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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손수레는 차도서 운행해야” 이 규정 때문에 폐지수거 노인 무방비 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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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레는 차로 분류, 인도 다니면 범칙금 부과

그동안 “일당 2만원인데” 하며 계도 그쳤으나

사망사고 늘면서 단속 강화하는 것으로 전환

“인도 통행 가능하게 법률 바꾸자” 목소리도

중앙일보

지난 16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보도위로 폐지줍는 노인이 손수레를 끌고 가고 있다. 도로교통법상 차로 분류되는 손수레는 보도위로 통행할 경우 불법이며 3만원의 범칙금을 물게된다. 박해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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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오후 서울 신촌로터리 인근 8차선 도로. 맨오른쪽 차도에서 한 노인이 폐지를 가득 실은 손수레를 끌며 걸어가고 있었다. 뒤 따르던 자동차들은 손수레를 피하기 위해 차선을 바꿔가며 운전했다. 시민 이모(35)씨는 “저런 모습을 볼 때마다 사고가 날까봐 조마조마하다”며 “인도로 가는 게 더 안전할 것 같은데 왜 차도로 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씨의 생각과는 다르게 손수레는 보도로 다니면 불법으로 범칙금을 물게 돼 있다. 손수레를 차로 분류하는 도로교통법 때문이다.



폐지 줍는 노인 서울에 3000명…두 달 새 2명 사망



지난 6월 21일 오후 3시5분쯤 지하철 2호선 사당역 인근에서 폐지를 실은 손수레를 끌고 가던 남성 A(61)씨가 퀵서비스 오토바이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남부순환로 고가에서 내려오던 오토바이 운전자는 맨끝 차선에서 수레를 끌던 A씨를 미처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A씨는 뇌출혈로 현장에서 숨을 거뒀다.

한 달 후에도 인근에서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달 29일 오후 3시 사당역 인근 도로에서 손수레를 끌고 무단횡단하던 남성 B(69)씨가 레미콘 차량에 치여 현장에서 숨졌다. 일반 차량보다 큰 레미콘 차량은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다 시야에 가려진 노인을 보지 못한 채 출발한 것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폐지 수집 노인은 지난 6월 기준으로 2935명이다. 이들은 주로 한밤이나 새벽에 느린 속도로 무거운 수레를 끌다 보니 쉽게 위험에 노출된다. 사망사고도 늘고 있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65세 이상 폐지 수집 노인은 2015년 9명, 2016년 4명, 2017년 8명이었다(서울지방경찰청). 지역별로는 최근 3년간 동대문구에서 3명, 종로·용산·광진·성북·금천·관악구에서 각 2명이 사망했다.

사고를 야기하기도 한다. 지난 3월 8일 충남 천안에서 1t 트럭 기사가 손수레를 끄는 80대 노인을 피하려다 교통신호를 기다리던 시민을 치어 숨지게 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해 서울시와 각 구청에서는 안전 용품을 지원한다. 서울 중구는 무게를 기존 리어카 무게의 4분의 1인 안전 손수레를 지원한다. 마포구청 등도 안전조끼와 장갑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인명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애매한 도로교통법에 교통단속도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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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관할 내에서 폐지수집 노인 관련 사망사고가 발생한 방배경찰서는 손수레 대상 무단횡단 단속 강화에 나섰다. 지난 16일 방배경찰서 관계자들이 무단횡단 단속 현수막을 게시하고 있다. [사진 방배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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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역 근처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 방배경찰서는 단속 강화에 나섰다. 올해 방배서 관할 교통 사망사고는 총 3건인데, 그 중 2건이 사당역 인근 폐지 수집 노인 사고였다. 그동안 폐지 수집 노인들은 무단횡단이 잦았지만 정작 단속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들이 하루 수입이 2만원 안팎이다 보니 경찰도 범칙금 부과보다 계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무단횡단을 하면 2만~3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방배경찰서 관계자는 “경찰 내에서도 사회적 약자인 이들을 단속하기보다는 수레를 밀어주거나 통행을 돕는 게 대부분이었다”며 “그러다 보니 끊임없이 위험에 노출되고 사망사고까지 발생했다. 앞으로는 인식을 전환해 오히려 단속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폐지 수집 노인과 다른 시민의 안전을 지키도록 노력할 것이다”고 말했다. 방배경찰서는 손수레 무단횡단 집중단속과 동시에 재활용센터 업체를 방문해 단속 예고와 교육을 하며 형광조끼 등 물품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손수레를 차로 분류하는 도로교통법 때문에 단속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무단횡단은 단속할 수 있지만, 이들이 도로 위를 다니는 것을 법으로 막을 수 없다. 도로교통법상 손수레가 보도로 다니면 오히려 불법으로 범칙금 3만원을 부과해야 한다. 유모차와 전동휠체어만 예외적으로 보도로 가는 것이 허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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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역 인근에서 한 노인이 손수레를 끌며 차도로 이동하고 있다. 지난 6월과 7월 사당역 인근에서는 폐지수집 노인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방배경찰서는 이들 대상으로 무단횡단 집중단속에 나섰다. [사진 방배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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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도로교통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 2017년 11월 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 등은 행정안전부령으로 정하는 손수레를 보행자에 포함되도록 법 개정을 제안했다. 이 의원 등은 “손수레의 보도 통행을 허용할 경우 보행자 불편을 유발하거나 경미한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인 데 반해 차도로 통행하면 차량 흐름을 방해하고 사고 위험을 높일 수 있다”며 법 개정을 주장했다.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오성훈 경찰청 교통기획계장은 “손수레는 현재 차로 분류하고 있다. 보행자 보호 때문에 차도로 운행하도록 하고 있으며 법 개정에 대한 논의는 현재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 “인도로 가도 충돌사고 거의 없어”



박문오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수레는 부피와 비교하면 속도가 느려 보도로 가더라도 보행자와 충돌하는 사고가 거의 없다”며 “하지만 현행법상 크기와 상관없이 모두 차 종류로 분류돼 작은 수레도 모두 차도로 가도록 정해져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운전자들이 이들을 교통 약자로 인식하고 속도를 줄이는 등 주의해서 운전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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