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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탈리에신의 비극(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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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1914년 오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연인 마마 보스위크가 둘의 거처였던 '탈리에신'에서 살해당했다. 그들의 비극을 소개한 한 지역 매체 사진. 미 의회도서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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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과 재능 혹은 기량은 대체로 무관하다. 적어도 비례하는 예는 드물다. 다만 예술 분야에서 그 괴리가 도드라져 보이는 까닭은, 예술의 본령이 아름다움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정치도 스포츠도 아름다울 수 있지만 그 분야의 아름다움은 아무래도 부수적인 미덕이다. 정치인은 권력을 좇고 스포츠맨은 기록과 승리를 좇는다. 예술도 돈과 명성을 좇지만, 그 경우에도 경로는 아름다움을 통과한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는 현대 건축의 거장으로 꼽힌다. 그의 초기작인 로비 저택이나 전성기의 낙수장, 만년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미국적 모더니즘과 미니멀리즘의 절정이란 찬사를 받기도 한다. 그의 생의 한 가운데, 가장 열정적인 시절의 작품인 위스콘신 스프링그린의 저택 겸 작업장 ‘탈리에신(Taliesin)’도 빼놓을 수 없는 그의 걸작이다. 특히 탈리에신은 그의 사적인 삶과 가치관을 언급할 때면 서사의 중심에 놓이곤 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예술적 영혼을 지닌 남자에게는 두 명의 여성이 필요하다. 아이들을 길러줄 어머니와 영감의 원천이자 영혼의 반려가 돼 줄 연인이다”라고 부끄러움 없이 말했다. 그 둘이 반드시 다른 사람이어야 하는 건 아닐 테지만, 라이트에겐 늘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22세(1889)때 5년 연하의 캐서린 토빈과 결혼, 6남매를 낳았고, 42세 때 고객의 아내인 마마 보스위크(Mamah Borthwick, 1869~1914)와 사랑에 빠져 마마와 함께 살기 위해 외가가 있던 위스콘신에 탈리에신을 지었다. 둘의 ‘불륜’을 두고 지역 언론과 보수 종교ㆍ교육계가 모진 말도 서슴지 않았고, 탈리에신을 ‘사랑의 방갈로(Love Bulgalow)’라 불렀다고 한다. 그건 얼마간 비아냥이었다. 마마는 스웨덴의 페미니스트 엘렌 키(Ellen Key)의 책과 사상을 미국에 소개한 번역가이자 페미니스트였다. 마마는 남편과 이혼하고 두 아이를 탈리에신에 데려왔지만, 라이트는 토빈이 이혼을 거부하는 바람에 내내 유부남이었다.

1914년 8월 15일, 집안 일을 거들던 한 정신이상자의 흉기에 마마는 두 아이와 인부 등 7명과 함께 살해당했다. 어떤 신문은 그 소식을 전하면서도 ‘복수의 천사’를 운운했다. 라이트는 그 해 말 새로운 연애를 시작해 ‘사랑의 방갈로’에서 함께 지냈다. 최윤필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