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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김도년의 썸타는 경제] 한·일 경제력 2~3배 격차 이유…한국 부동산 쏠림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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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차대조표 분석해보니

국부 차이 일본이 한국의 2.44배

생산 효율성도 일본에 크게 뒤져

한국 부동산자산 GDP 7배 달해

일본은 절반 수준인 4.8배 그쳐

부동산보다 생산쪽 투자이익 많게

한국 고부가산업 규제 완화해야

중앙일보

House at the top of stack of coins as concept related to real estate business. ; Shutterstock ID 539773519; 프로젝트: 중앙일보 지면; 담당자: 디자인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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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수출규제 조치에 한국 정부도 ‘맞불’을 놓으면서 두 나라 간 ‘무역 전쟁’이 전면전 양상을 띠게 됐다. 두 나라는 이전보다 훨씬 까다로운 절차로 무역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한국은 2730억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추경)도 따로 배정해 일본에 의존해 온 핵심 기술·소재 개발에 나서는 등 무역 전쟁이 길어질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손자병법』에는 ‘적과 대등하면 싸우되(敵則能戰之), 열세면 피하라(不若則能避之)’고 나와 있다. 대등한지, 열세인지를 판단하려면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知彼知己)’는 전제도 필요하다. 춘추전국시대에 쓰인 손자병법을 현대 ‘무역 전쟁’에 곧바로 적용하긴 어렵다. 또 이번 무역전쟁은 피할 겨를도 없이 일본이 먼저 시작했다. 한국은 자국과 일본의 경제력을 치밀하게 비교·분석한 뒤 일본을 넘어설 ‘극일(克日)의 조건’을 찾는 게 급선무가 됐다. 이를 중앙일보가 14일 양국 국민대차대조표를 통해 분석했다.

국민대차대조표는 한 국가가 보유한 전체 재산(국부·국민순자산)이 기록된 회계장부다. 한 사람이 가진 재산을 보면 앞으로 얼마나 유복하게 살 수 있을지를 알 수 있듯, 국가가 가진 재산도 국가 경제 성장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필수 자료다. 한국에선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작성한다. 전쟁이 발발하면 참전 국가별 병력과 군함·전투기·탱크 등 군 보유 자산 목록을 비교하는 것처럼, 국가 간 경제력도 이 장부를 통해 비교할 수 있다. 국제연합(UN) 등 국제기구가 공동으로 마련한 국제 기준(2008 SNA)에 따라 국가가 달라도 같은 통계처리 방식으로 작성되기 때문이다.

우선 두 나라 가계와 정부·기업 등 모든 경제주체 보유 자산을 모두 더한 국부(國富·국민순자산)는 일본이 한국의 2.44배다. 지난해 한국의 국부는 1경5511조6600억원으로 집계됐지만, 일본은 3경7832조270억원(2017년 기준, 3367조3666억엔)에 달했다. 재산의 ‘양’은 일본이 한국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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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국가·자산별 GDP 배율.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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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송장비와 기계·지식재산생산물 등 생산 활동에 투입해 부가가치를 만드는 생산자산 역시 일본이 훨씬 많다. 한국의 총 생산자산은 6775조5569억원에 그쳤지만, 일본은 3.07배 많은 2경781조4147억원(1849조7196억엔) 어치를 보유했다. 쉽게 말해 일본은 한국보다 공장이 3배나 더 많다는 의미다.

물론 공장이 더 많다고 무조건 생산 능력이 더 뛰어난 건 아니다. 공장에서 생산하는 상품이 시장에서 팔리지 않을 정도로 품질이 좋지 않거나, 불황으로 공장이 가동되지 않으면 공장 수가 많아도 경제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생산수단’의 양뿐만 아니라 더 적은 생산수단으로 더 많은 생산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생산 효율성도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생산 효율성 측면에서도 한국은 일본에 뒤진다. 모든 토지와 건물·기계·지식재산 등 국부(국민순자산)를 활용해 얼마나 많은 국내총생산(GDP)을 달성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순자산 대비 GDP 비율은 한국이 12.2%이지만, 일본은 16.2%다. 똑같이 1000억원짜리 공장과 토지·기계를 활용하더라도 한국은 한 해 122억원 어치를 생산하는 반면, 일본은 162억원 어치를 생산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이 일본보다 생산 효율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한국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생산자산보다 유독 토지·건물 등 부동산에 대한 자산 편중이 심한 게 그 이유라고 지적한다. 한국은 전체 국부의 85.5%가 부동산으로 일본(77.4%)보다 비율이 높다. 반면 국부를 순금융자산과 비금융자산(비생산자산·생산자산)으로 구분하면 한국의 생산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43.7%로 일본(54.9%)보다 낮다. 생산자산을 근육, 부동산을 지방으로 비유한다면, 근육량 측면에서 일본은 한국보다는 더 균형 잡힌 체질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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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국가 자산 절대 규모와 비중.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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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부동산 ‘쏠림 현상’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한국의 부동산 자산은 국내총생산(GDP)의 7배 수준에 달했다. 한국이 생산 활동으로 얻은 부를 한 푼도 쓰지 않고 7년 동안 모아야 한국 전 국토의 부동산을 살 수 있다는 의미다. GDP 대비 부동산 배율은 일본이 4.8배, 미국 2.4배, 캐나다 3.9배, 영국 4.4배, 프랑스 5.5배, 호주 5.8배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돈이 부동산에 묶여 있다는 의미다.

한국 국부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이유는 급격한 토지가격 상승 탓이다. 한국의 토지자산이 비금융자산(현금·예금·증권 등 금융자산이 아닌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53.1%로 저점을 기록한 뒤 지난해 54.6%로 계속해서 상승했다. 비금융자산 대비 건물 비중 역시 2015년 20.7%로 저점을 찍은 뒤 계속 올라 지난해 21.4%에 달했다. 게다가 수익을 창출하는 ‘영업용 부동산’보다 거주 목적의 주택 자산이 늘어나는 특징도 보이고 있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 면적이 좁고, 인구가 대도시에 몰리다 보니 부동산 선호 현상이 다른 나라보다 더 크게 나타난다”며 “일반 가계가 보유한 부동산 자산은 주택은 늘어나는 데 비해 논·밭·산림 등 영업용 부동산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특징도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으로의 ‘자산 쏠림’은 기업에는 토지와 건물 확보 등 생산활동에 들어가는 고정비용을 늘리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한국인 국민소득이 3만 달러까지 높아지는 등 인건비 수준이 높아진 상황에서 부동산 매입 비용마저 늘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현상이 잦아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자영업자 역시 임대료 상승 부담을 더 많이 떠안게 된다.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과 함께 가파른 임대료 증가는 자영업 위축의 원인이 된다.

여기에 수요의 큰 축을 담당하는 가계도 주택담보대출 상환, 전·월세 증가 등 주거비용 상승으로 가처분소득(가계 수입 중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이 줄어들면 내수 경기 부진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지금처럼 부동산으로 국부가 쏠리는 구조를 그대로 둔 상태에선 확장 재정으로 나랏돈을 풀거나 통화정책을 완화해 유동성을 공급해도 생산활동·주식시장 등에 투자되기보다 부동산 시장에 더 많은 자금이 흘러가는 현상만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부동산을 보유한 사람과 보유하지 않은 사람 간 자산 불평등도 키우게 된다.

한국만큼 일본도 저성장기를 겪고 있지만, 일본의 국가 자산 배분 구조는 한국보다 균형을 갖추고 있다. 근육보다 지방 비율이 높은 선수가 마라톤에선 불리하듯, 한국이 경제 체질을 개선하지 못하면 한·일 간 ‘경제 전쟁’이 길어질수록 일본이 유리해진다는 결론이 나오는 이유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결국 국부가 부동산에 쏠리는 이유는 생산활동보다 부동산에 투자하는 게 더 고수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라며 “장기적으로 볼 때 이런 형태로 국민대차대조표가 나오게 해선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부동산 가격을 낮추려고 인위적으로 가격에 개입하는 정책은 부작용만 심화할 수 있어, 국부가 자연스럽게 생산자산으로 흘러가도록 고부가가치 산업 확대를 위한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는 “다른 나라보다 부동산 쏠림이 심하다는 것은 경제활동은 하지 않고 ‘건물주’를 꿈꾸는 사람도 많아진다는 의미”라며 “주택 정책을 ‘소유’에서 ‘거주’ 중심으로 전환해 쏠림 현상을 관리해야 부동산 폭락이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이 되는 상황도 방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이 기사는 회계·통계 분석을 통해 한국 경제를 파헤치는 [김도년의 썸타는 경제] 시리즈입니다. 액수·합계를 뜻하는 썸(SUM)에서 따왔습니다. 인터넷 (joongang.joins.com)에서 더 많은 콘텐트를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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