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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출생의 비밀에 재벌가 암투, 이젠 불치병까지…너무 뻔한 막장 ‘세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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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KBS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18일 방송 마지막 장면에서 박선자(김해숙)는 의사에게 "빨리 큰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듣는다. 평생 자식을 위해 희생한 엄마의 중병. 드라마에서 닳도록 많이 본 설정이다.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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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의 부재인가, 흥행 코드에 대한 과도한 믿음인가. 이보다 더 전형적일 순 없다. 다음달 22일 종영을 앞둔 KBS 2TV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이하 세젤예)이 시청률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이유다.

출생의 비밀과 재벌가 암투, 신데렐라 스토리와 구시대적 고부갈등 등에 더해 이제 불치병 코드까지 등장할 모양새다. 18일 방송한 88회는 기침이 멈추지 않아 병원을 찾은 엄마 박선자(김해숙)가 의사에게 “빨리 큰 병원에 가보라, 갈 때는 꼭 보호자와 함께 가라”는 말을 듣는 장면에서 끝이 났다. 이날 방송 중반 박선자는 임신한 딸 강미리(김소연)의 입덧하는 모습을 애틋하게 지켜본 뒤 “손주 키워주려면 50년은 더 살아야 된다”고 말하며 건강에 문제가 생길 것이란 강력한 복선을 던진 터였다. 자극적인 막장 요소마저 전형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청률도 박스권에 갇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17, 18일 방송된 85∼88회 시청률은 23.7∼33.5%. 토요일 방송은 25% 안팎, 일요일 방송은 30% 안팎을 오가는 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양상이다. 최고시청률 49.4%를 기록했던 전작 ‘하나뿐인 내 편’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다. 물론 현재 지상파ㆍ케이블에서 방송하고 있는 전체 프로그램 중 시청률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지만, ‘시청률 40%’를 기본으로 보는 KBS 주말드라마로선 초라한 성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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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18일 방송에서 강미선(유선)은 시어머니 하미옥(박정수)에게 불려가 하루종일 멸치똥을 땄다. 60대 이상 고령층 시청자들의 고정관념에 남아있는 고부관계의 전형성을 구현해낸 장면이다.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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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젤예’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뻔한 전개다. 새어머니는 전처 자식을 내치려 하고,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부려먹을 기회만 엿본다. 중년의 아저씨 지점장은 워킹맘 직원이 못마땅하고, 철없는 막내딸은 이혼남에게 빠져있다. 마치 무슨 공식처럼 드라마에서 여러 차례 봤던 설정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새로운 것이 전혀 없다. 보는 사람도 시시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면서 “1, 2년 전만 해도 이 정도 코드들을 버무려 넣으면 충분히 시청률이 나왔지만, 이젠 시청자들의 피로감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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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강미리(김소연)가 자신을 버리고 갔던 친엄마 전인숙(최명길)의 자살을 만류하는 장면이다. 전인숙은 강미리의 임신 소식에 죽을 뜻을 내려놓는다.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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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한태주(홍종현)는 자신을 길러준 작은어머니 전인숙(최명길)의 친딸이 바로 자신의 아내 강미리(김소연)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지만, 아내의 임신 소식을 들은 뒤 모든 고민을 잊은 듯했다. 아기용품을 잔뜩 사들고 귀가해 전인숙ㆍ강미리와 감동을 주고받는다.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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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을 만병통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도 너무나 진부하다. 딸을 버리고 재혼해 기업가로 성공한 전인숙(최명길)은 강미리와의 모녀관계가 드러난 뒤 두 차례나 자살을 시도한다. 바다에서 한 번, 강에서 한 번. 하지만 당연하게도 번번이 실패했다. 두 번째 실패의 배경은 딸의 임신 소식이다. “제발 그러면 안 된다”는 딸의 애타는 만류를 뿌리치며 단호하게 다리에서 뛰어내리려 했던 전인숙은 “나 아이 가졌다. 죽으려면 미역국은 끓여 주고 가라”는 말에 단박에 돌아선다. 전인숙과의 모녀관계를 숨기고 결혼한 강미리에 충격을 받았던 남편 한태주(홍종현) 역시 아내의 임신 소식에 돌연 모든 것을 이해하며 “옹졸하게 굴었던 걸 용서해달라”고 한다. 웬만해선 감정이입을 하기 어렵다.

한편 공희정 평론가는 ‘세젤예’의 시청률이 20%대를 유지하는 것에 도리어 주목했다. “시청률이 20% 넘게 나오는 것이 신기하다”면서 “분노나 복수심ㆍ슬픔 등 자신의 감정을 배설하는 창구로서 드라마를 이용하는 시청자, 드라마의 뻔한 흐름을 따라가며 ‘거봐, 내가 맞았지’라고 이후 전개를 맞추는 재미를 즐기는 시청자 등이 있어 가능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KBS 드라마가 그 틀을 깨고 나오지 않는다면 이 정도 시청률 유지도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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