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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울타리는 부수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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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우리는 서로 어떤 때 싸우다가도 중요하고 위급한 때는 하나가 되도록 관리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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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외부 환경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고 위태위태하여 우리 내부 문제만을 따로 얘기할 수 없습니다. 뉴스를 봐도 우리나라와 관계하여 일본이 어떻게 했느니, 미국이 어떻게 했느니 그런 얘기가 많고 그 밖에도 다른 나라들은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어떻게 했느니 그런 얘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일본 관련 이슈가 국내의 모든 이슈들을 삼켜버린 형국이고 국내의 이러저러한 문제들을 얘기하는 것은 한가로운 얘기를 하는 느낌이지요.

그런데 요즘은 일본에 이어 북한이 무기실험을 하고 우리를 비난한 것이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설상가상이요 엎친 데 덮친 격입니다. 저로 말하면 일본이 우리에게 경제보복을 하는 것은 지난 칼럼에서 얘기했듯이 우리가 정신만 차리면 되기에 겁낼 것이 없는데 정말 마음을 아프게 하고 걱정스러운 것은 북한이 우리를 다시 적대시하는 점이고 더욱이 이 시점에 그러한 점입니다. 사실 이런 바람이 있었습니다. 북한이 무기실험을 하고, 우리를 비난했어도 일본이 우리를 공격하고 보복하는 이때만은 자제를 하고 같이 일본을 비판하면 좋을 거라는 바람 말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에게 큰 힘이 될 뿐 아니라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는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저만 그런 것이 아니고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면에는, 아니 바탕에는 일본은 우리의 원수 또는 적이지만 북한은 우리의 적이나 원수가 아니라 같은 우리라는 의식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북한과 축구를 하면 우리가 북한을 이기길 원하지만 북한과 일본이 축구를 하면 우리 중에 일본이 이기기를 바라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모두 북한이 이기기를 바라고 응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가 지금 일본 때문에 어려울 때 북한이 우리를 응원하기를 바라면서 정작 북한이 어려울 때 우리가 그렇게 했는지 반성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입장에서 북한이 우리를 응원하기를 바란 것만큼 우리도 북한 입장에서 응원을 했느냐는 반성을 한 것이고, 지금 북한이 이렇게 나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섭섭하게 생각한 것과 같은 것을 그들이 느꼈기 때문일 거라는 반성을 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와 북한 사이는 적대감과 동질감이 교차하는 관계입니다. 어떤 때는 적이었다가 어떤 때는 한 민족인 거지요. 그런데 따지고 보면 모든 관계가 그런 면이 있습니다. 우리의 지역감정이니 보수와 진보니 하는 문제도 들여다보면 지역감정이나 이념적 또는 지향적 차이 때문에 적대감을 갖다가도 일본 문제를 놓고서는 하나가 되기도 하잖습니까? 우리의 개인적인 관계도 어떤 때는 경쟁관계와 적대관계를 유지하다가도 하나가 될 때도 있고요. 이런 것이 인간사 어쩔 수 없이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문제는 이러한 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면을 어떻게 잘 관리하느냐 그것입니다. 남북한 우리가, 동서 간의 우리가, 진보와 보수 간의 우리가, 이웃 간의 우리가 어떤 때 싸우다가도 중요하고 위급한 때는 하나가 되도록 관리하는 것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라는 울타리를 부수지 않으면서 싸우는 것이요, 울타리를 부수는 싸움은 하지 않는 겁니다. 싸우더라도 한 울타리 안에서 싸우는 것이지 싸우다가 울타리까지 부숴 외적이 침입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신라와 백제가 싸우다가 당나라를 끌어들인 것이나 조선시대 말 싸우다가 외부의 개입을 초래하고 결국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과 같은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사실 외부의 적은 무섭지 않습니다. 외부의 적은 우리가 일치단결하면 물리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너지는 것은 외부 침입 때문이 아니라 내부 분열 때문이라는 점을 우리는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김찬선 신부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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