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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사물극장] [111] 클라라 슈만과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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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물이 한 사람의 취향과 신체 감각, 감정과 기질을 지배할 때 그것은 우정과 친밀감을 넘어 운명 그 자체로 변한다. 사물은 종종 운명의 창안자 노릇을 한다. 클라라 슈만(1819~1896)이 라이프치히에서 가장 유명한 피아노 교사이자 피아노 판매상의 맏딸로 태어난 순간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클라라는 정신질환에 시달리다 죽은 비운의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1810~ 1856)의 아내로 세상에 더 많이 알려졌지만, 본디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피아노 연주자였다.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 교습을 받고, 관현악법과 대위법, 작곡 이론 등을 배웠다. 클라라는 9세 때 피아노 연주자로 데뷔하며 단박에 라이프치히의 피아노 신동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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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이 아버지의 문하생으로 들어왔을 때 클라라는 11세, 슈만은 20세였다. 두 사람은 10년 뒤 연인이 되었다. 딸에 대한 애착이 컸던 아버지는 둘의 결혼을 반대했다. 두 사람은 결혼 허가를 요구하는 법정 소송 끝에 결혼할 수 있었다. 클라라는 21세, 슈만은 30세였다. 유명한 피아노 연주자와 무명 음악가의 결합은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결혼으로 얻은 행복은 짧고 불행의 시간은 길었다. 클라라는 1년 중 열 달이나 피아노 연주 여행을 다녔다. 결혼하고 자녀 여섯 명을 얻었지만 아이들은 먼저 세상을 떴다. 클라라는 "인간은 흡사 자식들을 매장하기 위해 오래 사는 것만 같다"고 일기에 적었다. 슈만은 조울증과 자살 기도를 하며 정신병원을 들락거렸다.

클라라는 남편 병원비와 생활비를 버느라 연주 활동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잇단 불행에 내면이 단단해진 클라라지만 서서히 지쳐갔다. 슈만이 죽은 뒤 14세 연하인 청년 브람스의 구애를 받았지만 물리쳤다. 불행으로 고갈된 삶의 구원자는 피아노밖에 없었다. 클라라는 1890년 71세 때 고별 연주 무대를 마치고 피아노와도 조용히 이별했다.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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