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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단독] 폐기물관리법 규칙 개정, 잔반 급여 제한 실효성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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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농가 여전히 잔반 급여 중” 농림축산부 내부문건 단독 입수



경향신문

방역당국이 배포하고 있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농가 행동수칙 카드뉴스. / 농림축산식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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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국제 학계·전문가 그룹에서 확인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전파 경로는 크게 야생멧돼지, 잔반, 국경 검역 실패 등 세 가지다. 앞선 기사에서 야생멧돼지와 공항·항만의 검역문제를 다뤘다. 그렇다면 우리는 잔반을 통한 감염문제에 대해서는 얼마나 대비돼 있을까.

김재홍 전 서울대 수의대 학장은 “특히 발병한 나라에서 만들어진 돈육처리가공품이 국경을 넘어 들어와 전파된 사례가 많다”며 “어디에서 뭐가 섞여 들어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위험요인으로서 잔반이 통제되어야 하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잔반 처리 업자들의 입장에서는 ‘왜 잔반만 문제냐’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국내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온다. 아무리 검역탐지견을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불법휴대 축산물 전체를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록 소량이라도 오염된 고기가 잔반에 섞여 들어가면 발병 위험성은 폭증할 수밖에 없다.”

결국 가장 큰 위험요인이 될 수밖에 없는 잔반을 전면 통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결론적으로 잔반 급여 227농가 중 160농가(70.5%)는 계속해서 잔반을 돼지에게 공급하는 것으로 판단됨.”

본지가 단독 입수한 농림축산식품부의 ‘자가급여 규제 강화에 따른 잔반사료 공급 감소 성과’ 문건의 한 대목이다.

7월 25일 조치가 시행 된 후 8월 5일까지의 집계 결과로, 8월 8일 작성된 문서다.

7월 25일 정부 조치가 실효성이 없었다는 결론을 암시하고 있다.

■ 자가급여 예외조항 만들어진 내막



지난 7월 25일부터 국내에서는 돼지에게 남은 음식물을 직접 처리 급여하는 것이 금지됐다.

ASF의 확산을 막기 위한 범정부 대책의 일환이다. 조치의 근거는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안’이다.

개정안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를 두고 시행 전부터 논란이 일었다.

쟁점은 개정안 29조의 ‘승인되거나 신고한 폐기물 처리시설은 제외한다’는 부분 등이다. 29조 2항에는 “폐기물 재활용시설 설치승인서 또는 신고서를 받은 농가에 대해서는 (잔반) 급여를 허용한다”고 되어 있는데, 기존 자가급여 시설을 갖춘 업자들도 관련 승인절차를 밟아 통과될 경우 그대로 자가급여를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농림축산부와 환경부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29조 예외조항은 처음부터 있던 것이 아니다. 7월 초 개정안 초안은 국무조정실 규제심사위원회에 올라갔다. 이때 일부 심사위원들의 문제제기로 삽입된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전면금지가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한 심사위원은 “국제기구의 조사에 따르면 ASF는 70도에서 30분 가열하면 사멸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현재 법상으로는 ‘80도에 30분 가열’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으니 충분한 것 아니냐”고 했다. 논란 끝에 이 같은 문제제기가 수용돼 29조 조항이 들어갔다.

한돈협회는 폐기물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시행 직후부터 줄곧 주장해왔다.

한돈협회가 8월 초 정부에 낸 건의서를 보면 “현재 잔반 급여로 키우는 돼지 두수는 약 11만8000두로 추계되는데, 이들 중 7월 25일 개정안 시행 후 자가급여 금지를 실제로 시행한 두수는 전체의 7.8%인 9270마리에 불과하다”며 “따라서 시행규칙 개정 후에도 90% 이상 급여가 유지되어 전혀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농림축산부 문서 역시 시행규칙 개정 후에도 잔반 급여가 70.5%가량 계속 유지되고 있다고 ‘성과’를 정리하고 있다.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 개정만으로 충분한 것일까.

지난 6월 12일자 관계부처 합동 ‘아프리카돼지열병 대응방안’ 문건을 보면 환경부는 “‘리스크가 큰 자가급여 우선제한을 추진’한 뒤 ASF 상황 악화에 대비해 처리물량 대체처리방안을 6월 중 검토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문건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부적정 처리 가능성이 있는 자가급여 농가(173개)를 대상으로 남은 음식물 급여 금지조치를 조속시행(7월 중)”한 뒤 ASF 관련 상황이 악화되면 총 3단계로 나눠 1단계는 (음식물쓰레기를) 퇴비화·비료화·바이오가스화 등 공공·민간처리시설을 활용해 처리하며, 2단계로는 1단계 부족분을 공공소각처리시설에서 처리하며, 3단계는 “비상상황임을 감안해 음폐수를 분리한 고형물을 공공매립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이 1~3단계는 실제 국내에서 ASF 발병이 공식확인되면 취할 조치로 보인다.

“문제는 ASF의 경우 일단 발병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한데, ASF 문제를 대하는 환경부의 시각이 너무 안일하다. 기존 업자들이 다 빠져나갈 수 있도록 시행령 개정안을 만들어 내놓으면서, 발병하면 그때 가서야 막겠다는 계획 아닌가.”

김현권 의원실 관계자의 얘기다.

■ “가장 큰 위험요인 ‘잔반’ 우선통제 필요”



잔반 활용 농가는 전체 돼지사육 농가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한돈협회 조사에 따르면 현재 국내 돼지농장 6400호에서 1100만두의 돼지를 키우고 있다.

이 중 잔반 사료급여 두수는 11만8470두다. 전체 국내 사육 돼지의 1% 내외다.

지난 7월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발의된 후 정부 조사에 따르면 이 11만8000두를 기르는 농가는 227농가였다. 한돈협회 조사자료에 따르면 이 중 다시 처리업체로부터 잔반을 공급받는 농장 수는 96곳인데, 시행령 개정안에선 이들을 제외하므로 시행규직 적용대상은 자가에서 직접 처리를 하는 131곳이다.

한돈협회의 주장에 따르면 전면금지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시행령이 만들어지면서 최종적으로 금지된 농장은 63곳이며, 이들이 사육하는 돼지는 9270마리로, 전체 잔반 급여 돼지 11만8470마리의 7.8%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조진현 한돈협회 정책기획부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환경부가 제출한 재활용 배출 음식 활용도를 보더라도 1만3465톤이 재활용되는데, 그 중 돼지에게 먹이는 것은 1200톤에 불과하다고 되어 있다. 이 수치도 정확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지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전체 음식물폐기물의 10%만 자원화된다는 셈인데, 정말 이 10% 때문에 업계가 다 죽어도 된다는 말인가.”

실제 잔반 급여 농가나 키우는 두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ASF가 발병할 상황이라면 한시적으로라도 다른 방향으로 재활용 방향을 돌리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돈협회나 농림축산부에서 자꾸 폐기물관리법만 문제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환경부 폐자원에너지과 관계자의 주장이다.

“가축 주무부처는 환경부가 아니다. 환경부는 안전하게 위생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주목적인 부서이지, ASF 방어 등의 사안에 대해 판단할 부서도 아니다.”

이 관계자는 이렇게도 덧붙였다.

“국무조정실에서 논의를 할 때 ‘당신들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주장한다면 농림부 소관법 개정(사료관리법)으로 막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으냐’고 반박했다.”

부처 내에서 반대의견이 있음에도 음식물 재활용을 다루고 있는 폐기물관리법만 문제삼는 이유를 이해 못하겠다는 것이다.

환경부 측이 지적한 사료관리법은 가축전염병 예방법과 함께 잔반 사료를 전면금지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되어 계류 중이다.

농림축산부 관계자는 “그동안 환경부가 추진한 음식물쓰레기 최소화·재활용 정책에 따라 돈을 많이 들여 관련 시설을 만들어왔던 분들의 입장에서 보면 하루아침에 ‘이제부터는 못먹인다’고 하니 억울해 할 수는 있다”며 “결국 중요한 것은 농가 의식개선과 홍보 문제”라고 말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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