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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사설] 反日 자제한 광복절 경축사, 새로운 한·일관계 출발점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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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日에 대화·협력 메시지 / 지소미아 연장 가능성 높아져 / 日, 과거사 진심으로 반성해야

세계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에 대한 고강도 비판을 자제하고 과거사 문제를 직접 거론하지 않는 등 수위 조절을 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조치를 두고 “먼저 성장한 나라가 뒤따라 성장하는 나라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도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일 갈등의 도화선이 된 강제동원 문제를 포함해 위안부 문제 등 구체적인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여권 일각에서 도쿄올림픽 보이콧 주장까지 제기된 것과 달리 도쿄올림픽을 우호와 협력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문 대통령이 이처럼 일본에 대한 비판을 자제한 배경에는 이번 사태의 해법을 외교적 대화의 장에서 찾아야 한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일본을 겨냥해 강도 높은 비판을 내놓았다면 양국의 ‘강대강’ 대치가 장기화되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꼬여갔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광복절 경축사의 전체적인 기조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수출 규제로 닥친 국가 경제위기를 반드시 이겨내겠다는 ‘극일(克日)’ 의지는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다시 다짐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한 세 가지 목표로 ‘책임 있는 경제강국’ ‘교량 국가’ ‘평화경제 구축’을 꼽았다. 북한 도발이 계속되고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한 시점에서 평화경제를 재차 강조한 것을 국민이 쉽게 수긍할지 의문이다. 남북 간 경제협력은 당장 가시권에 들어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에 대한 비판을 자제함에 따라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게 됐다. 미국도 최근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지소미아 연장을 희망한다는 뜻을 밝혔다. 1년 단위로 연장되는 이 협정은 오는 24일이 연장 결정 시한이다. 더 미루지 말고 연장 의사를 밝혀 한·일 갈등의 출구를 모색하는 계기로 삼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루히토 일왕은 어제 처음 참석한 전몰자 추도행사 기념사에서 “과거를 돌아보며 깊은 반성을 한다”고 했다. 지난 4월 퇴위한 아키히토 전 일왕의 견해를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반성’ ‘책임’을 언급하지 않았고, 일제 침략전쟁의 상징인 야스쿠니신사에 7년 연속 공물을 보냈다. 이제 일본은 이웃나라를 침략한 과거사의 실체적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것이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의 출발점이다. 새로운 한·일관계는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한국은 미래를 향해 열린 자세를 보여야 시작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 담은 대일 메시지가 한·일 간 우호 분위기로 이어져 본격적인 대화의 장을 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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