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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새콤 매콤 고소한 '태국식 새우탕' 똠얌꿍… 더위에 잃었던 입맛 돌아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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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정동현의 pick] 태국음식점편

서울 연남동 '툭툭누들타이'

조선일보

툭툭누들타이에서는 현지 버금가는 맛의 똠얌꿍과 텃만꿍, 쏨땀 등을 맛볼 수 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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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은 쇼핑몰과 교통체증, 그리고 음식의 도시였다. 적도의 열기는 쇼핑몰 에어컨이 아니면 이길 방법이 없었다. 차양이 설치된 인도를 따라 쇼핑몰과 쇼핑몰을 돌아다녔다. 그 막간에 땀이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손을 흔들어 택시라도 타면 끔찍한 교통체증이 기다렸다. 오토바이와 택시, 승용차가 패싸움하듯 어지럽게 뒤엉켰다.

짜증과 땀으로 범벅이 되어도 허기는 찾아왔다. 가장 흔한 음식을 가장 자주 먹었다. 똠얌꿍이었다. 태국식 새우탕 정도가 되는 똠얌꿍은 팟타이(쌀국수볶음)와 함께 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3대' 모음을 좋아하는 일본에서는 러시아의 보르시, 프랑스의 부야베스와 함께 세계 3대 수프로 똠얌꿍을 치는데 굳이 그런 타이틀이 아니라도 똠얌꿍은 그 자체로 훌륭한 음식이다. 열대 정글의 향을 품은 향신료와 고소한 코코넛밀크, 새큼한 라임 향이 더해지면 더위에 지쳐 상한 입맛이라도 조금씩 기운을 차리게 된다.

똠얌꿍을 한국에서 찾기는 어렵지 않다. 태국 여행을 갈 때 '고수 빼고 달라'는 태국어를 따로 익혀가던 것도 옛날이다. 한국에 태국 음식점이 자리 잡은 지도 꽤 됐다. 그만큼 사람들 입맛도 어지간한 현지 맛이 아니면 만족하지 않는다.

한국에 제대로 된 태국음식을 선보인 식당 중 하나인 서울 연남동 '툭툭누들타이'는 그 현지 맛의 기준을 뛰어넘는 음식을 낸다. 당연히 그럴 것이 이곳에서 일하는 요리사들은 대부분 태국 출신이며 쓰는 식재료 역시 태국 현지 것 그대로다.

메뉴판에 올라온 모든 음식이 일정 수준을 넘지만 파파야 샐러드인 '쏨땀'과 태국식 새우 크로켓(고로케) 정도로 볼 수 있는 '텃만꿍'은 일단 시키고 시작하는 게 좋다. 새콤하고 매우면서 태국식 액젓 남플라의 감칠맛이 기저에 깔린 쏨땀은 똠얌꿍과 비슷한 맛의 얼개를 지녔다. 풋사과처럼 아삭아삭 서걱서걱 거리는 파파야를 나무 절구에 넣고 통통 찧으며 그 속까지 맛을 들이는 게 포인트다.

돼지고기와 새우살을 다져 뭉친 뒤 빵가루 입혀 튀긴 텃만꿍은 빠른 직구처럼 알고도 당하는 맛이다. 처음엔 파삭하고 씹히다가 곧이어 부드러운 새우살이 이에 엉기며 고소한 기름기가 입가에 묻는다.

붉은 기운이 작렬하는 똠얌꿍에 이르면 '올바른 한국화란 이런 것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새우를 비롯한 버섯, 채소, 허브가 주인공이 10명인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물량공세를 펼친다. 어디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밀도 깊은 맛은 웬만한 해장국이나 매운탕의 범주를 뛰어넘는다.

어릴 적 다락방처럼 좁지만 아늑하고 편안한 정취를 즐기자면 신촌 인근 '고타이'를 찾아보자. 태국 뒷골목 어느 식당처럼 1평이 살짝 넘는 주방에 주인장과 종업원 한 명이 엉덩이를 부딪치며 일하는 이곳은 태국 여행의 정취를 다시 한 번 느끼고자 하는 젊은 객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주문을 넣으면 주인장은 빠른 몸놀림으로 혼자 채소를 썰고 육수를 끓인다. 달인이 퍼즐을 풀듯 좁은 공간에서 빈틈없이 움직인다. 음식은 빠르지는 않지만 정직한 리듬과 속도를 간직한 채 손님 앞에 놓인다.

돼지고기를 타이바질 같은 향신료와 함께 볶은 후 쌀밥과 함께 내는 '팟카파오무쌉'은 간결하지만 정확한 조리가 돋보인다. 이 집에서 직접 만든 커리 페이스트를 써 만든 그린커리는 느긋이 그늘에 앉아 있는 듯 푸근하고 동글동글한 단맛과 고소한 풍미를 품었다.

고타이의 똠얌꿍은 스펙터클하거나 거대하지는 않다. 대신 먹다 남은 김장김치를 툭툭 털어 연탄불에 올려 끓인 김치찌개처럼 새콤하지만 나긋하고 맵지만 은근히 속을 어루만지는 다정함이 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주린 이를 품는 소박함에 그릇을 천천히 비우고 음식을 꼭꼭 씹게 된다. 다 먹을 즈음에는 지친 몸을 일으키고 뜨거운 태양을 이겨내는 힘의 오래된 원천이 두꺼운 팔뚝이 아닌 그녀들의 동그란 어깨와 굽은 등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정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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