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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단독]556억 협박 당한 KT&G, ‘이면약정’ 약점 잡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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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트리삭티 원소유주 조코 “잔여지분 560억에 안 사면 소송”

·위협문건 입수…이후 기업가치 1000억대로 부풀려 취득 의혹

경향신문

2015년초 조코가 KT&G에 보낸 협박문서. 조코는 당시 장부상 지분가치가 0원인 트리삭티와 자회사 MMM의 잔여지분, 전환사채(CB)를 5100만달러(556억)에 사가라고 요구하면서 자신의 요구를 받아주지 않으면 소송과 함께 공장 가동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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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G가 이명박 정부 시절 890억원에 지분 51%를 인수한 인도네시아 담배회사 트리삭티가 경영악화로 장부상 지분가치가 0원이 된 상황에서 구주주인 조코로부터 잔여 지분도 5100만달러(약 556억원)에 사가라는 협박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KT&G는 조코로부터 협박문서를 받은 후 트리삭티 지분가치를 0원에서 1000억원으로 부풀린 다음 조코의 잔여 지분을 562억원에 취득했다. KT&G는 이에앞서 2011년 트리삭티 지분 51%를 취득할 때도 조코의 요구대로 890억원을 조세회피처와 연결된 페이퍼컴퍼니로 입금한 바 있다(경향신문 2019년 3월13일자 1면 보도). 이에 따라 KT&G가 이명박 정부 시절 조코와 모종의 이면거래를 하면서 약점이 잡힌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13일 경향신문은 2015년 초 트리삭티의 전 소유주 조코가 KT&G에 ‘당초 약속대로 트리삭티의 잔여 지분을 5100만 달러에 사가지 않으면 소송을 걸겠다’고 위협한 문서를 단독 입수했다. 지난 3월 경향신문 보도 후 KT&G의 석연찮은 외환거래 의혹에 대해 정밀감리를 진행 중인 금감원 역시 최근 유사한 취지의 문서를 확보해 확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문건의 내용으로 보면 KT&G가 2011년 890억원을 주고 트리삭티 지분 51%를 취득할 당시 모종의 이면약정이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밝혔다.

금감원 조사결과 조코가 협박문서를 보낸 2015년 당시 트리삭티 지분 60%를 보유하고 있던 페이퍼컴퍼니 렌졸룩의 장부상 지분가치는 0원이었다. 하지만 조코는 자신이 보유한 트리삭티 지분 40%를 3000만달러, 전환사채(CB)를 800만달러, 자회사 MMM 지분 34%를 1300만달러로 평가하면서 당초 합의한 금액보다 할인된 가격임을 강조했다.

조코는 “KT&G가 우리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마지막 방법으로 법적 권리(legal option)를 행사할 수밖에 없다”며“우리가 법적인 수단을 선택하게 되면 인도네시아 담배공장의 모든 공정이 중단될 수밖에 없음을 상기시켜주고 싶다”고 했다.

경향신문

휴지조각이 된 주식을 가지고 KT&G를 상대로 5100만 달러를 내놓으라고 사실상 협박한 것이다.

조코가 협박 문서를 보내고 난 후 KT&G는 트리삭티의 지분가치를 1000억원으로 재평가하고 2017년 초 트리삭티와 자회사 MMM의 잔여 지분과 CB를 562억원에 인수했다. 인도네시아 루피화(IDR)를 기준으로 조코가 2015년 요구한 금액(6540억IDR)을 당시 환율로 환산하면 556억원으로 2017년 KT&G가 조코에게 지급한 562억원과 거의 차이가 없다. KT&G가 조코에게 약점이 잡혀 장부상 0원인 지분가치를 1000억원으로 부풀린 후 조코가 요구한 금액대로 잔여 지분을 취득했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하지만 KT&G는 그동안 수차례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조코로부터 협박을 받은 사실을 숨긴 채 트리삭티의 경영권 취득 및 잔여지분 취득 과정을 모두 정상적인 거래라고 주장해 법망을 빠져나갔다.

2016년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출시한 신제품 ‘에쎄 크레텍’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상황이어서 동남아 시장 확대 등을 위해 보다 공격적 투자가 요구됐으나 조코와 의견이 맞지 않아 잔여 지분을 사들인 후 그와 관계를 정리했다는 것이다.

올 1월 서울중앙지검은 KT&G의 이 같은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잔여 지분 인수는 동남아시아 시장 확대와 경영 효율화 등 사업상 필요에 따른 정책판단이었다”며 무혐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KT&G는 지난 3월 경향신문에도 잔여지분 취득경위에 대해 동일한 취지의 해명을 한 바 있다.

KT&G 홍보실은 “2016년12월 전환사채(CB)만기를 앞두고 10월초 조코에게 CB 연장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했고 조코는 대신 KT&G에 트리삭티와 자회사 MMM의 잔여지분을 624억원에 인수하라고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코가 2015년초에 보낸 협박문서가 발견되면서 2016년말부터 잔여지분 인수협상이 시작됐다는 KT&G의 주장은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조코는 협박문서에서 “양자간 현재 직면하고 있는 이견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확실하게 선을 긋는 것이 최상의 해법”이라고 했다. 2015년초 조코가 최후통첩을 보내기 전부터 양자 간에 이미 잔여지분 인수금액을 놓고 상당기간 신경전이 진행됐음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KT&G가 조코의 잔여지분을 정리하거나 감자를 실시하지 않은 채 2016년 신제품 출시를 통해 트리삭티의 지분가치를 높여줬다는 것은 정상적인 경영으로 보기 어렵다.

KT&G 내부 사정을 잘 아는 ㄱ씨는 “조코가 2015년초 휴지조각이 된 주식을 가지고 5100만 달러를 내놓으라고 하는 상황에서 KT&G가 약점을 잡힌 게 없다면 2016년 신제품 출시를 통해 조코의 지분가치를 높여줄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또 “기업회계 관행상 2011년 경영권 인수 후 지속적인 경영악화로 2015년 장부상 주식가치가 0원이 된 회사의 가치를 신제품 ‘에쎄 크레텍’ 출시 후 불과 1년도 안된 실적을 토대로 1000억원 이상으로 부풀린 것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KT&G가 2016년 신제품 출시를 명분으로 트리삭티의 기업가치를 재평가한 것은 KT&G해명과 반대로 장부상 0원짜리 트리삭티의 지분 가치를 조코의 요구수준에 꿰어 맞추려는 ‘고육책’으로 보는 게 상식적이라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KT&G는 분식회계 의혹에 대해 검찰에서 했던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며 “하지만 검찰 조사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새로운 증거가 발견된 만큼 KT&G를 상대로 계속 조사를 진행해 수사 의뢰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KT&G 측은 “금감원에서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아무것도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강진구 탐사전문기자 kangj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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