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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 (일)

이슈 '브렉시트' 영국의 EU 탈퇴

엘리자베스 여왕 "정치권 통치 불능"…왕실로 번진 브렉시트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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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 '이례적 언급' 선데이타임스 보도

존슨 '노딜 불사'에 野 9월초 불신임 추진

존슨 사퇴 거부시 영국 헌법 최대 위기

野일각 "여왕 찾아가 정권인수 뜻 밝히자"

67년간 중립 여왕에 불똥튈라 왕실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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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버킹엄 궁에서 새 총리로 선출된 보리스 존슨을 만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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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정치 리더십의 역량에 대해 분개와 실망을 표했으며, 그 실망은 커지고 있다.”

영국 선데이타임스가 11일(현지시간) 왕실 소식통을 인용해 여왕이 개인적으로 현 정치권에 대해 밝힌 언급이라며 이같이 보도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정치권에 대해 “올바르게 통치하지 못한다"며 실망을 표했다는 내용이다.

영국 왕실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왔다. 올해 93세인 엘리자베스 여왕도 67년 재임 동안 정치적 견해를 거의 밝히지 않았다고 선데이타임스는 소개했다. 그렇지만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둘러싼 영국 정치권의 혼란이 왕실로까지 번져올 조짐을 보이는 와중에 여왕의 언급이 전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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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 무조건 브렉시트를 하겠다고 밝힌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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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불똥이 왕실로까지 튀는 상황은 보리스 존슨 총리가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노 딜 브렉시트'를 강행할 뜻을 밝힌 것에서부터 초래됐다. EU와 새 합의를 원한다면서도 존슨 총리는 “10월 31일 EU와 합의하든 안 하든 무조건 브렉시트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존슨의 노 딜 강행 전략은 ‘사악한 천재’로 불리는 수석 보좌관 도미니크 커밍스(48)가 주도하고 있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EU 탈퇴 캠페인 의장을 맡았던 커밍스는 당시 브렉시트를 하면 EU 분담금 3억5000만 파운드를 국민건강서비스(NHS)에 투자할 수 있다는 주장을 만들어 냈다. 존슨은 빨간 버스에 이 문구를 내걸고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추후 허위로 드러났다. 커밍스가 지은 ‘통제권을 되찾아 오자(Take back control)’는 짧은 슬로건도 EU에 대한 반감을 높였다.

존슨과 커밍스의 '노 딜' 불사에 반대하는 노동당 등 야당과 일부 보수당 의원들은 이를 막기 위한 대응책을 마련 중이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하원이 여름 휴회기를 마치고 9월 초 다시 열리면 존슨 정부에 대한 불신임안을 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노 딜에 반대하는 보수당 의원들이 있어서 불신임안이 하원을 통과할 가능성이 있다. 14일 이내에 존슨이 내각을 꾸려 다시 신임을 받지 못하면 총선이 치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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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천재'로 불리는 존슨 총리의 수석 보좌관 도미니크 커밍스. 노 딜 브렉시트 전략을 주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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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존슨 측도 그냥 당하지 않을 태세다. 커밍스는 불신임안이 통과돼도 존슨 총리가 사퇴를 거부하고 브렉시트를 단행한 뒤 총선을 치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더타임스 등이 보도했다. 10월 31일 노 딜을 강행한 뒤 다음날인 11월 1일께 조기 총선을 치른다는 구상이라는 것이다. 브렉시트를 하지 않고 치르는 총선에서는 보수당이 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하루짜리' 노 딜을 하고 ‘국민 대 정치권’의 구도로 승부를 보겠다는 게 커밍스의 계산이라고 한다.

양 측의 수 싸움이 가열되면서 영국 정치권은 혼란으로 빠져들고 있다. 총리실은 현재 의회 관련 법에 불신임안이 통과되더라도 현직 총리가 사임해야 한다는 규정은 담겨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대신 총선 날짜를 정하면 25일 전에 의회가 해산하기 때문에 노 딜 브렉시트를 막을 의회의 수단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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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노 딜을 막기 위해 9월초 존슨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추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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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코빈 대표는 마크 세드윌 내각장관에 서한을 보내 총선 날짜가 정해져 의회가 해산하고 선거 운동이 치러지는 기간에 정부가 노 딜 브렉시트를 단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고 BBC가 전했다. 코빈 대표는 “총선 캠페인이 진행되는 동안 유권자의 선택을 부정하고 노 딜을 추진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며 “총리가 비민주적으로 권력을 남용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노 딜을 둘러싼 정치권의 대립은 왕실에까지 부담으로 번졌다. 노동당 각료 후보인 섀도 내각의 재무장관을 맡은 존 맥도낼은 “존슨 총리가 불신임안이 통과됐는데도 물러나지 않으면, 코빈 대표를 택시에 태워 버킹엄 궁에 보내 여왕에게 ‘우리가 정부를 인수하겠다’고 말하게 하겠다”고 했다. 의회 관련 법에 따르면 여왕은 존슨 총리가 불신임당했을 경우 코빈 대표나 다른 고위 정치인에게 의회의 신임을 받을 수 있는 정부를 꾸리도록 요구할 수 있다고 선데이타임스가 설명했다. 하지만 이럴 경우 왕실은 의회 정치에 정면으로 개입하는 셈이 된다.

영국 언론들은 존슨 총리가 불신임안이 하원에서 가결됐음에도 사퇴하지 않고 버틸 경우 중대한 헌법적 위기로 빠져들 것이라고 우려한다. 특히 왕실과 총리실이 브렉시트 소용돌이에 여왕이 말려들지 않는 방안을 놓고 논의를 시작했다고 선데이타임스는 전했다. 왕실 측은 존슨 총리가 불신임을 당할 경우 누가 정부를 구성할 것인지는 의회가 결정한 후에 여왕에게 총리직에 대한 의견을 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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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사 메이 총리가 물러나고 새 총리가 취임했지만 브렉시트 혼란상은 더 심해져 왕실로까지 불똥이 튀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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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실은 상황이 악화할 경우 여왕을 브렉시트 문제로 끌어들이지 말라는 경고를 정당 리더들에게 공식 문서로 통보하는 방안을 밟게 될 것으로 전해졌다. 가디언은 “브렉시트 반대파가 여왕에게 희망을 걸지 모르지만, 결국 존슨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이 통과되고 나서 사퇴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은 법원 판결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테리사 메이 총리의 합의안이 하원에서 번번이 좌절돼 존슨 총리가 취임했지만, 영국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더 위험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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