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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1층 약국 2층 사무실 등록건물···알고보니 영등포 성매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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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2일 밤에 찾은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 이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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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후 7시,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뒤편 거리는 적막했다. 인적은 뜸했고, 이따금 지나가는 차들만 보였다.

한 시간이 지나자 분위기가 급변했다. 유리 창문을 가리던 커튼이 젖히고 창가 방향을 바라보는 목이 긴 의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중충하던 거리에 핑크빛 불빛이 퍼졌다. 오가는 차량과 인파도 부쩍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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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저녁에 멀리서 본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 이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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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개 업소에서는 영업 준비가 한창이었다. 거울을 보며 머리를 손질하거나 화장을 고치고, 담배를 피우며 손님을 기다리는 여성들이 보였다. 오후 8시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 영업 현장은 '성업' 중이었다.

이곳 성매매 집결지는 거리 입구에 ‘청소년 금지구역’ 팻말이 세워져 있을 정도로 잘 알려진 곳이지만, 실제론 약국이나 사무실 등으로 등록돼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앙일보가 다시함께상담센터(성매매 피해여성 지원 기관)의 도움을 받아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 내 건물 28개 건축물대장을 전수 조사한 결과다. 28곳 모두 등록된 용도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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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주소 간판을 단 건물 이 건물은 등기부등본상 '연와조(벽돌식 건물) 스라브즙 3층건주택'으로 등록돼 있었다. 신혜연 기자.






건축 대장 용도엔 '약국' '사무실'



실제 A씨 소유로 된 영등포동4가 4XX-XX 목조 건물은 건축물대장 '용도'에 1층 약국, 2층 사무실로 기록돼 있다. 기자가 낮 시간 이 건물을 찾아갔을 때 약국이 있어야 할 1층은 유리방 성매매 업소로 쓰이는 모습이었다. A씨 건물 주변의 다른 건물들은 일반 주택으로 등록돼 있었다.

영등포동4가 4XX-XX 2층짜리 벽돌 건물은 용도가 주택이다. 서울 용산구에 주소를 둔 B씨(72) 소유 건물인데 이 역시 유리방 업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영신로24길 XX’이란 새 주소 간판을 단 유리방 업소 건물 역시 건축물대장을 떼보니 주택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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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부등본상에 1층 약국, 2층 사무실인 목조 기와지붕으로 기록돼 있는 건물에서 실제로는 성매매 영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신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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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건물 주인 소재파악 어렵다"



이 건물 주인들은 직접 성매매에 가담하지 않고 임대수익만 얻는다 해도 불법이다. 성매매 처벌법은 '성매매에 제공되는 사실을 알면서 자금, 토지 또는 건물을 제공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른 이익은 몰수되거나 추징받을 수 있다.

하지만 단속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건물주나 토지 소유주들은 대부분 주소는 국내에 두고 실제 해외에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소재파악이 잘 안 된다"며 "단속하려고 노력하지만 당사자 접촉부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유리방 업주들은 다른 팀에서 정기적으로 단속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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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성매매 집결지 입구. 청소년 통행금지구역이라고 적혀 있다. 신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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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와 경찰, 서로 "저쪽이 나서야"



일부 경찰들은 성매매 집결지가 사라지려면 서울시나 구청이 나서야 한다고 얘기한다. 해당 지역은 재개발이나 도시 재생 사업으로 집결지를 없애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는 주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단속은 하고 있지만 업주나 종사자들은 벌금만 내면 된다는 식으로 대응하기 때문에 뿌리를 뽑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영등포구청도 유리방 업소를 위반건축물로 보고 관련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오피스텔에서 성매매를 한다고 해서 오피스텔이 무단 용도변경을 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수사권이 없는 구청 입장에선 성매매가 실제로 이뤄지는지 알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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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뒤에 늘어선 일명 유리방 업소들. 신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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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근절" 선포했지만



성매매 집결지 문제는 영등포구민들 숙원 해결 사안이기도 하다. 청와대 국민청원과 비슷한 방식의 '영등포 신문고 공감청원' 1호도 '노점상과 성매매 집결지 문제 해결'이었다.

청원이 올라온 뒤 한 달 안에 구민 1000명의 동의를 받으면 구청장이 답변을 하기로 돼있는데, 이 청원에 동의한 사람은 1300명에 이른다.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은 최근 “도시계획을 통한 정비와 함께 성매매 근절을 위한 활동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도시 재생 사업을 통한 성매매 집결지 해산을 계획하고 있지만, 실제 사업이 진행되려면 5년은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성매매방지 팀장인 원민경 변호사는 “성매매 업소 건물주가 얻은 임대수익을 몰수·추징하는 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도 있다”며 “관계 기관에서 그걸 단속·처벌하지 않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혜연, 이병준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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