난달부터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블루스 강요 등 노래방에서 일어나던 ‘관행’에 제동을 걸고 있다. 비영리 공익단체 ‘직장갑질119’에 제보된 사례를 보면 상사가 노래방에서 여직원들에게 노래를 잘한다며 1만~2만원을 ‘팁’ 명목으로 주는 경우가 있었다. 또 회식과 노래방에서 성추행, 성희롱을 지속적으로 당한 여성 직원이 “하지 마세요,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거부 의사를 밝히자 이후 상사가 업무를 과중하게 주고 욕설을 퍼부은 사례도 접수됐다.

이태수 케이비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주 52시간제 시행 등으로 인한 회식 문화 변화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소비 트렌드 변화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혼노래방’ 인기

노래방은 도입 뒤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고급 노래방, 코인 노래방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기도 했다. 박소진 신한대 교양교육원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노래방이라는 공간은 계속 진화하고 이용자들의 체험도 그에 맞춰 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2000년 초반에는 밝고 환한 이미지의 고급 인테리어를 갖춘 ‘럭셔리노래방’이 등장했다. 당시 노래방은 ‘닫힌’ 밀실에서 ‘열린’ 공간으로, 더 나아가 자신을 드러내는 전시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최근에는 ‘1인가구’ 증가와 더불어 500원을 내면 두 곡을 부를 수 있는 코인노래방이 활성화되면서 혼자 노래방을 가는 ‘혼노래방 문화’가 자연스러워졌다.

노래 부르기가 취미인 류지헌(가명·19)씨는 잠깐 시간이 날 때면 코인노래방을 찾는다. “친구가 약속 시간에 늦어 기다려야 할 때 주로 간다. 1000원을 내고 노래 몇 곡을 부르면 친구가 오고, 그 친구도 한두 곡 부르거나 그냥 함께 나온다.” 회사원인 권수연씨는 회식 장소로는 노래방을 더는 가지 않지만 ‘혼노래방’은 즐긴다. “우울할 때 점심시간을 쪼개서 가까운 코인노래방에서 한두 곡 부른다. 주로 발라드 노래를 부르는데 감성이 폭발하고 나면 기분이 풀린다.” 2012년 처음 문을 연 코인노래방은 2017년에는 신규 등록이 788개까지 늘어나, 그해 새로 문을 연 노래방의 61%를 차지했다. 올해 5월 기준으로 전국 코인노래방은 2839개로 전체 노래방의 8.7% 수준이다. 코인노래방이 확대되는 이유는 짧은 시간에 적은 비용으로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코인노래방은 주로 혼자 가거나 많아야 2~3명이 가기 때문에 주변 눈치 보지 않고 자신에게만 집중해 노래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요즘 노래방 인기차트에 발라드가 강세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태수 연구위원은 “소비의 개인화 경향이 짙어지면서 코인노래방이 기존 노래방을 대체하고 노래방 시장 내 점유율이 높아질 것”이라며 “코인노래방은 인기를 끌겠지만 전체적으로는 폐업이 신규 등록보다 많아 노래방 시장 규모는 점차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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